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다큐멘터리가 뉴스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KBS에서는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이 중지되었고 극장가에서는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흥행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이 시기 다큐멘터리가 회자 되는 이유는 이 장르가 가진 힘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 대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상 장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특히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라면 사실을 파악하는 자료와 이를 전달하는 서사 구조에 객관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주 M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는 흩어진 단서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응축해 보여주었다.
귀향하지 못하는 어느 노병의 이야기
지난 20일 MBC에서 특집 다큐멘터리 ‘무슈 전, 어느 노병의 귀향’이 방영되었다. 6.25 전쟁에 참전했으나 휴전 후 무국적자가 된 채 프랑스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있는 한 노병의 이야기였다.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 요양병원에는 ‘무슈 전(Monsieur JOHN)’이라 불리는 이가 있다. 그의 본명은 ‘전병일’로 한국 출신이다. 94세 고령인 그는 작은 병실에서 홀로 생의 마지막 나날들을 지내고 있다.
그런 그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갈 수 없다. ‘무국적자’라 여권이 발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70여 년간 프랑스에서 살아온 전병일은 그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장기체류자 신분일 뿐이었다.
1929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전병일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동해를 통해 월남한다. 1951년 봄, 국민방위군 장교가 된 그는 노무대를 인솔해 프랑스대대에 배속된다. 그러나 중공군의 공세로 노무대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는 프랑스대대에 남아 이 부대의 모든 전투에 참전한다.
1953년 휴전 후 전병일은 한국에 남는 대신 프랑스대대를 따라 인도차이나에 가서 외인부대에 지원한다. 그렇게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독립 전쟁에 참전한 그는 1961년에 외인부대를 전역한 후 지금까지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전병일의 증언과 프랑스대대와 외인부대 기록을 기반으로 그의 삶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기억과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지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제작진은 전병일의 증언에서 이가 빠진 부분을 자료에 담긴 기록으로 퍼즐을 맞추듯 채워 넣는다.
제작진은 프랑스 정부와 개인이 소장한 자료를 뒤져 전병일의 기억, 즉 개인적 증언이 실제 존재했던 사실임을 확인했다. 한쪽의 주장으로만 추론하지 않고 기록에 담긴 사실 등 다양한 각도에서 진실에 다가간 것.
이러한 노력은 모두 전병일의 귀국을 위함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목과 달리 노병 전병일은 현재까지 한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프랑스 시골의 한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미덕을 볼 수 있었다. ‘허구적 해석’, 혹은 ‘자의적 해석’이 아닌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느껴졌다. 제작진은 그들이 내린 결론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그 몫을 시청자에게 맡겼다. 그래서 더욱 울림을 준 다큐멘터리였다.
여전히 쉬쉬하는 ‘세월호’라는 화두
사실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 이유로 제작이 중지되는 다큐멘터리도 있다. KBS에서 제작 중이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가 그랬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올해로 10년이다. 그래서 KBS의 ‘다큐 인사이트’ 팀에서 세월호 10주기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고 오는 4월에 방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방영 시기를 두고 반대했다.
다수 언론의 취재를 종합하면, KBS 제작1본부장과 시사교양국장은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4월 방송은 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총선은 4월 10일이고, 방송 예정일은 4월 18일이었다. 그러니까 총선 8일 후에 방영될 예정이었는데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운 것.
결국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는 제작이 중지되었다. 제작진에 따르면 약 40% 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고.
KBS 간부진이 이 다큐멘터리의 4월 방영을 반대한 이유는 그만큼 세월호가 폭발력이 큰 화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참사는 10년 전에 벌어졌지만,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의혹이 남아 있는 데다 책임이 있는 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미흡했다는 평가라서 더욱 그렇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길 이번 다큐멘터리는 누군가에게 듣기 불편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KBS의 윗선이 수호하고픈 그 누군가에게 다큐의 폭발력이 미칠까 봐, 다시 말해 총선을 앞두고 다큐 제작 소식만으로도 특정 진영에 혹여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선제적으로 조치한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모든 건 사실이 가진 힘이 크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에 기반한 자료를 토대로 사실에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자 하는 이에게 다큐는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다만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이의 의도가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때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다큐도
지난 17일 KBS2 <영화가 좋다>는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을 비중 있게 다뤘다. ‘잊고 있던 역사적 진실’이라며. 편성만 놓고 보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독재자를 미화한 다큐 <건국전쟁> 홍보는 되고,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에 대한 추모 다큐멘터리는 안 된다는 KBS의 잣대, 혹은 노선이 보이는 듯하다.
22일 현재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은 약 85만 명의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여당과 보수 진영, 그리고 개신교회 측의 관람 독려가 있어 100만 관객 돌파는 문제없어 보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본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질까?
다양한 평가를 종합하면 <건국전쟁>은 감독이 믿고 싶은 바를 보여주는 한편, 말 하고 싶은 바를 들려준 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서사를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던 잠재 관객의 욕망을 충족한 것이기도 하고.
이런 관점에서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진실이 사실 아닌 것으로’ 오도될 수도 있고, ‘사실 아닌 것이 진실로’ 왜곡될 수도 있다.
중요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진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진실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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