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 ‘소풍’과 ‘플랜 75’가 말하는 초고령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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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 ‘소풍’과 ‘플랜 75’가 말하는 초고령사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2.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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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영화는 세상을 투영한다. 극영화는 창작을 기본으로 하지만 이야기 속에 담긴 배경과 철학은 세상의 모습에서 영향받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영화 <소풍>과 일본 영화 <플랜 75>는 노인이 인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로 가슴을 울리는 감동, 혹은 머리를 때리는 충격을 주고 있다. 

‘소풍’, 남이 아닌 우리 이야기

김용균 감독의 영화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사이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할머니나 할아버지 역할을 도맡아 하던 이들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200년에 가깝다. 

<소풍>은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로 분류된다. 약 12억 원의 예산으로 제작되어 지난 7일 예술영화 전문관 등에서 소규모로 개봉되었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설 연휴를 기점으로 상영관이 확대되는 추세다. 15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20만 7333명을 기록했다. 

<소풍>은 또한 8일 연속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체 박스오피스 기준으로는 5위에 올랐다.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약 25만 명 정도인데 지금 분위기라면 이번 주말을 지나며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독립영화는 주로 상업영화가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면에서 <소풍>은 한국 영화에서 소재로서 배제되었던 노인 세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도 했지만, 노인과 대척점에 있는 다른 세대와의 관계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영화 <소풍>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소풍>은 고향 남해로 떠난 두 친구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의 여정을 따라간다. 이 여정에서 은심과 금순은 소녀 시절처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은심의 첫사랑이었던 태호(박근형)을 만나 그 시절의 따뜻한 추억을 마주하게도 된다. 

하지만 이들의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자식들은 부모에게 받을 것만 찾는다. 지역 개발을 두고 첨예한 갈등도 접한다.

이렇듯 영화는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인 문제와 세대 갈등을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녹여냈다. 재산 상속과 부모 부양 문제로 인한 가족 간 갈등, 지역 개발과 관련한 세대 간 의견 충돌, 그리고 웰다잉과 존엄사. 

모두 영화 속 이야기지만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사회로 달려가는 한국의 곳곳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플랜 75’, 만약 국가가 죽음을 지원한다면

일본 영화 <플랜 75>는 노인의 안락사를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가상이지만, 국가가 75세에 다다른 노인들의 안락사를 지원한다는 설정이다. 제목의 숫자 ‘75’는 75세를 의미한다.

하야카와 치세 감독의 영화 <플랜 75>는 충격적이지만 차별적인 이야기로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격인 황금카메라특별언급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지난 7일 개봉했다.

영화의 배경은 초고령사회 일본의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영화 첫 부분에 노인들을 무차별 살해하는 청년이 나오는데 그는 ‘넘쳐 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는 취지의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다. ‘노인들도 사회에 더는 폐 끼치기 싫을 것’이라며.

이러한 노인 혐오 범죄에 응답하듯 나온 정부 대책이 ‘플랜 75’였다. 영화에는 이 정책을 마주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노인, 친척의 신청서를 접한 ‘플랜 75’ 담당 공무원, ‘플랜 75’를 상담해주는 콜센터 직원과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이들의 시선으로 정부 주도 안락사, 혹은 존엄사를 이야기한다.

영화 플랜 75 스틸컷.
영화 <플랜 75> 스틸컷.

하야카와 치세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 속 안락사 신청 연령을 75세 이상으로 설정한 건 일본 현행 정책에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약 20년 전부터 일본 정부가 75세 이상을 ‘후기 고령자’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75세라는 기준에서 ‘당신의 인생은 여기서 끝입니다’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 그래서 국가가 이런 시스템을 만든다면 75세로 선 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국가가 주도하는 안락사라는 논쟁적 주제를 다뤘음에도 영화 분위기는 상당히 차분하다. 그래서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지만) 안락사를 국가 정책으로 정했는데 이를 대하는 당사자들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노인들은 국가가 진행하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지켜보는 젊은 세대들은 자연스러운 현실로 여긴다. 담당 공무원은 신청자들이 결정을 철회하지 않도록 독려하기까지 한다.

이는 일본과 일본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은유 같기도 했다. 일본은 자기 책임론이 강한 나라로 개인을 희생해서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예로부터 존재해왔다. 즉 대의(?)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 2차세계대전에서 ‘옥쇄’를 강조한 일화들을 보면 특히 그렇다. 감독도 인터뷰에서 일본 국민성을 영화 속에 녹여냈다고 밝히며 ‘가미카제’를 예로 들기도 했다.

영화 <플랜 75>는 노인 안락사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이를 옭거나 그르다는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다만 감독은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노인의 가쁜 호흡 소리가 노년의 힘듦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 듯했지만, 영화 뒤로 갈수록 살아있음의 숭고함, 혹은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초고령사회를 마주한 한국

두 영화 <소풍>과 <플랜 75>는 이렇듯 초고령사회에서 실제 벌어질 법한 이야기, 혹은 공상으로나 접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의 소감은 각자 다르겠지만 노인들이 주류인 세상을 대비하라는 고언을 들은 듯하다.

한국에서 법으로 정한 노인 연령은 65세 이상이다. 이 나이가 되면 ‘노인복지법’에 의거한 다양한 복지정책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노인 인구 비중이 점점 커지며 정부 부담이 무거워지는 데에 있다. 지금 추세라면 한국은 2025년에 초고령사회가 될 예정이다. 노인 인구 비중이 20%를 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총선을 앞두고 노인 관련 정책을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거기에는 법적 노인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노인 대 청년의 대결 프레임을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두 영화가 이야기한 것보다 더한 세대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다 어쩌면 영화 속 설정이, 그러니까 ‘노인 안락사’가 일각에서 제시하는 초고령사회의 대책으로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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