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JTBC 주말드라마 <힙하게>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엉덩이를 만지면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발휘된다는 설정부터 엉뚱한데 그런 초능력자를 한지민 배우가 연기하고 그녀의 민망한 능력을 수사에 이용하려는 형사로 분한 이민기 배우가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힙하게>가 화제를 끄는 요인 중에는 개성 넘치는 주인공 캐릭터와 이를 열연한 주인공 배우들의 합이 크게 작용했지만 다른 요인들도 있다.
인상적인 서사로 기억에 남는 조연들
드라마에서 조연은 보통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로 등장해 주인공이 주도하는 서사의 주변부 역할을 맡는다. 조연은 이렇듯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배역이라도 맡지만, 단역은 사건의 배경이나 장치 정도로만 쓰인다.
그런데 <힙하게>에 등장하는 조연이나 단역들은 주인공 못지않은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여느 드라마라면 남녀 주인공이 도맡았을 러브라인을 <힙하게>에서는 조연 배우들이 전담하고 있다.
동물병원 직원 정현옥(박성연 분)은 주인공이자 수의사인 봉예분(한지민 분)의 이모다. 경찰서 강력반 반장 원종묵(김희원 분)은 서울에서 좌천한 형사 문장열(이민기 분)의 상사다. 둘은 남녀 주인공의 가까운 인물을 맡은 한편 젊은 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과거의 연인으로도 등장한다.
어쩌면 애틋할 수도 있는 둘의 관계를 <힙하게>는 다른 드라마를 패러디하며 웃음 장치로 승화하고 있다. 주요 장면에서 동원한 드라마가 <스물다섯 스물하나>다. 그러니까 예분이 이모가 ‘나희도’를, 강력반장이 ‘백이진’을 패러디한 것.
<힙하게>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온 명장면들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나희도와 백이진이 펜싱장에서 알콩달콩하던 장면, 둘이 고장 난 수돗가에서 즐거워하던 장면, 희도가 시위대 옆을 지나다 이진을 마주치는 장면 등.
하지만 원작과 거의 비슷한 배경과 대사일 텐데 <힙하게>의 두 배우가 연기한 이 장면들은 웃음을 절로 뿜게 만든다. 마치 나희도와 백이진이 된 양 진지하면서도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연기하는 두 배우의 내공이 느껴지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또한, 타고난 일진이면서 주인공 예분의 절친인 ‘옥희(주민경 분)’와 생계형 무당을 연기하고 있는 박혁권 배우의 역할도 인상적이다.
왕년의 일진 옥희는 여전히 자기를 언니로 모시는 후배들을 동원해 각종 사건의 해결사를 자처하는 인물로, 맥아더를 신으로 모시는 무당은 신기가 떨어졌지만, 그 역시 각종 사건 해결에 영감을 제공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탄탄한 서사가 부여된 조연 배우들은 아마도 주인공들의 활약을 더욱 지피는 잉걸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역사가 필요한 충청도의 말맛
<힙하게>에는 주연이나 조연에 뒤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주는 단역들도 출연한다. 이들은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설명에서조차 나오지 않지만 강력한 한 방을 날려주곤 한다.
이들의 무기는 충청도 사투리다. 이들은 분명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외지 사람은 절대 알아듣기 어려운 은유 화법을 구사한다.
충청도 사투리의 효능을 제대로 보여준 장면은 이른바 ‘양파 살해사건’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어른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오는데 충청도식 화법으로 자기주장만 내뱉어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는 알아듣기 힘들다. 합의 과정에서도 온통 ‘거시기’만 남발할 뿐이다.
그래서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형사 장열에게는 통역사가 필요했는데 예분의 절친 옥희의 동생이자 강력반의 후배 형사인 ‘덕희(조민국 분)’가 맡게 된다. 충청도 사투리 통역사 덕희는 에둘러 말하는 충청도식 화법을 알아듣지 못해 눈치 없이 행동하는 장열을 은근히 타박하곤 한다.
<힙하게>에는 이렇듯 드라마 배경으로 설정된 충청도의 사투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데 그 말맛이 무척 맛난다. 무엇보다 은유법이 작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말다툼하던 덕희의 부모가 아들에게 나무를 베어오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도장을 파서 이혼 서류에 찍겠다는 엄포의 의미였고, 어머니는 (부부싸움의 결과로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니) 관을 짜겠다는 경고의 의미였다. 물론 드라마 전개상 농담이고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자기가 크게 화났다는 뜻이 담긴 은유였다.
또한 장열이 다쳐서 입원해 동네 어른들이 병문안을 왔을 때도 충청도 사투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힙하게’의 여러 장면에서 단역으로 등장하는) 동네 어른들은 부상 정도나 치료 경과 정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얼른 쾌차하라는 뜻이 전해지는 화려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물론 장열은 알아듣지 못해 덕희의 통역을 거쳐야 했지만.
<힙하게>를 보다 보면 드라마에서 구사된 충청도 사투리에 따뜻한 정이 담긴 걸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우회적이면서도 따듯한 표현을 구사하는 충청도식 은유 화법이 오늘날 직설적 화법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빌런이 없어 스트레스 안받는 드라마
드라마 <힙하게>에는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 없이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
사실 <힙하게>에서 ‘반려견 생매장 사건’이나 ‘여자 속옷 도난 사건’, 심지어 납치와 살인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니 범행을 저지른 범인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지만 <힙하게> 제작진들은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악역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을 주인공의 대척점에 선 배역으로 배치하지는 않았다. 악행 또한 범행 과정보다는 결과 정도만 내세우고 있다.
그런 면에서 <힙하게>는 스트레스가 적은 드라마다. 여느 드라마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만들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고 빌런을 등장시키곤 한다. 이런 서사가 드라마의 인기를 끄는 요소가 될 때도 많지만 과도한 설정이 짜증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주말 7회와 8회 방영을 앞둔 드라마 <힙하게>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남아 있고 빌런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떡밥이 뿌려져 있긴 하다. 그런데도 드라마 <힙하게>는 착한 드라마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 걸로 보인다.
무엇보다 <힙하게>의 가장 큰 미덕은 일요일의 끝자락을 웃으며 보내게 하는 드라마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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