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40년 만에 다시 날아오른 송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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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40년 만에 다시 날아오른 송골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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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명절은 지났지만, 명절 특집 방송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지난 21일 KBS2에서 방영한 송골매 콘서트 <40년만의 비행>의 잔향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시청률은 5.9%로 나훈아나 심수봉 등이 출연했던 지난 특집 방송보다 다소 저조했지만, 화제성에선 전혀 뒤지지 않는다. 송골매 콘서트는 중장년에게 추억 이상의 가치를 준 프로그램이었다.

록밴드의 음악을 소재로 한 방송

지난주 설을 앞둔 지인들의 관심사는 ‘송골매’였다. 명절 인사 나누면서 송골매 콘서트 방송 안내를 덧붙이는 이들이 많았는데 젊은 시절부터 나름의 음악 감상 성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이돌이나 트로트 가수가 나오지 않는 명절 특집이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지금의 방송가가 다루는 소재를 음악으로 놓고 보면 아이돌 아니면 트로트다. 음악 순위 방송에는 거의 아이돌 가수들이 나오고,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는 거의 트로트 음악과 트로트 가수가 등장한다.

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아이돌과 트로트로 쏠리는 건 흐르는 물과 같은 순리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팬층이 두터워 여러모로 방송사에 유리하다. 특히 시청률에 일자리가 걸린 제작진들에게 아이돌과 트로트는 최소한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일 것이다.

그런데 황금연휴의 황금 시간대에 특집 프로그램으로 콘서트를, 그것도 아이돌이나 트로트가 아닌 록밴드의 콘서트를 편성했다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을 사건이다. 

제작진의 이런 용기에 시청자들이 화답했다. 5060세대의 단체 대화방이나 SNS에 송골매 콘서트를 두고 ‘귀가 시원했다’는 취지의 평들이 올라왔다. 만약 그 시간에 아이돌이나 트로트 가수가 나왔다면 이들은 TV 앞에 모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연휴 기간에 안방극장에 등장한 송골매, 그것도 배철수와 구창모가 함께 있는 모습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대학가요제 그룹사운드의 추억

송골매는 대학가요제가 낳은 산물이다. MBC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항공대 밴드 ‘활주로’의 배철수가 중심이 되어 1979년 송골매를 결성했다. TBC 해변가요제에서 수상한 홍익대 밴드 ‘블랙테트라’의 구창모가 나중에 합류하며 송골매는 대중이 기억에 남는 록밴드가 되었다. 둘은 훗날 인터뷰에서 대학가요제를 통해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송골매라는 걸출한 밴드를 배출한 대학가요제는 우리나라 대중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다. MBC에서 1회 대학가요제를 개최한 1977년 즈음의 한국 대중음악계는 암흑기로 평가되는데 대마초와 저항적 표현을 문제 삼아 이 시기에 퇴출당한 뮤지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를 대학가요제 출신들이 메웠다는 평가가 있다.

MBC 대학가요제가 인기를 끌자 방송사들은 강변가요제와 해변가요제 등 대학생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여럿 만들었다. 이러한 대학가요제들은 당시 ‘그룹사운드’라고도 불린 록밴드의 산실이었다. 대학에는 그 학교를 대표하는 밴드가 있었는데 서울농대의 샌드페블스, 건국대의 옥슨, 서강대의 킨젝스 등이 그렇다. 배철수와 구창모도 학교 록밴드 멤버였다.

대학가요제에 나온 록밴드들은 청소년들의 우상이기도 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항공대의 활주로가 ‘탈춤’을 부르던 장면을 기억한다. 배철수가 드럼을 연주하며 노래까지 부르는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드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실제 대학가요제 때문에 악기를 배운 친구들도 있었다.

한 지인이 중학생 시절 그룹사운드를 결성한 경험을 SNS에 올렸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서점에 가면 ‘나 어떡해’, ‘연’, ‘탈춤’ 같은 대학가요제에 나온 밴드 음악을 악기별로 편곡한 악보들을 갖추어 놓았었다. 그렇게 악보를 구한 지인은 친구들과 어설프게나마 그룹사운드 흉내를 냈었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는 대학 입학 후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는 것이었다고.

송골매 콘서트 <40년만의 비행> 사진제공=KBS

 

송골매와 함께 비행한 중장년 팬들

무엇보다 송골매 콘서트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관객들이었다. 지난해 12월 일산 킨텍스에서 프로그램 녹화를 위한 공연을 진행했는데 2시간여 열창한 송골매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곳에 모인 관객 5000여 명의 리액션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여느 공연장이라면 여성 비율이 현저히 높았겠지만 송골매 콘서트장에는 남성 비중도 높아 보였다. 화면에 비친 이들은 대체로 50대 이상으로 보였고 공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들은 송골매 공연 레퍼토리를 떼창으로 따라부르는 등 40년 만에 완전체가 된 송골매의 비행을 함께 즐기는 모습이었다.

사실 <40년만의 비행>이라는 콘서트 제목에는 송골매의 지난 역사가 담겼다. 송골매가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1984년, 구창모는 밴드를 탈퇴하고 솔로 가수로 나섰다. 콘서트 제목의 ‘40년만’은 그 이후 40년을 의미한다. 

송골매는 구창모가 나간 후에도 배철수를 중심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다. 하지만 밴드의 정체성은 보컬이 좌우할 때가 많다. 송골매도 마찬가지로 구창모의 빈자리가 커 보였다. 대중에게 송골매는 어쩌면 배철수와 구창모가 함께 있는 모습이 완전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40년만의 비행’에 환호한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송골매가 한창 활동할 때 그들은 10대나 20대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들은 50대를 훌쩍 넘겼고 송골매 멤버들은 일흔을 바라본다. 그래도 배철수와 구창모가, 그리고 송골매의 팬들이 아직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5060세대의 취향 재조명

방송에 비친, 송골매 공연에 참석한 관객들은 대부분 중장년인 듯하다. 그동안 트로트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준 중장년들과 같은 세대일지 모르겠지만 이들을 음악 취향으로 나누자면 전혀 다르다. 그래서 이번 명절 특집 방송이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다. 같은 세대라고 해서 같은 취향을 가졌다는 일반화에 빠지면 안 된다는.

사실 많은 5060세대가 1970년대와 80년대에 록 음악에 심취했었다. 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의 음악부터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그룹사운드 음악까지. 그 장점들을 잘 녹여낸 밴드가 바로 송골매였다.

이번 송골매의 <40년만의 비행>은 그동안 방송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장르인 록 음악을 재조명했고, 숫자는 적어도 충성도 높은 중장년 팬층을 발굴한 의의가 있다. 그런데 어쩌면, 송골매 못지않은 전설적 록밴드가 어디엔가 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다시 조명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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