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이효리 논란'과 확장하는 평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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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이효리 논란'과 확장하는 평론의 세계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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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매주 목요일 밤에 방영하는 tvN의 <댄스가수 유랑단>이 여러 이슈를 낳고 있다. <댄스가수 유랑단>은 우리나라 여자 가수 계보를 대표하는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 그리고 이효리가 자신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다양한 조합의 대중 앞에서 공연하는 콘셉트다.

그녀들의 공연은 방송되기 전에 이미 현장의 팬들이 직접 촬영한 이른바 직캠 영상으로 각종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영화평론가의 <댄스가수 유랑단> 속 이효리를 언급한 SNS 게시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논란은 대중문화 공론장에 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평론가는 누구인가?

논란은 영화평론가 김도훈의 SNS 게시물이 이효리를 저격했다며 비난한 대중과 이들 대중의 비판을 그대로 받아 적은 연예 언론 매체의 기사들에 의해 촉발됐다. 논란이 일자 김도훈은 SNS에 올린 개인적 글까지 기사로 생산하냐며 당혹감을 호소하고는 문제의 글을 내렸다.

이번 논란의 기저에는 감히 이효리에게 지적질이냐는 비난과 그런 지적을 평론가라는 지위로 행사하느냐는 비판이 도사리고 있었다. 덕분에 평론가에 대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전적 의미에서 ‘평론’은 “작품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작품이나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글”을 말한다. 분석 대상으로 “문학, 미술, 연극,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이 주로 해당하지만 “사회 문화 현상”처럼 다양한 분야들도 평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분석 과정을 글로 구현하는 사람을 평론가라 칭하고, 해당 분야에 따라 문학평론가나 영화평론가 같은 전문 지위를 가진 이들이 그들의 전문 분야에 관한 평론을 쓴다.

그런데 평론 장르의 글을 쓴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평론가라는 지위가 부여되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문학인데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이나 출판사의 공모전 수상처럼 통과의례를 만족해야 문학평론가라는 지위가 부여된다. 

영화 분야에도 영화 평론 부문을 뽑는 신춘문예가 있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영화평론가 중에는 언론사의 영화 담당 기자나 영화 잡지 기자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이동진 평론가가 일간지에서 영화를 담당했고, 오동진 평론가도 언론사 기자를 거쳐 영화 잡지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이동진과 오동진은 기자 시절 영화에 관한 많은 글을 쓰며 대중들 뇌리에 영화평론가라는 지위가 각인되었다. 이번 논란의 주인공 김도훈도 영화 잡지 출신이다. 

여담이지만 청년들에게 사랑받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 평론 부문의 첫 회 당선자이기도 하다.

한편, 특정 분야의 평론가라고 해서 자기 분야의 글만 쓰는 건 아니다. 문학뿐 아니라 사회 현상 전반에 관한 글을 쓰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처럼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글을 쓰는 평론가들이 많다. 글쓰기는 생각과 생각을 잇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신형철은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하다"며 “건축에 적합한 자재를 찾듯이 정확한 문장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평론가는 글만 쓰는 게 아니라 발언도 해야 한다. 인쇄 매체의 힘이 줄고 영상 매체의 영향력이 올라가며 글보다는 말을 해야 할 기회가 많은 것. 이제 평론가는 ‘정확한 문장’은 물론 ‘정확한 말’을 찾아서 발언해야 한다. 

이는 사회 구조가 바뀌며 함께 바뀐 사회 현상과도 관련 깊다. 오늘날의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가 SNS의 언론화 경향, 정확히는 SNS가 언론 매체들의 기사 소재 수집처로 이용되는 경향이다. 

가수 이효리. 사진=tvN <댄스가수유랑단> 인스타그램

공론장이 된 SNS

SNS(Social Network Service)는 이용자가 자기의 상태나 상황을 표현한 글이나 사진을 그 이용자와 연결된 다른 이용자들에게 공개하는 특성을 가졌다. 특정 다수에게, 때로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다는 의미에서 사적이면서도 어느 순간 사적이 아니게 되는 특성도 있다. 

유명인이 SNS에 올린 발언을 언론에서 인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치인이 특히 이를 잘 활용하는데 지명도가 높을수록 SNS 발언은 언론에서 좋아하는 글감이 된다. 비슷한 경우로 엔터테인먼트 담당 기자들이 연예인들의 SNS 사진과 발언 등을 인용해 연예 기사로 생산해 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SNS는 이용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종의 공론장으로, 혹은 공론장에 오르는 예비 공론의 역할로 전이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연예인의 일상,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는 것과 같은, 때로는 뭔가로 마음이 상하거나 즐겁다는 극히 개인적 일상까지 언론 기사 형식으로 노출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개인적 입장에서 사적으로 올린 게시물이 공론으로 비화하는 데에 있다. 

SNS 게시물은 말의 특성과 글의 특성을 함께 갖고 있어서 게시 의도와 상관없이 게시물을 등록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친구에게 내뱉는 하소연처럼 맘 편히 올릴 수 있지만 글로 남겨지는 한편 이리저리 옮겨진다는 특성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정하거나 삭제해도 누군가에 의해 원본이 캡처돼 영원히 박제될 위험이 있다.

SNS는 또한, 평론가로서 쓴 글뿐 아니라 평론가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 하지만 개인 자격으로 발언한 사견이, 마치 평론의 지위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할 때도 있다. 이번 김도훈 평론가의 이효리 관련한 논란이 그러한 사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김도훈의 발언을 만약 다른 사람이, 무명의 개인이 했다면 대중의 한 의견으로 여겨졌거나 그냥 묻혔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발언자가 대중에게 이름이 익숙한 영화평론가여서 그 발언에 공적 성격이 더해진 걸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소동은 SNS에 올린 평론가의 개인적 발언이 그 의도와 상관없이 공론화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가 된 듯하다.

평론가는 아무에게나 부여되는 지위가 아니다. 다만 그가 평론에서 주장한 의견에 책임져야 하는 엄중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평론가는 그의 주장이 담긴 평론뿐 아니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사적인 발언까지 공론장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숙명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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