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마스크걸, 가면 뒤에 숨고 싶은 욕망을 그린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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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마스크걸, 가면 뒤에 숨고 싶은 욕망을 그린 드라마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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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마스크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얼굴을 감추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평소에 드러내지 못했던 실제 내면의 모습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하지만 가면 속에 가두어 두고픈 가면 쓴 이의 창피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때로는 복면 속에 숨겨 두고픈 복면 쓴 이의 거짓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스크가, 혹은 가면이, 또는 복면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신분을 감추는 데에 있다. 영화나 드라마 또한 그런 상징성에 기반한 작품이 많다. 연일 화제가 만발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마스크걸>이 그렇다. 물론 과거에도 <반칙왕(2000)>이나 <복면달호(2007)>처럼 마스크를 쓴 주인공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가 있었다.

복면 쓴 영화 주인공

송강호 배우는 영화 <반칙왕>에서 일탈을 꿈꾸며 프로 레슬러가 되는 은행원 임대호로 분했다. 소심한 은행원 대호는 직장 상사의 헤드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레슬링을 배우지만 그 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인물로 나온다. 

차태현 배우는 영화 <복면달호>에서 복면 쓴 트로트 가수 봉달호를 연기했다. 지방 나이트클럽에서 로커의 꿈을 키우던 달호는 서울의 기획사에 발탁되었지만 자기 뜻과는 다르게 트로트 가수가 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두 주인공이 경기장과 무대에서 복면을 쓰게 된 배경도 비슷하다. 자기가 누구인지 대중들에게, 특히 가족 등 주변 인물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직장과 집만 오가며 소시민의 삶을 살던 대호에게 레슬링은 직장 상사의 괴롭힘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다 점점 레슬링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어느덧 프로 경기에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소심 그 자체였던 대호는 자기의 맨얼굴을 내보이기 싫어 복면 착용을 선택한다. 

그런데 복면을 쓰게 되니 없었던 용기와 힘이 솟구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대호는 복면을 쓰고 (사전에 약속한) 반칙을 서슴지 않는 캐릭터를 가진 레슬러로 성장한다.

음반 제작은 물론 인기가수로 키워준다고 해서 밴드 멤버들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건만 달호가 계약한 회사는 트로트 전문 기획사였다. 달호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기획사 대표는 그의 ‘뽕필’, 즉 재능을 알아보고 트로트 가수로 단련하고는 방송 데뷔까지 시킨다. 

하지만 방송에서 트로트 가수로 나서는 게 창피했던 달호는 복면을 쓰고 방송에 출연한다. 이에 대중들은 신비주의 콘셉트라 열광했고 달호는 복면 가수로 인기를 얻는다.

이렇듯 두 주인공은 복면을 방패 삼아 자기 안에 있었던, 하지만 미처 몰랐던 재능을 마음껏 펼친다. 물론 가면을 쓴 삶과 가면을 벗은 삶에 대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 진짜 자기의 모습인지. 그런 두 주인공이 복면을 벗게 되는 계기는 조금 다르다. 

대호는 레슬링 경기 중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복면이 찢긴다. 그렇게 복면이라는 굴레를 벗게 된 대호는 자신의 숨겨진 기량을 분노에 실어 발산한다. 달호는 음악에 대한 자기의 신념이 달라진 걸 느끼며 생방송 시상식에서 스스로 가면을 벗어버린다. 그리고 부끄러워했던 자기의 과거를 대중 앞에서 참회한다. 

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면 안에서 자기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한편 가면 밖에서 자기의 본모습을 드러낼 자신감마저 얻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가면’이라는 상징성이 부여한 상투적 교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계를 보여주는 면도 있었다. 그래서 두 영화에는 ‘가면’을 소재로 한 영상물, 일명 ‘가면물’이 보여주는 클리셰로 가득하다.

넷플릭스의 <마스크걸> 또한 가면을 쓴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마스크에, 혹은 가면에 좀 더 복잡한 상징성을 담게 되면서 <마스크걸>은 상투적 ‘가면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을 개척한 듯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 '마스크걸'. 사진제공=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 사진제공=넷플릭스​

이중적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마스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원래 <마스크걸>은 네이버에서 연재돼 큰 인기를 끌었던 같은 제목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완결된 인기 웹툰을 영상 작품으로 각색한다는 건 분명 부담이 큰 작업이다. 하지만 캐릭터 서사의 변화와 이야기 구조의 변화를 대중들이 받아들인 듯하다. 연예 매체는 물론 SNS에서 일고 있는 높은 화제성을 보면 그렇다.

무엇보다 <마스크걸>은 ‘김모미’라는 캐릭터를 3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3인 1역’을 시도하며 마스크를 쓰면서까지 다른 인생을 살고자 했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에서 주인공 김모미가 마스크를 쓰게 된 건 외모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을 꿈꿨지만, 세상의 눈높이에 닿지 않는 외모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녀는 평범한 회사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중들의 환호가 그리웠던 김모미는 낮에는 묵묵히 일하는 회사원으로, 밤에는 마스크를 쓰고 댄스를 선보이는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는 이중생활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 김모미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성형수술로 다른 사람이 되어 산다. 아름다운 외모로 변한 김모미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지만 그 외모 또한 본래의 모습이 아닌 다른 형태의 마스크가 아닐까 하는 은유를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마스크걸>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이렇듯 세상에서 비치는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른 캐릭터가 여럿 등장하는데 안재홍 배우가 연기한 ‘주오남’이 특히 눈에 띈다. 그는 낮에는 존재감이 없는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오타쿠 기질 다분한 이중적 인물로 등장한다.

모미의 단짝으로 등장하는 회사 동료도 겉과 속이 다르다. 외모로 직원을 차별하는 상사들에게 불만을 가진 그녀지만 사실 외모 평가를 멈추지 않는 이중적 가치관의 소유자를 연기한다. 또한, 잘 생긴데다 젠틀하기까지 해 모미가 흠모한 직장 상사가 사실은 찌질한 구석이 있고 부하 여직원과 불륜 관계에 빠지는 등 가식적 인물의 전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렇듯 <마스크걸>을 보다 보면 등장인물 대부분이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또한 외모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선택한 주인공처럼 그 누구라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가면 속에 숨기고 싶어 할 거라는 은유가 담긴 듯도 하고. 

그런 면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은 대중들이 마스크를, 혹은 가면을, 때로는 복면을 쓰고 싶어 하는 욕망을 제대로 건드린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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