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순환적 상승과 구조적 하락이 부딪힐 '2020년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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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순환적 상승과 구조적 하락이 부딪힐 '2020년 한국 경제'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 승인 2019.12.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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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2020년을 맞이해 글로벌 경기, 나아가 한국 경제의 바닥을 점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주요국 경기선행지수가 반등하는 가운데, 주가도 3~4개월째 상승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2017년 중반 한국과 중국 등 이머징 국가로부터 시작된 순차적 경기 수축 신호가 2년 반만에 마무리되고 상승 전환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대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정말 의미 있게 회복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지만,적어도 2019년 내내 경제 주체들을 괴롭혔던 ‘R(Recession: 침체)의 공포’는 이제 잦아드는 모습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장률에 대한 전망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성장률에 대한 전망 역시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2019년 2% 내외로 추정되는 실질성장률이 2020년에는 2%대 초반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다. 특히 정부는 재정정책의 규모와 속도를 크고 빠르게 진행하여 성장률을 2%대 중반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나섰다.

그래픽=연합뉴스

선행지수의 바닥 확인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이 정도 성장할 수 있다면 ‘선방’이다. 또한 성장률 궤적이 실제로 이렇게 진행된다면 우리 주가 역시 지난 2년간의 부진한 상대 성과를 뒤로 하고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주가가 경기에 선행한다고 보면, 지금은 적어도 순환적 상승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행지수 바닥 신호와 경기 확장 가능성은 여전히 여러 측면에서 위태롭다. 경기 확장의 정도나 길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적인 경기 사이클을 따라 간다면 적어도 2021년까지 확장이 지속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이번에는 그보다 짧고, 그만큼 회복의 폭도 크지 않은 경기확장 구간이 될 것 같다. 따라서 주가도 연중 내내 상승하기보다는 하반기 어느 시점에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갈수록 강화되는 글로벌 보호주의 압박

무엇보다 미중 무역갈등은 어느 정도 진정되겠지만 글로벌 보호주의의 압박이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2018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격으로 극명하게 드러나긴 했지만, 사실 자국보호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에서 직접적, 암묵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미국의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 ▲일본의 아베노믹스 ▲중국의 제조2025 ▲독일의 industry 4.0 등 선진국의 정책은 제조업의 선진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속내를 들여다 보면 보호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국 내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주지하다시피 선진국들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중국 등 저임금 노동력을 앞세운 신흥 제조업 국가에 차례로 기존 제조업을 넘겨줬다. 가격 경쟁력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조선업 해체 현상을 대표하는 ‘말뫼의 눈물’이 대표적인 예다. 

2019년 글로벌 경제를 압박했던 미중 무역분쟁은 올해 다소 진정되겠지만 글로벌 보호주의 바람은 당분간 더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진=연합뉴스

그래도 금융위기 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선진국들은 노동비용이 높아지고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고도화된 쪽으로 산업구조를 집중할 필요가 있었던 데다, 세계화 과정의 산물인 저가 수입품이 실질소득 증대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화는 교역량 자체를 늘려 글로벌 성장에 긍정적이었고, 대량의 저가 노동력이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며 나타난 물가 안정으로 저금리 정책과 레버리징을 바탕으로 한 자산가격 상승이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성장률이 높아져도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는 ‘고용없는 성장’이 문제였지만, 정책 여력이 풍부해 큰 갈등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동안 성장을 이끌었던 세계화와 레버리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 탓이다.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진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선명한 자국 보호주의 성향을 드러냈지만, 사실은 이미 그 전부터 고용의 질과 양을 높이고, 늘리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떨어진 글로벌 교역량의 속도는 좀처럼 빨라지지 않고 있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

우리나라 내적인 고유의 문제도 있다.설사 글로벌 경기가 바닥을 탈출한다고 해도 IT·반도체나 바이오 산업, 정부가 주도하는 소재, 부품, 장비산업 등을 제외하면 민간 기업의 대규모 국내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몇 완성차 업체의 어려움, 조선업의 구조조정 등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중국의 과잉 공급과 저임금 신흥 제조업 국가의 약진은 국내 투자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한류, 컨텐츠 부문에서의 투자 증대가 한 몫을 담당해줄 것으로 보이지만 디즈니, 넷플릭스 등 글로벌 컨텐츠 공룡들의 확장은 한편으로 기회인 동시에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여년에 걸쳐 새로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아직까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 분야에서 과거 조선·철강 등이 글로벌 선두로 나설 때와 같은 탄력을 기대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인구 문제 역시 우리의 취약점이다.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고, 경제활동 인구, 내구재 소비 잠재력이 높은 연령층의 인구 역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또한 이를 막기 위한 정책의 효과도 고령층의 고용 증가 이외 부문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전통 제조업의 부진이 30~40대의 취업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해당 연령대 인구 감소폭을 뛰어넘는 30~40대 취업자 감소는 우리나라 역시 앞서 지적한 양질의 일자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정부 정책 역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속되어 온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아직 성장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으로부터 가계로의 소득 이전 정책이 기업의 마진에 부정적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올해 경제 정책은 조금 더 기업과 성장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이지만,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완강한 입장이 이러한 정책 효과를 상쇄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구조적인 하락과 순환적인 상승의 힘 중 어느 것이 강하게 나타날까?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2020년은 미국의 대선, 우리나라의 총선과 같은 정치적 이슈가 있어 더욱 가늠이 어렵다.

단순하게 보면 선거를 앞둔 집권 세력이 일반적으로 경기 부양 정책을 쓴다는 점에서 올해 국내외 정치 일정이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이나 여론의 분열이 심화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투자와 소비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정권이 바뀔 가능성도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정책에 익숙해진 기업과 가계 입장에서는 정권 교체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느껴질 수 있다. 상반기 중에는 순환적인 힘이 강하게 작동하더라도, 그 이후로는 구조적인 힘이 강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사진 가운데)를 비롯한 경제팀은 지난해 12월19일 합동브리핑을 통해 올해 성장률 2.4%를 달성하겠다고 밝혔으나 대내외 환경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진=연합뉴스

'1%대 성장'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게다가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성장률이 2%대 초반이냐 중반이냐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다음 번 경기 수축 과정에서 성장률이 1%대로 내려 앉을 가능성이다.

앞서 지적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감안할 때 지금으로서는 조만간 1% 또는 그 이하로의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해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성장의 과실을 누구에게 더 배분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은 많은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고, 다른 정책의 동력 역시 떨어질 것이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10년의 시작 시점에서 암울한 생각만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각종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하고 다시 글로벌 1등 국가의 지위를 단단히 하고 있는 미국 ▲앞서 언급했던 ‘말뫼의 눈물’을 교훈 삼아 스타트업을 활성화시킨 스웨덴 그리고 ▲아직 성공 여부를 예단할 수 없지만 어쨌든 말라가던 일본 경제에 활력을 되찾아 준 아베노믹스의 사례 등을 보면 한 나라를 바꾸는 데는 생각보다 그리 많은 기간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재 우리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정책에 있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반성하고 고쳐야 하며, 어렵더라도 내 생각만을 고집하지 말고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에 걸쳐 1%대 상승을 지키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 최석원 센터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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