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그들만의 리그' 뒤흔든 오징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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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그들만의 리그' 뒤흔든 오징어게임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9.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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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는 없다. 

영어와 백인, 미국이어야만 가능했던 유리천장을 ‘K-콘텐츠’가 뚫고 비상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 미나리 그리고 드라마 ‘오징어게임’까지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에 이어 마침내 ‘에미상’ 수상도 현실이 됐다.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이룩한 성과다. 

‘기생충’ 이전 ‘1인치의 장벽’은 넘사벽이었다. 우리는 그들만의 잔칫날을 적당히 무관심한 관찰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오랜 시간 구축해 놓은 특유의 보수성을 ‘글로벌 문법’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K-콘텐츠가 이뤄낸 ‘새로운 글로벌 문법’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철옹성, 그 거대한 1인치의 장벽을 콘텐츠의 힘으로 넘어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은 ‘K-콘텐츠’에 한계란 없다.

미드 잔치에서 인정받은 글로벌 깐부 ‘오겜’

53일간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 공개 후 28일간 합산 시청시간 16억 5045만 시간, 94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작품, 오징어게임 관련 유튜브 영상(약 12만 9000개) 조회수 170억회, 제작비 300억원으로 1조 수익.

지난해 11월 고섬어워즈 장편 시리즈상을 시작으로 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 미국 배우조합상(SAG) 남녀 주연상, 할리우드 비평가협회상,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CCA) 최우수 외국어 시리즈상, 남우주연상 수상 등 30개에 달하는 트로피의 주인공. 그리고 LA시의 지정으로 ‘오징어 게임의 날’.이 된 9월 17일(오겜 공개일).

역대최장, 최대, 최고, 최초의 수식어를 탄생시킨 오징어게임이 지난 1년간 이룩한 기록들이다. 거기에 더해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에미상 6개 부문 수상은 이 작품이 거둘 수 있는 성과의 정점인 동시에 엄청난 사건이다.

외국 방송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내셔널 부문이 아닌 메인 이벤트인 프라임타임 상을 받음으로써 미드 잔칫날 그들과 경쟁한 한드 오징어게임이 당당히 그 존재감을 뽐낸 것이다. 현지 매체 뉴욕포스트는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의 수상을 “74년 에미상 역사의 승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영어권 드라마의 후보 지명도, 수상도 최초다. 

시상식 무대에 등장한 인형 ‘영희’의 모습에서 이미 오래전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 헤게모니는 찾기 힘들었다. 다른 언어와 인종에 편협했던 아카데미가 영화 ‘기생충’을 인정하며 비로소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면, 에미상은 ‘오징어게임’에 상을 안기며 미국만의 시상식에서 벗어나 글로벌화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정재 배우와 황동혁 감독. 사진=AP/연합뉴스

입증된 K-콘텐츠의 가치

넷플릭스를 만나기 전까지 흙속에 묻힌 진주였던 ‘오겜’은 12년이나 되는 인고의 시간동안 가시밭길을 걸어 마침내 신드롬을 일으키며 꽃길을 완성해냈다. ‘우리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상금 456억원을 놓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국내 영화사들로부터 거절당했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후 세계인들로부터 극강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는 극한의 경쟁에 내몰린 이들이 보여주는 배신과 이기심, 빈부격차, 승자독식구조,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 인간소외 등 드라마를 관통하는 메시지의 힘에서 기인한다. 넷플릭스가 판을 깔아줬다면 날개를 달고 비상할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관심은 오겜 시즌2다. 

"저는 정말로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에서 마지막 비영어 시리즈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도 이 상이 마지막 에미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시즌 2로 돌아오겠습니다“

황 감독의 수상소감에서 창작자로서 갖는 다음 시즌에 대한 욕심이 느껴진다. 오겜의 대성공으로 기대감이 한층 커진 상황에서 부담감 대신 자신감을 드러냈다. 2024년 쯤 공개될 예정인 시즌2는 주인공 성기훈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또 어떤 메시지를 담아낼지가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겜 이후 힘 빠진 넷플릭스에 다시 힘이 실릴지도 지켜볼 일이다.

에미상 수상으로 K-드라마의 가치는 입증됐다. 이제 관건은 지속성이다. 꽃길, 잘 걸어보자.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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