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수리남’ 정주행 시키는 서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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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수리남’ 정주행 시키는 서사의 힘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9.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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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인기가 뜨겁다. 공개 2주 만에 비영어권 부문 드라마 1위를 차지하며 ‘제 2의 오징어게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방영 초 자국을 부패한 이미지로 묘사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장관으로부터 촉발된 표현의 자유와 성찰적 연출 간의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이 역시 나름의 마케팅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이후 국가 ‘수리남’과 실화의 주인공 ‘조봉행’에 대해 다들 한 번쯤은 검색해 봤을 것이다. 

이젠 유통업체가 ‘홍어마케팅’을 한단다. 영화 ‘기생충’으로 짜파구리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오징어게임’으로 달고나가 전 세계적인 빅히트를 치지 않았는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홍어까지 마케팅에 나선다는 건 돈 냄새에 민감한 기업들이 드라마 수리남의 인기가 꽤 지속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는 방증일 테다. 

영화 같은 드라마(시네라마) ‘수리남’은 가히 한국 범죄액션느와르 장르의 역작이라 할만하다. ‘한국인 남미 마약왕’이라는 소재가 새롭고, 이를 표현하는 스케일 역시 글로벌 만족도를 끌어올려 줄만큼 확장됐다. 남성 중심의 서사에 반기를 드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이는 윤종빈 감독 특유의 장기가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여실히 그 재능이 발휘됐다. 남초 드라마인건 사실이지만 작품을 성비까지 따져가며 만들 수야 없지 않겠나. 불필요한 논제다. 

희생적 존재인 K가장의 서사

드라마 ‘수리남’에서 윤종빈 감독은 가장(家長)인 아버지를 소환한다.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최민식 분)과 수리남의 강인구(하정우 분)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가장이다.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최대 목표이고 자신의 존재 이유다. 고생의 대물림이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니 죽을 힘을 다해 잡초처럼 살아간다. 내 한 몸 희생하면 그 뿐이다.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 이름하여 K가장.

수리남은 초반 강인구의 히스토리에 꽤 긴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였다면 외화면 영역(스크린 밖의 관객의 상상의 영역- 음향이나 연기가 화면 밖에서 이루어짐)으로 남겨뒀을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놓는다. 베트남전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와 일만 하다 과로사한 아버지, 그에게서 가난을 물려받고 아버지가 된 인구의 독백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삶은 여전히 무거웠다. (중략) 내 아이들은 나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리남드림을 꿈꾸고 낯선 땅에 갈 수 있었던 용기도, 전요환(황정민 분)의 계략으로 마약범죄에 연루돼 옥살이를 한 후 국정원과 협조하여 언더커버로 엄청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배짱도, 그 동력은 모두 가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신파로 흐르는 촌스러움은 없다. 눈물콧물 훌쩍임 대신 속고 속이는 반전의 연속으로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스틸 컷

복수와 돈에 대한 욕망으로 만들어낸 영웅 서사

K가장이 애국심에 도취되진 않는다. 단지 강인구가 국익과 사익 중 국익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극히 사적인 복수와 돈에 대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리남드림을 함께 꿈꿨던 친구의 죽음과 자신의 억울한 감옥행 모두, 믿었던 전요환의 강력한 뒤통수 후려치기에서 시작된 불행이었다. 믿음과 배신감의 크기는 비례하며 이는 자연스레 복수로 연결된다. 그리고 국정원에 협조해야 수리남에서 투자한 사업자금 5억도 받을 수 있으니 억척스런 삶을 살았던 강인구의 선택은 단 하나일 수밖에.

가족이라는 존재와 경제적 욕망, 복수의 힘으로 사지에서 K가장은 희대의 마약왕을 붙잡는 영웅이 된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도 결국 설득되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강인구의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판타지에 가까운 해피엔딩은 완성된다. 결론은 사익 추구로 인한 국익 달성이라고 해야겠다.

수리남에서 단 한 번도 촬영하지 않고 전주, 제주, 무주 등 국내 각지와 도미니카공화국 로케이션 만으로 남미의 풍광을 제대로 만들어낸 영상미는 시선을 붙잡고,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와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장첸의 연기 조합은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

하지만 가장 큰 공은 6부작 드라마를 정주행 시키는 스토리텔러로서 윤종빈 감독이 구축한 서사의 힘일 것이다. 낯선 땅, 수리남에서 펼쳐지는 생존력 강한 K가장의 분투기가 또다시 K드라마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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