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민의 키워드 일본] 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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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민의 키워드 일본] 사케
  • 윤경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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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민 칼럼니스트] 서울 종로2가 젊음의 거리 일대에는 일본어 간판을 단 이자카야(居酒屋)가 즐비하다. 한 건물은 통째로 일본식 선술집인 이자카야가 차지하고 있다.

이자카야에 앞서 한국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건 로바다야키(ロバタ焼き)다. 로바다야키는 화롯가(炉端)에서 생선과 조개, 채소류를 구워 먹는 요리다. 

일본 요리와 함께 즐기는 일본 전통주는 '사케(酒)'. 사케는 사실 술을 통칭하는 일본어다.

그런데 일본 술은 크게 소주(焼酎)와 니혼슈(日本酒)로 나뉜다. 일본 소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화학주와는 달리 고구마나 보리 등을 재료로 빚은 소주가 대부분이다.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만드는 지역소주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니혼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종이다. 정종은 원래 니혼슈의 유명 브랜드다. 마사무네(政宗)의 한자를 그대로 '정종'이라고 읽어 일반명사처럼 사용된 것이다.  

일본의 사케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해외로 팔려나간 일본 사케는 일본에서 사용되는 한 되 규격의 병 '잇쇼빙'으로 약 1994만 병이나 된다(요코하마세관 자료).

사케 열풍은 특히 미국에서 세게 불고 있다. 미국의 사케 수입량은 2012년 395만 리터에서 2022년 908만 리터로 증가했다. 10년 만에 2.3배가 늘어난 것이다. 아칸소주에는 대규모 사케 양조장이 등장했다. 이 양조회사의 벨 벤 부사장은 NHK와의 인터뷰에서 "아칸소를 향후 사케의 명산지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연간 50만 리터의 사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케 양조회사의 브라이언 브룩링클러 사장은 "사케를 일본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전통주 사케. 사케는 사실 술을 통칭하는 일본어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주류회사의 직접 공략도 시작됐다. 닷사이로 잘 알려진 야마구치현의 아사히주조는 올해 뉴욕주에 직접 양조장을 세웠다. 북미양조조합에 따르면 미국에 건설된 사케 양조장은 이미 20개를 넘었다고 한다. 현지 언론들도 미국에서 사케붐이 일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술은 어떨까. 한류 열풍에 힘입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일찌감치 일본에 진출한 진로소주는 순풍을 타고 있다. 진로가 만드는 소주는 2018년 1900만 병을 일본에 수출했는데, 이듬해인 2019년에는 수출량이  2200만 병으로 15.7% 증가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수출량이 줄어들었지만 2021년에는 다시 2300만 병으로 늘었다. 

한국 소주의 인기 비결은 역시 한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K팝의 영향이 크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진로 소주가 자주 등장하면서 일본 소비자들에게 친숙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인기 배우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처럼 만든 광고를 보면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여 나온다. 

막걸리도 인기다. 2021년 일본으로 수출된 막걸리는 1650만 리터로, 전년 대비 14.6% 증가했다. 값이 싸고 건강에 좋다는 이미지가 있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많으며, 특히 여성들이 즐겨 마신다.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의 미디어센터에서 일본 부흥청 관계자들이 후쿠시마현 등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의 술(사케)과 음식을 홍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G7 만찬에는 후쿠시마산 사케가 제공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의 미디어센터에서 일본 부흥청 관계자들이 후쿠시마현 등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의 술(사케)과 음식을 홍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G7 만찬에는 후쿠시마산 사케가 제공됐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잠시, 한국과 일본의 술 문화를 비교해 보자. 

한국은 맥주를 타 마시고 일본은 물을 타서 마신다. 검찰인지 군인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폭탄주 문화는 현대 한국의 대표적 음주 문화다. 과거에는 맥주가 가득한 맥주잔에 양주 스트레이트잔을 넣어 마시는 것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양도 맥주잔 절반 사이즈로 줄었다. 

폭탄주는 점차 진화하고 있다. 맥주에 연태 고량주를 섞는 연맥, 맥주에 막걸리를 섞는 맥막까지 제조법이 다양하게 진화 발전하고 있다. 한때 하이트진로에서는 폭탄주 제조 자격증까지 만들어 인증해주기도 했다.

반면 일본은 술에 물을 타 마신다. 니혼슈는 예외다. 소주만 해당한다. 차가운 물을 섞으면 미즈와리(水割り), 따뜻한 물을 섞으면 오유와리(お湯割り)라고 부른다. 위스키처럼 얼음을 넣어 먹기도 한다. 이는 록꾸(ロック)라고 부른다. 온더락의 일본어 발음 온자록꾸(オンザロック)를 줄인 말이다.

일본 사케의 해외 진출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사케가 더 날개를 달기 전에 우리도 한국 술을 전 세계에 보급해야 하지 않을까. 국내 주류 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한류 열풍을 타고 전 세계인들을 한국 술에 흥겹게 취하게 만드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한국의 소주와 막걸리, 인삼주 나아가 폭탄주까지 만들어 마시며 즐기는 날이 머지않아 올지 모른다.

 

● 윤경민 칼럼니스트는 YTN에서 도쿄특파원을 역임한 일본통이다. 채널A에서 국제부장, 문화과학부장을 지냈다. 늦깎이 학도로,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덕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일본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은퇴 후 전 세계 20개 도시 한 달씩 살아보기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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