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씨름 드라마인 줄 알았다. ENA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 말이다. 제목도 그렇고 씨름을 강조한 드라마 홍보가 그랬다. 씨름 꿈나무의 성장을 다룬 드라마라고 오해하기에 십상이었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보기 좋고 식감 좋은 재료가 잘 섞인 비빔밥 같다. 알콩달콩한 로맨스가 시작하는가 하면 다음 장면이 궁금한 미스터리가 등장하고, 매력 넘치는 주변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맛의 향연이 펼쳐지는 드라마다.
20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의 풋풋함
김백두(장동윤 분)는 거산군청 소속 씨름 선수다. 초등학생 때 씨름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32살인 지금까지 ‘장사’ 타이틀을 따지 못했다.
백두의 고향 거산은 씨름의 고장이다. 그래서 장사가 흔하다. 백두의 아버지만 하더라도 이름난 씨름 장사였고, 큰형인 김금강은 금강장사에 여러 번, 작은형인 김한라는 한라장사에 여러 차례 등극했었다. 심지어 시장통의 웬만한 아저씨들은 씨름 장사 출신일 정도다.
그런 거산군청 씨름단에 오유경(이주명 분)이 관리팀장으로 온다. 거산 사람들은 오유경을 외지인이라 여기지만 백두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릴 적 친구를 떠올린다. ‘오두식’이라 불린 선머슴 같던 여자아이, 사정이 생겨 야반도주하듯 거산을 떠나야 했던 어린 시절 친구.
백두의 짐작이 맞았다. 오유경은 오두식이었다. 거산 사람 아무도 두식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백두만 알아봤다. 두식은 백두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두식에게도 백두는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은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어린이라 불린 시절 헤어져 30대 사회인의 모습으로 만났지만, 둘에게는 여전히 풋풋한 감정이 남아 있는 듯하다.
8회까지 방영된 드라마를 보면, 백두는 두식의 영향으로 씨름에 대한 눈이 더욱 밝아지는 모습이다. 두식 또한 백두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둘은 오래도록 내재해 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아마도 사랑이 서서히 무르익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둘의 아웅다웅 혹은 알콩달콩한 모습은 30대라기보다는 초등학생이나 청소년이 사랑에 눈떠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흔들리는 감정에 당황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연인들 그 자체다.
시청자 반응을 살펴보면 백두와 두식이 로맨스를 키워가는 모습에 빠져든 이가 많은 듯 보인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달달한 로맨스만 있는 건 아니다.
복선이 곳곳에 깔린 미스터리
사실 두식은 경찰이다. 모종의 비밀 수사를 위해 신분을 감추고 거산에 왔다. 의문의 사망 사건이 거산에서 벌어졌는데 불법 도박 때문에 벌어진 씨름 승부 조작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식은 지금의 사건이 20년 전 자기네 가족이 거산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일과 연결되어있다고 믿는다. 이렇듯 드라마는 씨름이라는 스포츠 서사와 주인공 남녀의 로맨스 외에 미스터리라는 안전장치를 추가로 설치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곳곳에 뿌려진 떡밥이 많다. 즉 복선이 보인다. 뭔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인물들이 보이고, 아마도 뭔가를 목격한 듯한 강아지도 보인다. 시청자 반응을 살펴보면 이미 범인을 특정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허술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극적 장치지만 시청자들을 몰입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 8회에서는 의문의 인물이 비밀을 고백할 듯하며 끝나버려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주변 인물들이 펼치는 말맛의 향연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는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특히 ‘시장 삼총사’와 ‘씨름 아저씨들’은 이야기 전개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시장 삼총사’는 거산 시장에서 분식집, 떡집, 꽃집을 운영하는 아줌마들이다. 이들이 시장 골목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사건들을 설명하는 장치가 된다.
‘씨름 아저씨들’은 씨름의 고장 거산 출신답게 왕년의 씨름판을 주름잡았던 장사들이다. 이들은 거산군청 씨름단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즉 드라마 속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함께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 그렇다고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 또한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부연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거산은 가상의 동네지만 이들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사투리를 고려하면 경남의 한 지역으로 보인다. 그래서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이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있다. 자막이 그것이다.
여느 외화처럼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자막이 나온다. 그만큼 사투리가 많이 들린다. 만약 등장인물이 강한 어감의 비속어를 내뱉으면 자막에는 이를 완화한 표현으로 나온다. 이를 비교해 감상하는 것도 재미 요소다.
특히 백두의 두 형이 펼치는 사투리의 향연은 단연 돋보인다. 첫째 형 금강(양기원 분)은 이름처럼 금강장사 출신이고 둘째 형 한라(이유준 분)는 한라장사 출신이다. 두 사람이 사투리로 주고받는 대화는 리듬감이 있어 듣는 재미가 있다. 소소한 주제를 진지하게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귀에 쏙 들어온다. 두 배우가 부산 출신이어서 더욱 맛깔스럽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백두의 두 형은 2009년에 개봉한 영화 <바람>에서 주인공 짱구(정우 분)의 학교 선배 3인방으로 나온, “그라믄 안돼!”라는 대사로 기억되는 배우들이다. 단언컨대, 두 배우의 경남 사투리 향연이 나오는 장면은 찾아볼 만하다. 참고로, 3인방 중 나머지 한 명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 장군을 연기한 ‘지승현’ 배우다.
이렇듯 다양한 재미 요소가 있는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재방송을 거듭 보게 만드는 드라마다. 다만 시청률은 1%대와 2%대를 오가며 저조하다. 하지만 힐링 드라마라는 시청자 반응이 많은 걸 보면 수작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이 드라마는 12회로 계획되어 8부까지 방영된 지금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마도 씨름 선수로서 백두의 성장과 경찰로서 두식의 사건 해결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않을까. 물론 주인공들의 성장도 기대하게 되지만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무엇보다 두 주인공의 오랜 첫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지 기대하게 되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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