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경영학계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기업은 애플이다. 수많은 학술논문에서 강조하는 기업성과, 혁신의 성공비결과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도 늘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학자들은 개방형 혁신, 유연한 문화, 탈권위적인 리더십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애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플은 개방형 생태계가 아닌 폐쇄형 생태계와 비밀주의를 고집했고 국내 대기업보다 더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인 조직문화를 유지하는 기업이다. 이뿐인가. 작고하기 전, 스티브 잡스는 탈권위적 면모를 직원들에게 보여주지 않아 애플 조직 내부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정석대로 경영하지 않는 기업이 바로 애플이다.
애플에게 찾아온 위기의 시그널
학자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폐쇄형 혁신, 위압적 문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고집한 이유는 성과와 혁신에서 업종을 불문, 타 기업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애플에게 경고가 찾아온 걸까? 2011년부터 13년 동안 글로벌 시가총액 1위를 유지하던 애플이 왕좌를 MS에게 빼앗겼다. 1분기 애플 주가는 11% 급락했다.
2024년 애플에게 닥친 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IT 패러다임을 AI가 아닌 자율주행차에서 모색, 애플카 프로젝트에 주력하다가 기회비용을 치룬 점. 둘째, 애플앓이를 보이며 절대적으로 애플에게 지지세를 보여준 중국 시장이 자국의 IT기업으로 관심을 돌린 점. 패러다임에서 길을 잃었고 중국 시장을 놓쳤다.
애플이 애플카에 10년간 주력하며 쏟아 부은 금액은 100억 달러(13조원). 애플에게 13조원이라는 규모는 큰 투자금액은 아니지만 10년 간 자율주행에 주력하다가 오픈AI의 생성형 AI 열풍에 완전히 IT 패러다임과 주도권을 내주었다. 오픈AI와 협력 전선을 구축한 MS는 지난 10년간 애플에게 빼앗긴 IT 왕국의 지존을 되찾았다.
애플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며 애플 팬덤의 원조를 자처하는 중국의 외면은 글로벌 시장의 매서움을 보여준다. 애플의 아이폰이 방심한 사이, 화웨이는 자체개발 스마트폰으로 판매량을 키워나가며 중국 스마트폰 시장과 테블릿PC 시장에서 애플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중국 고객들은 애플 대신 화웨이를 선택했다.
그 결과, 다수 언론에서 애플의 위기론을 키워나갔고 뉴욕타임즈의 테크 전문기자 트립 미클은 <애프터 스티브 잡스> 서적을 통해 애플의 위기가 만만치 않음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애플의 경쟁자 삼성전자와 중국 기업이 AI 중심 스마트폰에 올인했고 중국의 가전업체 샤오미는 전기차를 출시했다. IT 시장은 격전지다.
애플의 하락세인가 성장세인가
애플의 위기론은 애플의 CEO를 맡고 있는 팀 쿡이 경영자로서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귀결된다. 삼성전자, 샤오미, 오포 등 아시아 기업의 AI 스마트폰 출시 공세, AI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MS의 부활과 구글 및 메타의 생성형 AI 공세, 중화권 기업과 소니 등 가전기업의 자동차 분야 진출 등은 쿡이 직면한 위기를 말해준다.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 미국의 투자은행은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조정했고 다수의 언론은 애플에서 MS와 구글로 다시 패권이 전환되는 2020년대를 맞이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반면, 애플이 시장에서 최초의 길을 항상 걷지는 않았기에 다시 한 번 애플이 IT 주도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많다.
중요한 건, 팀 쿡의 경영 스타일이다. 잡스는 자신의 직관과 천부적인 감각을 믿고 조직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경영자였다. 디자인, 마케팅, 기업전략 등 창조적인 영역에서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본인이 결정한 이유다. 반면, 쿡은 실무적인 의사결정에 본인이 참관, 개입하지 않는 경영자다. 구성원의 자율성과 참여를 존중한다.
2011년 잡스가 사망한 후 애플의 하락세를 대다수 전문가가 점쳤지만 회사 규모는 쿡이 맡은 이후 지난 13년 간 두 배 이상 확장했고 오히려 2011년부터 글로벌 시가총액 1위를 유지해왔다. 세계 최초 시가총액 2조 달러, 3조 달러 돌파 등 기념비적인 역사도 쿡이 쌓아 올렸다. 이번 위기는 쿡에게 또 한 번의 기회인 셈이다.
대중의 생각과 달리 애플이 최초의 길을 열었던 건 아니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은 애플이 아니었고 세계 최초 5G 스마트폰도 애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고 LTE를 고집하다 5G에 올라타자마자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10년 전 내놓은 애플워치도 최초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패션이 되었다.
팀 쿡이 치루는 또 한 번의 평가전
쿡이 AI에 뒤늦게 참전했지만 자신하는 이유는 이러한 애플의 경쟁력 때문이다. 쿡은 AI가 애플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거라며 자신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에 집중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 첫 시험대가 바로 두 달 후인 6월 진행될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발표할 애플의 메시지다. 애플은 최초가 아닌 차별화의 승부사다.
애플은 외부에는 폐쇄적인 생태계를 유지하지만 조직 내부에선 구성원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이를 토대로 실험과 시행착오를 용인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고 쿡은 얘기한다. 그가 AI에서 또 다시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후발주자로 개척하는 면모를 보인다면 팀 쿡은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는 역대 최고의 CEO로 거듭날지 모른다.
팀 쿡이 치루는 또 한 번의 평가전이 6월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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