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㉞ 북한산 바라보며 물놀이 즐겼던 그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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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㉞ 북한산 바라보며 물놀이 즐겼던 그린파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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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태풍이 가고 다시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물에 들어가고 싶어지지 않나요?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한강의 유원지처럼 가까운 하천이나 계곡은 경제적인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차츰 상대적으로 시설이 좋고 안전한 수영장의 인기가 많아졌지요.

과거 신문에서 ‘수영장’을 검색하면 1920년대에 평양, 대구, 인천, 개성 등에서 수영장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동강 강변이라든지 월미도 해변, 혹은 수원지나 저수지 등을 수영장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야외수영장 설치에 관한 기록은 1924년 1월 8일 조선일보에 실린 '훈련원 운동장 확장'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광희문 인근에 있던 훈련원 자리에 종합운동장을 만들었습니다. 축구장과 야구장, 그리고 테니스장이 들어섰지요. 이 종합운동장은 나중에 서울운동장을 거쳐 동대문운동장이 됩니다.

여름엔 수영장, 겨울엔 스케이트장

이때 야외수영장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기존에 있던 연못을 활용했다고 하는데요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지요.

한국전쟁 후 한창 재건이 진행되던 1960년대 서울에서는 어린이 전용 수영장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1960년 7월 24일 자 조선일보 ‘어린이 풀 생겼다’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장충단공원과 사직공원 등 서울 시내 공원 7곳에 어린이 전용 수영장이 들어섰습니다. 국민학생이라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었고 입장료는 2시간에 30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제로 운영되었네요.

1970년대 그린파크 전경. 우이동의 북한산 자락에 들어선 수영장이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1970년대 들어서 여름철이 되면 서울 시내의 수영장을 소개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수영장이라는 문물이 새로웠는지 수영장 이용 에티켓을 소개하는 기사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1970년 7월 18일 조선일보에 실린 ‘가족과 함께 풀장에서’ 기사가 당시 수영장 이용 세태를 잘 보여줍니다.

기사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수영장에서는 공중도덕이 중요하다며 특히 "수영 전에 비누로 샤워를 하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게 수영 모자를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기사의 취지는 원래 서울의 수영장들을 소개하는 거였습니다. 시립수영장 외에도 당시 새로 생기기 시작한 사설 수영장들을 소개하는데요 제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우이동 그린파크도 등장하지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인 1973년까지 수유리에서 살았습니다. 사실 수유동이 정식 지명이지만 제게는 수유리가 더 입에 익습니다. 주위에서 다 그렇게 불렀거든요. 

수유리 인근에는 우이천처럼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절에는 장마로 물이 불어나지만 않으면 어린이들이 멱을 감을 수 있었지요. 지금은 복개된 북한산 자락의 작은 하천에서 물놀이했던 경험이 제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그린파크에 다녀온 아이들이 그러지 못한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나 봅니다. 수유리에 살았던 선배의 경험을 들어보니 그린파크에 다녀온 친구들이 풀장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미끄럼틀의 짜릿함을 자랑해 부러웠다고 하네요. 

저는 유치원에서 그린파크로 물놀이를 간다고 해서 어머니가 새 수영복과 튜브를 사 주신 게 아직도 인상적으로 기억납니다. 

70년대 서울 북부지역 최고의 물놀이장

‘그린파크’는 수유리 바로 옆 우이동의 북한산 자락에 들어선 수영장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캐리비안 베이’ 정도의 위상을 가진 워터파크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수유리 등 서울 북부 지역 주민들에게는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물놀이장이었지요. 

1970년대 그린파크의 하이슬라이더. 입장료 외 추가요금을 내야하는 시설이었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그린파크는 원래 1968년 우이동의 북한산 기슭에 문을 연 호텔입니다. 그런데 부속시설인 야외수영장이 더 유명했지요. 그린파크 수영장은 2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수영장이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슬라이더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경향신문 1972년 7월 22일의 ‘자녀 손 이끌고 가까운 물 쉴 곳을 찾는다’ 기사에 그린파크 이용 안내가 담겨 있습니다. 대인 400원과 소인 300원의 입장료로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하이슬라이더는 1회에 2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변변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1970년대 초반 대형 수영장과 다양한 놀이 시설을 가진 그린파크는 제게 다른 세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린파크에 가봤던 제 지인들도 생애 처음 느껴본 별세상으로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갈 수 없어 저와 제 지인들은 그린파크를 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릅니다. 2000년대가 되기 전에 문을 닫았거든요. 

저는 북한산에 갈 때면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출발하는 백운대 코스로 오른 적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등산로 오른쪽에 있었던 그린파크 수영장에 관한 추억이 떠오르곤 했지요.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자 우이동 종점 근처에만 가면 공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린파크 터에서 나는 소음이었습니다. 공사 안내 간판을 보니 콘도를 짓고 있었습니다. 

2020년 우이동 파라스파라 리조트 건설 현장. 북한산 자락의 그린파크 터에 들어선 시설이다. 사진=강대호

그런데 국립공원인 북한산 자락이라 부동산 개발과 관련한 논란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개발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개발제한구역이니까 콘도를 못 짓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찬성 측에서는 개발제한구역과 국립공원 경계 밖의 토지라고 맞섰다고 하네요. 

논란이 길어지면서 사업자의 부도로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2019년에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파라스파라’는 2021년 9월에 준공되었습니다. 

저는 공사 소음을 피해서 한동안 우이동 종점이 아닌 다른 코스를 이용해 북한산을 오르느라 공사 진척 상황을 몰랐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한 지인이 그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인은 SNS에 북한산을 바라보며 물놀이하니까 어린 시절 그린파크의 추억이 떠올랐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서울 여러 곳에서는 지자체 등이 간이 물놀이장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의 어린이들은 어쩌면 먼 훗날 여름이면 광화문광장의 물놀이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주에는 광화문 일대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2023년 여름 서울 광화문광장.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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