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극적 긴장감 없이 과잉 선의로 덧칠된 영화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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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극적 긴장감 없이 과잉 선의로 덧칠된 영화 ‘브로커’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6.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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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침체기 일본영화계에 현존하는 유일한 ‘거장’연출가다. 가족의 해체기에 비혈연 관계로 이루어진 유사가족 형태의 이야기에 천착해 온 그의 영화들은 밑바닥 주변부 인물들과 아이가 중심이 되어 사회의 편견에 균열을 내며 끊임없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도 일본의 현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자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어느 가족’. 그 연장선에 있는 영화 ‘브로커’를 통해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를 확장해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들과 아이, 선악이 혼재된 상황, 타인들 간의 가족 되기라는 ‘고레에다 장르’ 특유의 문법은 어떠한 마법도 발휘하지 못한 채 낯선 정서로 관객에게 이질감만 남긴다. 아쉽게도 K무비와 일본거장의 콜라보는 소문난 잔치 먹을 것 하나 없다.

대안가족의 로드무비

갓난아기를 유기한 엄마와 그 아기를 팔려는 불법 입양 브로커들, 입양을 원하는 아이, 그리고 두 명의 형사가 그리는 로드무비는 언뜻 어두울 것 같지만 이들의 선악이 경계를 특정 짓기 어렵듯 작품의 명암도 모호하다.  

‘버려진 아기 우성이를 좋은 조건의 가정에서 자라게 하고 싶다’ 애초부터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에게 이런 선한 의지가 작동했던 건지 의문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공통된 목표처럼 보인다. 결국 우성의 엄마인 소영(이지은 분)이 이들의 여정에 함께 하게 되면서 날 서있던 그녀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사회의 어두운 곳, 결핍뿐인 사람들의 맘을 나눈 연대는 흡사 가족인 듯 가족 아닌, 가족 같은 모습이다. 입양부모를 찾아주기 전까지 상현과 동수는 기꺼이 보호자가 되어 우성을 잘 돌봐주고 혹여 아기에게 정들까 싶어 소영은 어쩔 수 없이 거리두기를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지만 때론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기에 주변부로 내몰린 인생들의 대안가족의 모습에서 감독의 전작들과 유사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저들을 뒤쫓는 형사 수진(배두나 분)과 후배 이형사(이주영 분)도 본인들이 되레 브로커가 아니냐고 되묻는 지경에 이른다. 수사라는 본질과 입양 사이의 고민 어디쯤 될까. 그렇게 그들에게 동화된다.

과유불급 된 선의

작품이 진행될수록 등장인물 모두가 ‘휴머니즘’이라는 공통된 초목표를 구현해 내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차갑고 어두운 현실의 온도를 올려주는 것 일텐데 스토리 전개는 마치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 현실적인 스토리를 비현실적으로 풀어가는 느낌이랄까. 물론 영화이기에 비현실적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관객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발각되어선 안 되는 쫓기는 인생들 모두 우성이가 최우선이고, 아이를 불법으로 입양하려다 경찰에게 붙잡힌 부부조차도 후에 아이와의 인연을 이어가려 한다. 자식을 버린 세상의 엄마들을 비난했던 수진은 소영이 자수를 하자 그녀를 대신해 우성의 위탁가정 역할을 맡는다. 아이를 버리려던 엄마도, 그 아이를 팔아넘기려던 브로커 상현과 동수도, 그들을 붙잡으려했던 형사들도 연민이 넘쳐난다. ‘생명의 고귀함’을 강조하려던 나머지 영화는 과잉선의로 덧칠된 느낌이다. 이해 불가능한 판타지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출생이 불행의 시작이었을 인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존재들에게 향하는 메시지일진데, 소영의 대사를 통해 반복적이고 직설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많은 영화적 언어들이 있건만, 1차원적 주제전달은 세련되지 못하다. 지극히 느슨한 전개는 극적 긴장감을 배제시켜 버렸고, 공감하기 힘든 캐릭터들 사이에서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2분여 동안 롱테이크로 엄마가 되고 싶었던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의 괴로움을 눈물로 보여줬던 ‘어느 가족’의 취조실 씬은 명장면이었다. 그녀에게 감정이입 되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답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들었다. 거장의 명작을 이토록 또렷하게 기억하기에 명장면, 명대사 하나 없는 영화 ‘브로커’가 주는 공허함은 더욱 크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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