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민의 키워드 일본] 휴대용 재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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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민의 키워드 일본] 휴대용 재떨이
  • 윤경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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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민 칼럼니스트]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길바닥에 담배꽁초가 즐비하다. 대부분 실내에서는 금연을 원칙으로 하는 빌딩숲이다 보니, 애연가들이 수시로 도로 한쪽을 장악한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식사를 마친 그들이 어디선가 스멀스멀 모여들어 희뿌연 연기를 뿜어낸다. 금연자인 나로서는 그 매캐한 연기 속을 해치고 나아가야 하는데,  코를 막고 숨을 참을 수밖에 없다.

한 무리의 애연가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다들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버리고 신발로 비벼 끈다. 혹은 검지 손가락으로 툭하고 불똥을 튀긴 뒤 남은 꽁초를 들고 가는 이들도 있는데, 꽁초의 향방이 궁금하다.

10년 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바지 주머니에 넣거나, 담뱃값에 넣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럼 그 지독한 담배냄새가 몸에 밴다. 그 불쾌한 악취를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다 참아내야 했구나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1호선 지하철 종각역에서 내려 제일은행(지금의 SC제일은행) 본점을 끼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출근하던 시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물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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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의 한 거리에 금연거리 표시가 바닥에 새겨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 뒤를 걸었을 수많은 이들은 내가 뿜어내는 담배연기를 어떻게 참아냈을까. 어디 이뿐이랴, 서울역 지하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웠던 시절도 있었고  버스 안,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흡연이 합법이었던 때가 있었다. 식당 금연이 법으로 정해진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미개한 사회에서 우리가 살았던 것인가.

각설하고, 그런데 흡연자들이 아무렇게나 버리는 담배꽁초는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 나뒹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보기 불쾌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문제에서 나아가 지구 환경을 해친다. 하천과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담배꽁초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한다. 미세플라스틱은 호수와 강, 바다 등 해양 생태계까지 파괴한다.

뿐만 아니라 요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는 도시 침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빗물이 잘 빠지도록 만든 거리 곳곳의 우수관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환경미화원들이 매일 같이 담배꽁초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우수관을 지켜내기엔 역부족이다.  

십수 년 전 필지가 도쿄특파원이던 시절 일본에서는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본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늦은 밤 시간, 신주쿠의 환락가 같은 곳은 지저분해졌지만 적어도 낮시간대에는 거리가 눈이 부실 만큼 깨끗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공중질서의 일본'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무렵 이미 보행흡연 금지 구역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담배를 피우며 걸으면 보행자흡연금지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은 어르신이 다가와 점잖게 말한다. "이곳은 보행흡연 금지 구역입니다. 담배를 꺼주세요" 그러면서 뭔가를 내민다. 휴대용 재떨이다. 구청 소속인지, 그냥 민간단체 소속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단속원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일본에서는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대부분 편의점 앞에 있는 재떨이 앞에서 서서 담배를 피운다. 역 앞 흡연실도 흡연자로 가득하다. 그리고 흡연자들이 휴대용 재떨이를 지니고 다니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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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들. 사진=연합뉴스

 

담배꽁초가 도시미관을 해치고 도심 침수까지 유발하는 골칫덩이로 부상하자 몇몇 지자체들이 묘안을 짜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이들을 신고하면 포상하는 '꽁파라치' 포상 제도 대신 '담배꽁초 수거보상제'를 도입한 것이다. 담배꽁초를 가져오면 보상으로 현금이나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주는 제도다. 꽁초 무게는 최소 500g 이상이어야 하는데, 1g당 20원에서 30원씩 쳐서 최소 만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용산구, 강북구, 성동구 그리고 광주 광산구 등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루 종일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 하루 만 원 벌기도 힘들다고 하니 차라리 꽁초수거로 전향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다. 

손가락질받으며, 폐를 끼치며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들에게 한때 애연가였던 금연자로서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담배를 끊은 일이라고 말이다. 금연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썼을 담뱃값이 얼마나 될지 계산해 봤다. 하루 한 갑, 5천 원씩 계산하면 (5000원 곱하기 365일 곱하기 9년) 무려 1642만 5000원이나 된다. 술 마실 때면 보통 두 갑을 피웠으니 담배를 끊은 이후 지난 9년 간 최소한 2000만 원은 번 셈이다. 왠지 공돈이 생긴 느낌이어서 뿌듯하다. 건강은 어떤가. 계속 피웠다면 아마도 폐는 망가졌을 것이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담뱃갑 표지에 혐오감을 주는 사진을 넣고, 담뱃값을 올렸다. 식당에서의 금연을 법제화하고 금연빌딩도 늘렸다. 효과는 꽤 있었다.

19세 이상 성인 흡연율은 남성이 31.3%, 여성은 6.9%(질병관리청의 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남성 흡연율이 2010년엔 무려 48.3%였으니 10년 만에 17% 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청소년 흡연율도 2011년 12.1%에서 2021년 4.5%로 감소했다.

일본도 흡연율이 낮아지는 추세다. 2019년 남성은 27.1% 여성은 7.6%다.

모두가 알고 있듯 담배는 해롭다. 흡연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친다. 정부와 지자체는 금연정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국민 건강을 위한 일이다. 이제 애연자가 설 곳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년 흡연 경험자로서 말하지만 금연이 답이다.

 

● 윤경민 칼럼니스트는 YTN에서 도쿄특파원을 역임한 일본통이다. 채널A에서 국제부장, 문화과학부장을 지냈다. 늦깎이 학도로,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덕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일본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은퇴 후 전 세계 20개 도시 한 달씩 살아보기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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