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코미디는 예능 프로그램의 선조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의 계보를 쫓아 올라가다 보면 코미디 프로그램이 나온다. 두 분야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는 덕목을 유전자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계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은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코미디는 방송국의 경제 논리와 대중들의 취향 변화 때문에, 즉 대중문화계의 자연선택에 따라 도태되어가는 듯했다.
코미디가 생존하려면 방송국의 잣대는 물론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폐지되고 부활하는 개그 프로그램
지난 몇 달간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큰 이슈 두 개가 있었다. 유일한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tvN의 <코미디 빅리그>가 지난 9월 폐지되었고, 폐지됐던 KBS2의 <개그콘서트>가 11월 12일 부활한 것이다.
<코미디 빅리그> 폐지가 충격을 줬다면 <개그콘서트> 부활은 기대를 줬다. 종사자들에게나 대중들에게나.
tvN의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는 2020년 6월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폐지된 후 지상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유일한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코빅 폐지는 특히 개그맨들에게 충격이었다. 출연진들에게는 일터가 사라진 거였고, 신인 개그맨들에게는 유일했던 방송계 진출 관문이 사라진 거였으니까.
개그맨 지망생들의 꿈이 있다면 아마도 방송국 공채 개그맨으로 뽑히는 거였을 것이다. 개그 프로그램이 방송국에서 사라진다는 건 신인 개그맨들의 등용문이 사라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SBS와 MBC의 개그 프로그램은 물론 KBS2의 개콘도 사라졌는데 tvN의 코빅까지 사라진 것이다.
<코미디 빅리그>는 개콘이 폐지된 뒤 신인 개그맨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때 지상파 공채 탈락자들이 모였다는 오명도 있었지만 ‘이은지’ 등의 부각과 함께 코빅 출신 신인 개그맨들이 한창 얼굴과 이름을 알려가던 중이었다.
프로그램 폐지의 충격을 얼마 전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했던 개그맨들이 토로했다. 그나마 얼굴이 알려진 이들은 신인 개그맨들의 활로를 걱정했다.
폐지됐던 <개그콘서트>가 부활을 알린 건 지난 5월이었다. 개콘에 출연할 크루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지난 8월이었다. KBS는 공영방송 50주년 기념으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과 <개그콘서트>을 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던 올 추석 즈음 개콘 팬들의 이목을 끈 프로그램이 있었다. MBC의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가 손수 마련한 추석 음식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장면이었다.
9월 29일의 이 에피소드에서 박나래는 KBS의 개콘 연습실을 방문했다. 개콘 출신 박나래는 개콘 부활을 앞두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후배들을 보고는 감격해했고, 가져간 음식이 모자라 중국요리를 시켜주며 격려했다.
이 장면에 개콘 팬들이 열광했다. 소문으로만 돌던 <개그콘서트>의 부활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으니까.
대중의 눈높이에 얼마나 부응하느냐가 관건
방송가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고 해서 코미디라는 장르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양해진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코미디 채널들을 대중들이 찾아다녔다. 소재 면에서는 오히려 방송국 시절보다 폭넓어졌다. 방송에서 기회가 없었던 낯선 얼굴들이 대세 코미디언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KBS 예능국을 움직였을까. 개콘이 폐지될 때 방송국 측은 폐지가 아니라 휴식기라고 발표했었는데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개승자>라는 프로그램을 2021년 1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방영했다.
<개승자>는 개콘 출신 선후배 개그맨들이 팀을 짠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소재 면에서 유튜브 등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면이 있지만 예전 개콘 문화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래도 대중들은 새로운 시도에 높은 점수를 줬다.
지난 12일에 방영한, 그러니까 부활한 <개그콘서트>는 뭔가 익숙해 보였다. 공개 코미디라는 틀을 유지했고, 개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봉숭아 학당’도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많은 출연진이 개콘 시절의 그들이었다. 물론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나 유튜브 등 다양한 출신의 출연진들도 등장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개콘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다는 모습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콘텐츠와 맥이 이어진 코너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평은 갈라진다. 연예 미디어들은 개콘의 부활에 넉넉한 점수를 주기도 했지만, 소재나 표현 면에서 예전과 다를 바 없다는 박한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코미디의 소재나 표현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박한 평가 때문일까. 지난 일주일 유튜브에는 개콘에 등장한 각 코너의 무편집 풀영상이 올라왔다. 여기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호평이 대부분이다. 무편집 영상은 방송에 내보낸 영상들이 편집됐다는 걸 의미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코너를 방송 시간에 맞춰 자르고 붙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현장 관객들과 시청자들이 느낀 온도의 차이가 큰 것이 아니었을까.
유튜브에서 인기가 있다 하더라도 방송이라는 매체에 등장하려면 뭔가 손질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신선도는 떨어지고 맛도 변하게 된다. 개콘 제작진과 출연진들의 고민이 깊어져야 할 지점이다.
그런데 이제 막 부활한 개콘이 강력한 경쟁자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에서 서바이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 로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8일 공개 예정인 <코미디 로얄>에는 코빅 출신 인기 개그맨들과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개그맨들이 출연해 경쟁할 예정이다. 출연진 화제성으로만 놓고 보면 개콘을 능가한다. 지상파와 비교해 소재나 표현 면에서 한계가 없는 넷플릭스이기에 코미디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지상파에 개그 프로그램이 생겼다고 해서 코미디가 부활한 건 아니다. 오히려 대중들의 관심이라는 자연선택의 갈림길에 선 것일 수도 있다. 대중들 눈높이에 맞춰 진화하든지 아니면 도태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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