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노래의 본질에 충실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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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노래의 본질에 충실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1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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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카페에서 어느 노래가 귀에 쏙 들어왔다. 제목을 물어보니 ‘건사피장’이라 했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줄여서 그렇게 부른다며. 마침 작업 중이었는데 자판으로 ‘건물’을 쳐 보았다. 연관 검색어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가장 위에 나타났다. 그날부터 하루에도 여러 번 이 노래를 감상하게 되었다. 그때가 2월 초였다.

하이키(H1-Key)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걸그룹 ‘하이키(H1-Key)’가 불렀다. ‘서이’, ‘리이나’, ‘휘서’, ‘옐’의 네 명으로 구성된, 2022년 1월 초에 데뷔해 이제 갓 1년 경력의 신인 아이돌이다. 

‘건사피장’은 ‘하이키’가 지난 1월 5일 데뷔 1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앨범 ‘Rose Blossom’의 타이틀곡이다. 2월 12일의 방송을 끝으로 하이키는 이번 앨범 홍보 활동을 마쳤지만, 타이틀곡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대중에게 계속 스며들고 있다. 

앨범 ‘Rose Blossom’은 그만큼 하이키에게 의미 깊은 기록을 선물했다.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터키와 바레인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데 이어 싱가포르, 멕시코, 호주, 태국 등 7개국 아이튠즈와 애플 뮤직 톱 앨범 상위권에 등극했다. 

지난 11일에는 한터차트가 제공하는 ‘리얼-타임 한터 차트’(Real-time Hanteo Chart)의 ‘피지컬 앨범 차트’(Physical Album Chart) 부문에서 1위를, ‘뮤직 차트’(Music Chart)에서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앨범이 발매 초기가 아닌 6주차에 1위를 했다는 건 뒷심을 제대로 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 중심에 타이틀곡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있다. 이 곡은 발매 당일 한터차트 실시간 차트 5위, 멜론 최신 차트 32위, 중국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QQ뮤직 한국 차트 3위에 올랐다. 이후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멜론, 지니, 바이브 등 주요 차트에 진입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하이키의 인지도도 함께 올라갔다. 하이키는 한국매니지먼트연합이 주관하는 'KM차트'가 공개한 1월 차트에서 ROOKIE(신인) 차트 여자 부문 1위를 기록했고, 지난 12일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2월 걸그룹 브랜드평판에서 뉴진스, 블랙핑크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하이키의 인기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의 히트를 두고 중소 기획사의 쾌거라거나, 음악 자체로 거둔 승리라고 평을 하는 대중이 많다. 

중소 기획사가 거둔 쾌거

하이키의 소속사인 ‘그랜드라인그룹(GLG)’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대형 기획사나 그 계열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SM, JYP, YG 혹은 하이브 같은 대기업과 관련 없다는 것이다. 이들 대형 기획사들은 중소 기획사들과 규모만큼이나 차원 다른 사업상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대형 기획사들은 상장회사인 만큼 제작비 조달과 스태프 구성에 유리한 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보유한 아티스트 자체가 마케팅 요소로 작용한다. 이들 회사는 인기 아이돌 그룹을 보유하는 한편 신인 아이돌도 함께 키운다. 흔히 말하는 형제 그룹, 자매 그룹, 혹은 남매 그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형 기획사들이 여러 팀을 보유해 순차적으로 제작하는 건 매출 다각화를 위해서다. 선배와 후배를 패키지로 묶어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내외 행사에 옵션으로 내세워 인지도와 매출을 함께 올릴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선배 아이돌의 팬덤은 후배 아이돌을 함께 응원할 수밖에 없다. 만약 후배 아이돌 성적이 나쁘면 회사 재정에 악영향을 끼쳐 자기가 응원하는 아이돌의 향후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까 봐서다. 

그래서 특정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들은 같은 회사 소속 다른 아이돌의 음원을 클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대형 기획사가 제작한 아이돌의 팬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거대한 팬덤의 일부만 클릭하더라도 그 영향이 적지 않다. 대형 기획사는 신인 아이돌 제작에 큰 비용을 들인다 해도 비교적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 것이다.

반면 중소 기획사들은 그런 혜택은 꿈조차 꾸기 힘들다. 기성 아이돌이나 뮤지션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모를까 어쩌면 대부분은 신인 아이돌 데뷔시키기에도 숨 가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하이키가 데뷔 1년 남짓 만에 히트곡을 내고 인지도가 올라간 것을 두고 중소 기획사가 거둔 쾌거라는 평이 나오는 것이다.

걸그룹 하이키

공감 주는 가사와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듣고는 가사에 특히 공감했다는 대중이 많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결코 꺾이거나 시들지 않고 아름답게 활짝 피우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가사다. 이른바 ‘중꺾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과 상통한다.

유튜브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공식 뮤직비디오는 2월 17일 현재 1165만 뷰에 이른다. 거기에는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가사” “가사가 미쳤다” “가사 때문에 하루 종일 생각남” “사랑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나에 대한 노래라 좋다” 등 가사에 공감했다는 이들의 댓글이 넘쳐난다. 

특히, “어렵게 나왔잖아”라거나 “악착같이 살잖아”와 같은 가사에 감정을 이입한 이들이 많다는 평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언뜻 신인 아이돌의 다짐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힘든 시절을 겪는 이들을 응원하는 노래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를 위한 노래로도 치환할 수 있는 것.

그래서인지 “고갤 들고 버틸게 끝까지”와 같은 대목에서 울컥했다는 이가 많다. 그렇게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대중에게 감정을 이입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댓글을 보면 외국어로 쓰인 게 많다. 많은 댓글이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하이키 멤버들 목소리의 특별함을 언급하고 있다. 멜로디 라인은 서정적이다. 처음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아름답고, 그래서 더 잘 들린다. 강렬한 리듬과 현란한 전자 음향 비중이 큰 최근의 케이팝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대신 목소리와 멜로디가 킬링 포인트다. 대중들은 하이키 네 명의 목소리를 몽환적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더 돋보인 건 아니었을까.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한편으로 2000년대 케이팝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대중들은 새로운 감각이 넘치는 노래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렇듯 신인 여자 아이돌 ‘하이키’가 부른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가사와 멜로디가 좋은 노래, 즉 기본에 충실한 노래를 대중이 선택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중소 기획사가 제작한 한계가 있더라도 좋은 음악이라는 기본을 지킨다면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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