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미성년 연예인 외면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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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미성년 연예인 외면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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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몇 년 전 어느 K팝 시상식 도중 일부 아이돌 멤버가 화면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생방송 화면에 잡혔었다. 한 케이블에서 생방송으로 방영된 시상식이 밤 10시가 넘도록 진행돼 미성년인 참석자들이 퇴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명시된 규정이다.

그런데 이 법률 때문에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불만이 일고 있다. 일명 ‘이승기 법’ 혹은 ‘이승기 사태 방지법’으로 개정을 꾀하고 있는데 기존보다 규제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승기 사태 방지법’이 일으킨 불똥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대중문화예술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관련 사업자, 대중문화예술인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건전한 대중문화를 확립하고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률의 취지는 이렇듯 관련 산업 이해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 혹은 보호를 법률로 명시하는 데에 있다. 

논란이 일고 있는 일명 ‘이승기법’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소속 연예인에게 수익 정산 내역을 연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을 일컫는다. 

법률을 개정하는 여러 이유 중에는 기존 법률의 부족함을 메우는 데에 있다. 이승기법 또한 이승기와 전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의 미정산 분쟁 때문에 공론화되었다. 

이번 개정안에는 불투명한 회계처리로 연예인과 소속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의도가 담겼다. 기존 법률에 상징적 의무 정도로 명시했다면 개정안에는 구체적 횟수와 방법을 지정했다.

하지만 연예인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의도가 담긴 새 개정안이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청소년 연예인 활동 시간과 관련한 조항도 함께 개정을 꾀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보호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는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보호’ 조항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 법률 제정 취지 중 하나는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즉 미성년 연예인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에 있는데 그들의 “권익이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하며,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는 목적을 가졌다.

그래서 “대중문화예술인의 신체적ㆍ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선택권 등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계약에 포함하여야 한다”고 미성년 연예인의 인권 보장 조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특히, 미성년 연예인들의 ‘노동 시간 상한’이 정해져 있다. 기존 법률에 15세 미만은 주 35시간, 15세 이상은 주 40시간이었다. 다만 15세 이상은 당사자 합의에 따라 1일 1시간, 1주일에 6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 

일종의 ‘통금 시간’도 정해져 있다. 미성년 연예인들은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는 일 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생방송 중 일부 출연진이 퇴근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에서는 미성년 연예인 활동 시간을 두고, 12세 미만은 하루 6시간 주 25시간, 12∼15세는 하루 7시간 주 30시간, 15세 이상은 하루 7시간 주 35시간으로 변경했다. 

이 활동 시간에는 방송 출연, 행사나 공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새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이들 미성년 연예인들이 소속된 회사로서는 줄어드는 활동 시간만큼 매출이 감소할 것은 물론 미성년 멤버가 포함된 4세대 아이돌 그룹 등 신인들의 활동이 위축될 게 분명하다. 

다만 국회 본회의 절차가 남아 있어 새로운 개정안이 확정된 건 아직 아니다. 그래서 이해 당사자들이 반대 의사를 피력하며 관련 조항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한국음반산업협회,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한국음악콘텐츠협회 등 5개 단체가 “연령을 세분화해 청소년 연예인의 용역제공 시간을 제한하는 이번 개정안은 현실을 외면한 ‘대중문화산업 발전 저해 법안’”이라고 성명을 낸 것.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1일 전체 회의를 열어 일명 '이승기법'으로 불리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진=연합뉴스

해외의 청소년 연예인들은

해외 사례를 연구한 문헌들을 참고하면, 일명 ‘해외 선진 국가’에서 미성년 연예인들의 활동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 관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수면 시간 보장 차원에서 노동 시간을 적용하고 있고, 건강권과 학습권 또한 구체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만 13세가 넘어야 노동 활동이 허용되나 연예 활동은 부모의 허락하에 13세 미만도 가능하다. 다만 아동 등 청소년이 연예인으로 활동하려면 부모나 친권자의 동의서, 학업에 지장이 없다는 학교의 증명서, 연령을 확인할 수 있는 호적증명서 등을 첨부하여 관할 노동 관청에 허락받아야 한다.
 
미국은 미성년자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하려면 출연자, 보호자, 고용주 등 3자가 동시에 노동 관련 부처에 허가받도록 심사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학습권 또한 구체적이다. 학생이 작품에 출연하려면 위의 3자 외에 학교장의 허가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또한 부모나 보호자, 그리고 한 명의 현장 교사와 한 명 이상의 간호사가 촬영장에 동행해야 한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청소년 연예인들에 대한 각종 규정, 특히 수면권, 건강권, 학습권 등을 무겁게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들에서 얻어야 할 시사점은 방법론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인권 보호 철학이다.

한국의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또한 과거 법률 개정 과정에서 해외 선진 사례들을 참조해 청소년 연예인들의 인권 조항들에 담았다. 다만 그 조항들에 선언적 규정이 많아 추상성이 강하다는 평가받기도 했다. 방법론을 앞세운 보여주기식 규제라는 것.

그에 더해 이번 개정안은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주먹구구식 규제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면에는 미성년 연예인들을 사업 아이템으로 여기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인식이 있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새 개정안을 만든 측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도 미성년 연예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그들은 어쩌면 미성년 연예인들을 어른들의 처분에 따르는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즉 미성년 연예인들에게 그들의 행복한 인생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권리가 있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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