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엽기적 사기 사건을 호기심으로만 보는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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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엽기적 사기 사건을 호기심으로만 보는 미디어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0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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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이렇게 미디어의 입맛을 딱 맞춘 이슈가 있었을까.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의 여자 펜싱 선수가 이혼 발표 후 두 달 만에 재혼 소식을 알렸다. 게다가 15세 연하에다 재벌 3세 출신의 사업가라고 했다. 심지어 이슈의 흐름이 점점 엽기적으로 흘러 대중들에게 폭발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했다.

스포츠 단신에서 연예 뉴스로

펜싱 선수 남현희는 지난 8월 21일 SNS를 통해 이혼 소식을 알렸다. 남현희는 열애 소식도 함께 알렸다. 이 소식은 처음에는 스포츠뉴스의 단신 정도로 취급됐었다. 그런데 이혼 소식과 동시에 전한 열애 소식에 호기심 갖는 미디어가 있었다. 연예 매체다.

남현희는 스포츠 스타이면서 셀럽이다. 박세리와 함께 <노는 언니>에 출연해 운동선수 출신 셀럽의 대표주자로 활동했다. 그러니 이혼 소식과 함께 전한 셀럽의 열애 소식은 연예 미디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환승 열애’를 의심하는 기사도 있었다.

남현희는 10월 23일 ‘여성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혼 상대가 전청조임을 밝혔다. 남현희로서는 오해를 잠재우고 대중을 설득하려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청조가 재벌가 출신이 아니라 사기 전력이 있는 전과자라는 제보가 잇달았다. 심지어 전청조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결국 모든 의혹과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전청조는 자기를 재벌로 포장하고 다닌 데다 법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여성이었다.

이때부터 전청조와 남현희 관련한 소식은 연예 뉴스를 달궜다. 사실 전개 과정만 보면 막장 드라마가 갖춰야 할 것은 거의 갖췄다. 이혼 소식과 함께 전한 열애 소식, 그리고 결혼 소식. 연상 스포츠 스타와 연하 재벌 3세의 사랑과 결혼. 여기에다 여느 막장에서는 볼 수 없는 쇼킹한 지점이 하나 더 있었다. 예비 신랑이 여자이니 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예 미디어들은 경쟁적으로 단독 보도를 발굴했다. 전청조가 중학생 시절 살았던 지역에서 어릴 적 일들을 수소문하거나 전청조가 다녔다던 어느 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을 취재했다. 전청조의 학창 시절 사진을 구한 언론사도 있었고, 전청조의 전 남친으로 주장하는 이의 인터뷰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남현희와 전청조의 관계가 낱낱이 드러났다. 본인들이 SNS에 올린 사진들 때문에 알려진 일들도 있었지만, 주변 인물들은 물론 피해자들의 제보가 빗발쳤다. 두 사람만의 은밀한 지점도 본인들의 과실을 덮기 위해 서로 까발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순애보로 보였던 러브스토리가 점점 엽기적인 사기 사건으로 흘러갔다. 미디어는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뛰었다면 대중들은 밈으로 즐겼다.

사기 행각이 밈으로

전청조는 유행어를 남겼다. “I am 신뢰에요.”라는. 어설픈 교포 흉내를 어눌한 교포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어 놀랍지만, 이 화법이 밈이 되어 SNS 세상에 흘러 다니는 건 더 놀랍다. 다양한 광고에 등장하더니 예능 방송의 자막으로도 등장했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전청조 말투를 패러디했다. 이날 '전참시'에는 송은이와 장항준 감독이 등장했는데 이들의 에피소드에 'Ok... 그럼 Next time에', 'I am 신뢰예요~'라는 자막이 달렸다. 모두 전청조의 말투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서도 전청조 말투를 따라 한 자막이 등장했다. 이날 '런닝맨' 멤버들은 가수와 비가수 팀으로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가수 팀으로 가려는 지석진을 두고 유재석이 "형이 가수는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이에 지석진이 "나 가수야"라며 반박했는데 'I am 가수에요'라는 자막이 나왔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한 장면

전청조의 어설픈 교포 말투가 언론에 공개된 건 지난달 26일, 그러니까 지난주 목요일의 한 방송 뉴스를 통해서였다. 이즈음부터 전청조의 말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자막으로 등장할 정도로 폭발력을 지닌 밈이 되었다. 불과 2~3일 만에 방송에 등장했다는 건 내부 결정과 편집 과정을 고려하면 무척 신속한 대응이었다. 

이후 일부 유명인이 이 말투를 흉내 냈고 각종 광고 콘셉트에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런 밈을 그냥 유행으로 치부하고 웃고 즐기면 되는 걸까?

이러한 화법을 패러디하는 건 어설픈 교포 말투 흉내를 조롱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중에는 그런 말투에 넘어간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패러디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디어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번 전청조 사건은 사기 사건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 가해자만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도 있다. 이들은 ‘I am’ 밈을 접할 때마다 우스갯거리로 전락한 사기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인 만큼 가해자의 말투를 패러디하는 건 최소한 방송이나 공인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전국적 관심사가 된 사기 사건

지난 2일 송파경찰서는 전청조를 특경가법, 즉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기는 보통 형법을 적용한다. 하지만 전청조는 범죄 행위로 인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으로 파악되기에 특경가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사기죄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죄질이 나쁘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른 사기 사건과 비교해 피해자와 피해 금액이 엄청 많은 사건도 아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언론 매체에 의해 관심을 받고 있고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지상파 뉴스에서 주요 소식으로 다룰 정도다. 

사기 사건이 지상파 뉴스에 나올 정도면 피해자와 피해 금액 규모가 엄청나게 큰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과거에는 장영자 사건이나 조희팔 사건, 최근에는 전세 사기 정도가 그랬다.

그런데 만약 전청조가 남현희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내세워 사기를 쳤다면 이렇게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관심은 커녕 그냥 묻히고 마는 많고 많은 사기 사건 중 하나로 취급받았을 게 분명하다.

사기는 사람들의 소망을 미끼로 던지는 질 나쁜 범죄다. 무엇보다 피해를 되돌리기 힘들다. 그런 사기 범죄를 두고 호기심 충족 대상으로 접근하는 미디어의 모습을 요즘 특히 많이 볼 수 있다. 전청조 사건이 아니더라도 대중들에게 의혹인 일들이 많다. 그런 이슈들도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미디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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