[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세월을 넘어 잘 익어 돌아온 ‘탑건: 매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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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세월을 넘어 잘 익어 돌아온 ‘탑건: 매버릭’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7.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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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이 대단한 영화를 활자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며칠을 고민했다. 실로 오랜만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최고다!

모든 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고 작품 전체에, 그리고 ‘매버릭’이라는 한 인간의 삶에, 배우 톰 크루즈의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에 압도당했다. 

젊은 시절의 ‘탑건’은 36년 후 ‘탑건: 매버릭’으로 무르익어 돌아오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든다. 젊음을 찬양하지만 제대로 익어감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톰 크루즈’는 몸소 입증했고 전편을 넘어선 영화는 전율케 했다. 

‘탑건’을 처음 만났던 건 90년대 초, 동네 비디오 가게였다. 한번쯤은 봐야 할 영화란 생각에 비디오를 빌렸고 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나는 걸보면 그 시절, 작품이 주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전편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된 영화는 화면 곳곳에 배치해 놓은 플래시백(회상 씬) 장면과 함께 내 학창시절도 자연스레 소환시켰다. 

전편의 스토리 확장시킨 탄탄한 서사 구조

‘탑건: 매버릭’은 36년 만에 제작된 속편임에도 불구하고 전편의 유기적 관계를 그대로 가져왔다. 20대 꽃미남 해군 전투기 파일럿은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됐고, 엄청난 전투성과에도 불구하고 상관의 명령을 어긴 대가로 만년 대령에 머물러 있다. 본능을 따르는 뛰어난 실력과 명령을 패싱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옛 동료이자 이제는 제독이 된 아이스맨(발 킬머 분)의 도움으로 본인이 졸업한 조종사 훈련 학교 교관으로 돌아온다는 설정 자체가 전편과의 특별한 조우일 수밖에 없다. 선글라스와 항공점퍼, 그리고 오토바이를 탄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세월을 관통해 과거를 추억케 하는 상징과도 같은 현재다.  

가족 같았던 동료, 구스(안소니 에드워즈 분)의 죽음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자책하는 매버릭과 그를 원망하는 구스의 아들 루스터(마일즈 텔러 분)의 대립관계가 영화의 가장 큰 갈등의 축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전사한 아버지의 의혹 가득한 죽음, 그로 인해 해군사관학교 입학이 힘들었던 매버릭의 반항심과 매버릭으로 인해 번번이 파일럿의 꿈이 좌절됐던 루스터의 증오심은 다른 듯 닮아있다. 결코 세월이 약이 될 수 없는 구스의 죽음 앞에 그의 아들만큼은 아버지를 대신해 지켜주고 싶었던 매버릭.

결국 이 두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 서로의 생명을 구해주는 또 다른 동료가 되며 갈등을 넘어선다. 망각의 힘이 작동하지 않았던 매버릭의 자책감, 루스터의 그를 향한 원망이 마침내 극복되며 오랜 세월 해묵은 감정이 해소되는 것이다. 

“이제 과거를 잊어야한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대신해 타이핑으로 말해야만 했던 생전 아이스맨의 메시지는 그토록 오랜 세월 매여 있던 아픈 기억과 결별하며 비로소 실현된다.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컷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가치 구현

‘탑건: 매버릭’은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택한다. ‘항공액션 블록버스터’의 상당부분을 CG의 힘이 아닌 훈련의 힘으로 구축해 배우들이 직접 전투기에 탑승해서 중력을 버텨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 관객들은 숨을 멈춘다. ‘실제’가 주는 리얼리티는 몰입감을 극대화시키며 마하10 이상의 강렬함을 선사한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CG는 ‘감탄’의 영역까지는 도달 가능하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땀과 노력으로 도전하는 인간의 힘은 ‘감동 그 이상’이다. 영화는 톰크루즈가 중심이 되어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여전히 유효한 ‘아날로그의 가치’를 구현해낸다. 

영화 초반 다크스타 프로젝트를 두고 “파일럿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가고 있어”라는 제독의 말에 계속 현역이길 원하는 매버릭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닙니다”라며 체념하지 않는다.

이 대사가 계속 맘에 와 닿는 것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인간의 자리를 기술이 대체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리라.

쓸쓸한 눈빛이지만 신념과도 같았던 그의 말은 한계 없는 도전으로 기술에 밀린 퇴물이 아님을, 그리고 그 끝이 오늘이 아님을 증명해낸다. 결국 이는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위대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한 카타르시스가 있을까.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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