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4월 10일 총선 승리를 위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 가운데 거대 여당과 야당이 가장 공을 들인 인재 영입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CEO 영입’에 있다. 정치와 경제를 따로 떼어낼 수 없고 경제가 외교안보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이상 CEO 영입은 정치권에서도 반드시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직접 공들여 고동진 전 삼성전자 IM(정보기술 및 모바일)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을, 더불어민주당은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을 영입했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자칭 타칭 경제전문가 후보를 46명 선정했고 민주당 역시 14명을 선정,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했다.
정치권의 CEO 영입, 왜 필요한 걸까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공영운 전 현대차 사장에 이어 최근 눈에 띄는 CEO 출신 후보가 또 한 명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처음 도입한 국민추천제에서 대구 동·군위갑에 최은석 전 CJ제일제당 대표이사가 공천되었다. 지난달 중순 진행된 CJ 임원인사에서 물러난 후 한 달 만에 정치인으로 변신, 재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고동진, 공영운, 최은석 후보는 모두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자신이 몸담았던 그룹의 주력계열사 CEO를 맡아 기업 성과에서도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이다. 또한, 모두 자신이 속한 대기업 오너의 신임을 받았던 최측근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비례대표 출마 논의가 있었으나 세 명 모두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것도 이색적이다.
이번 총선에서 인재 영입의 논란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나 이전 총선 대비 확연하게 인재 영입의 이슈가 적었던 건 사실이다. 그간 총선에서 새 인물을 발굴하기 위해 각 당은 TV에 출연했거나 경력이 부족하고 성과도 분명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을 20대를 대변한다는 키워드로 홍보, 발탁했다가 젊은 유권자의 반발만 받아 왔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기업에서 두각을 보이며 CEO까지 오른 인재를 각 당이 앞다퉈 발굴하고 영입한 사례는 격려받을 일이다. 이들 외에도 민주당은 넷마블과 엔씨소프트에서 경력을 쌓은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를 영입했으며 국민의힘은 강철호 전 HD현대로봇틱스 대표이사를 영입했다. 바야흐로 기업 임원 전성시대다.
재계에서는 경제관료, 경제학 교수보다 CEO의 경제 전문성이 훨씬 탁월하다고 종종 얘기한다. 실물경제의 최전선에 나선 이들이기에 보고서, 논문을 통해 경제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전문가와 보는 눈이 다르다는 얘기다. 경제가 화두로 떠오른 시대, 각 당이 경제안보와 국민경제를 위해 CEO를 영입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려되는 경제전문가 병풍 현상
국회의 기능을 자세히 살펴보면 절반이 경제 영역에 가깝다. 17개 국회 상임위원회 중 운영위, 여성가족위, 정보위를 뺀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민간 경제 활동과 관련된 법안을 다루고 있다. 경제전문가가 없으면 헛된 예산 정책이 수립될 수 있고 이를 체계적으로 조정, 감사할 수도 없다. 경제전문가가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점점 국회의 기능과 역할이 정치보다 경제에 밀접해지고 있는 데 비해 정치권에서는 경제전문가를 늘 병풍으로 세우고 그들에게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책 생산의 핵심 근거지가 되어야 할 국회가 정책은 커녕 정치에 완벽히 종속되어 이전투구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대기업 CEO, 임원 출신의 정치인이 없었던 건 아니다. 현대자동차 CEO 출신의 이계안 의원도 있었고 미래에셋대우 CEO를 역임한 홍성국 의원도 있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네이버 부사장 출신의 윤영찬 의원,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향자 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의 이용우 의원이 있었으나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했다.
기업가 출신의 정치인이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면 그 이유는 개인적인 것보다 구조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기업에서의 의사결정과 실행력, 성과 지향적 접근은 정치에서의 갈등 조정과는 다르다. 이른바 정치 문법은 기업 문법과 다르다. 안철수 의원은 정치와 기업의 의사결정 방식이 달라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의 영역이 다르고 문법이 다르니 경제전문가에게 정치권의 일상에 적응하란 얘기는 타당하지 않다. 경제전문가 영입은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생산적인 정책을 수립,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2대 총선에서 아쉬운 점은 경제전문가로 영입된 CEO, 임원 출신 후보 모두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한 점이다.
지역에 나가 선거에서 경쟁하고 승리하면 지역의 정치논리에 매몰된다. CEO로 국가, 국민경제를 바라보던 이들이 지역구 의원이 되면 지역 논리와 지역구라는 마이크로 관점에 갇히게 된다. 유능한 CEO라는 이력과 경제전문가 꼬리표는 저 멀리 사라지고 지역구 재선을 걱정하는 평범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CEO가 자신의 역량을 살려 정치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하는 시대는 여전히 요원하다. 글로벌 시장을 휘젓던 스타 CEO가 국회에서 병풍이 되는 것만큼 아까운 자원 낭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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