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다음이 기다려지는 여성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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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다음이 기다려지는 여성 예능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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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여성 연예인이 대거 출연하는 예능을 지금의 방송가는 사랑한다. 첫 회 방영 전부터 화제성이 폭발한 <댄스가수 유랑단>처럼 여성 연예인 여럿이 함께 뿜어내는 에너지와 그들이 일으키는 화학작용을 지금의 대중이 좋아하는 현상을 반영한다. 

그런 대중들의 지지 덕분에 시즌2로 돌아오거나 시즌2가 만들어지기를 염원하게 되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tvN의 <뿅뿅 지구오락실2>가 그렇고, ENA의 <혜미리예채파>가 그렇다.

여성 연예인들이 주인공인 예능

두 프로그램의 첫인상은 비슷하다. 젊은 여성 연예인들로만 구성된 출연진이 등장하니까. <지구오락실>에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래퍼, 개그우먼이 출연하고, <혜미리예채파>에는 아이돌 그룹 멤버는 물론 댄서와 방송인이 출연한다. 

지금은 방송가에서 사랑받는 조합이지만 한때 여성 연예인은 예능에서 보조적 역할 혹은 제한적 역할에 그쳤었다. 프로그램도 대개 남성 연예인들이 진행했다. 

그런 차별적 상황 속에서 여성 연예인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자 여성 연예인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 <지구오락실>이 새로움을 찾는 대중들에게 제대로 어필하게 되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혜미리예채파>였고.

제작진이 들으면 부정하고 싶겠지만 두 프로그램은 비슷한 면이 또 있다. 제작진이 야심 차게 준비한 게임보다 제작진의 관여 없이 출연진끼리 휴식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더 재미있다고 평가하는 대중이 많다는 것이다. 

우선 <지구오락실> 출연진들은 촬영 틈틈이 자체 영상 제작에 진심이다. 상황극을 만들어 각자 설정된 역할을 연기한다거나 촬영 장소를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영상은 SNS 등에 <지구오락실> 홍보로도 쓰여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올리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후발 주자인 <혜미리예채파>는 방송 초기 <지구오락실>의 아류라는 평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점차 화제성이 올라가며 나름의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요인 중에 출연진들이 휴식 시간에 함께 즐기던 놀이가 있다. 

<혜미리예채파> 출연진들은 공기놀이나 보드게임, 혹은 마피아 게임을 하며 서로 친해졌고, 그 과정에서 출연진들의 캐릭터는 물론 다양한 역학 관계도 생기며 프로그램의 재미 요소가 되기도 했다. 특히, 장난감 총을 이용한 변형 좀비 게임은 출연진들의 캐릭터와 역학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명장면으로 팬들이 꼽는다.

ENA 예능 프로그램 '혜미리예채파'

비슷한 듯 다른 두 프로그램

<지구오락실>과 <혜미리예채파>는 외형적으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시즌2에 들어간 <지구오락실>과 이제 막 시즌1을 마친 <혜미리예채파>는 서로 다른 개성으로 팬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지구오락실>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미리 설정한 ‘세계관’에 충실한 모습이다. 게임이나 음반에 쓰이던 세계관 설정이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쓰인다. <지구오락실> 출연진들은 제작진이 설정한 세계관 속 세상과 현실 속 세상을 자유로이 오간다. 

그들은 세계관의 허점을 지적하거나 난관으로 설정된 장치를 수월히 극복하면서 제작진에게 당혹스러운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직접 창조한 세계관에 빠지기도 한다. 이는 상황극과도 연결되는데 모녀 사이를 연기하는 가족 놀이, 가상의 유명인을 연기하는 셀럽 놀이 등으로 변주한다.

<지구오락실> 출연진들이 주어진 세계관을 갖고 놀았다면 <혜미리예채파> 출연진들은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가는 개척 시대를 경험해야 했다. 촬영 장소에 아무것도 없어 출연진들이 게임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식량이나 물품들을 얻어나가야 했던 것. 

그렇게 <혜미리예채파> 출연진들은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리듯 필요한 것을 채워나가는 일종의 개척사를 펼쳤다. 그 과정에서 출연진들의 숨은 면모가 드러나면서 캐릭터 구축은 물론 성장 서사로도 이어졌다. 이를 보여주듯 시즌1 마지막 회에서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과 프로그램 속 출연진들의 변화 과정을 비교하는 영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제작진의 모습도 비교된다. <지구오락실>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나영석 PD가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피디나 작가가 게임 진행을 맡는 역할에서 벗어나 출연진과 티키타카를 벌이며 영상에 등장하는 장면은 나영석류 콘텐츠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혜미리예채파> 제작진들은 제한적으로 프로그램에 관여한다. 그들은 게임을 진행하는 뒷모습과 목소리 정도로 영상에 등장한다. 그런데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스태프들이 등장하곤 했다. 팬심에서 출연진에게 간식을 사줬다든지 게임에서 애매한 판정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출연진 편을 들어 준다든지 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다음이 궁금한 대중들 

무엇보다 두 프로그램은 시즌2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는 점에서 성공한 예능이다. <지구오락실>의 경우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일찍이 시즌2 제작이 결정되었다. 올 초에는 촬영도 진행되었고.

국내 언론이 <지구오락실> 시즌2 촬영 진행을 알게 된 것은 팬들이 SNS에 올린 소식 때문이었다. 이들은 핀란드에서, 혹은 발리에서 <지구오락실> 시즌2를 촬영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현장 목격담을 올렸다. 이는 화제가 되어 언론까지 인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만큼 <지구오락실> 시즌2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는 증거였다.

<혜미리예채파>는 지난 주말에 내보낸 시즌1 마지막 회에서 복선을 뒀다. 출연진들이 적립한 포인트를 시즌2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서. 물론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는 공식 발표는 없었다. 다만 그 장면은 시즌2를 향한 제작진의 바람이 담긴 것으로 보였다. 또한, 다음 시즌에도 <혜미리예채파>를 보고 싶다는 팬들의 염원이 담기기도 했을 것이다.

다음이 궁금해지고, 그래서 다음이 기다려진다는 건 그만큼 대중의 취향을 저격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새로움을 찾는 대중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제성이 부족해도, 대중의 외면을 받아도, 유독 과거 콘셉트를 고집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런 방송 제작에 책임 있는 이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눈을 돌리는 대중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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