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지도층, 알츠하이머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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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지도층, 알츠하이머 공개한다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8.12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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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대처, 국가·사회에 피해 주지 않으려 치매 투병 알려

1994년 11월 5일. 제40~41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 여사가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낸시 여사는 남편인 레이건 전 대통령이 쓴 글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저는 최근 제가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리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들었을 때, 낸시와 저는 우리가 개별적 시민으로서 이 사실을 개인적인 일로 덮어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대중들에게 알려야 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이 사실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면서, 우리는 이와 같은 행동으로 이 증세에 관한 인식이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중략)
끝으로, 저는 여러분의 대통령으로 있을 수 있는 큰 영광을 준 당신, 미국인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저를 부르시면, 그게 언제가 되었든 간에, 저는 미국을 향한 큰 사랑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영원한 희망을 지닌 채 떠날 것입니다.”

▲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 두 정치인은 노후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이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레이건의 알츠하이머를 공개하고 끝까지 보살핀 낸시 여사

8년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레이건은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은퇴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3년부터 그의 부인과 비서들은 레이건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눈치챘다. 이듬해 8월 레이건은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낸시는 처음에는 남편의 병을 부정했지만, 결국은 받아들였다. 레이건도 자신에게 닥쳐올 병의 혹독함을 미리 알았다. 레이건은 더 이상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미국 국민들에게 전하는 친필 서한을 만들어 낸시의 손에 쥐어줬다. 낸시는 기자회견을 열어 남편의 글을 공개했다. 미국인들이 레이건과 낸시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낸시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스스로 떠않았다. 병이 진행되면서 레이건은 수십년간 함께 해온 비서를 보며 “누구냐”고 물었다. 몇 년후에는 자녀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고 낸시는 회고록에 썼다. 마지막에는 레이건이 아내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낸시는 하루하루 기억력을 상실해가는 남편을 위해 10년을 고생했다. 레이건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지 10년후인 2004년 6월 4일 향년 93세로 눈을 감았다.

레이건은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거시기(thing) 화법’을 많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리에건은 사람이름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를 얘기하는 대목에서 ‘thing’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고,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대통령 재임시절에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났고, 퇴임 5년후에 이 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대처 총리, 잭 니콜슨 등 세계적 명사도 치매 공개후 은퇴

나이가 들면 누구든 노인성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인 찰톤 헤스톤, ‘형사 콜롬보’에서 바바리 코트를 입고 멋진 연기를 보여준 피터 포크, 팝 가수 페리 코모, ‘철의 여인’으로 불리운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치매에서 피하지 못했다.

선진국에선 사회지도층 또는 인기인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면 치매를 고백하거나 은퇴를 선언한다. 이상한 행동에 대해 국민 또는 팬들의 이해를 구하고, 잘못된 언행으로 인해 국가적, 사회적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처 전 총리도 말년에 스스로 치매임을 인정했다.

‘배트맨’, ‘어 퓨 굿맨’, ‘애정의 조건’ 등에 출연해 헐리우드 최고의 연기배우로 꼽힌 잭 니콜슨도 2013년 76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알츠하이머로 의심되는 기억상실증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는 병을 앓고 있으며, 더 이상 영화를 할수 없을 것 같아 은퇴했다”고 보도했다.

 

롯데 창업자의 건강이상설 도는데, 가족들은 함구

연합뉴스에 따르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94)이 수년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롯데그룹 내부에서 흘러 나온다고 한다.

롯데 핵심 관계자들은 "3~4년 전 신격호 총괄회장이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진단 직후부터 매일 알츠하이머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신동주 전 일본롯데 홀딩스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직계 가족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 총괄회장의 가족들은 그동안 이를 철저히 함구해왔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최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하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는 장면이 많이 노출됐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공개한 영상에서 신 총괄회장이 2011년 자신이 차남을 한국 롯데 회장으로 임명한 사실을 잊은 듯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 롯데홀딩스를 ‘한국 롯데홀딩스’로 읽는 실수를 했다.

또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4일 일본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든지 내가 일본 담당인데 한국 담당으로 헷갈리셨다”며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과 판단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1년여 전 관절수술 이후 몸 상태가 나빠진 신 총괄회장이 이번 사태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상태가 더 악화됐다는 것이다.

개인의 건강에 관한 사항인 프라이버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판단에 이상이 있을 경우, 선진국의 기준으로 보면 공개해야 할 사안이다. 국가나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는 지도층으로선 개인적 사고와 판단의 오류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수 있기 때문이다.

▲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도 치매 인구 급증...지도층부터 숨기지 말고 알려야

국내에도 인구 고령화로 치매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의학계에 따르면 2012년 53만명이던 치매 인구는 2020년 75만명, 2030년엔 113만5,000명, 2050년엔 212만7,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사회 지도층 사이에 치매 환자가 적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지도층이 치매를 고백한 경우를 찾아 보기 힘들다.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한국 사회는 체면을 중시하는데다, 치매는 ‘숨기고 싶은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의학계에서 노인성 치매에 대해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이건이나 대처 등 정치인, 영화배우 잭 니콜슨처럼 국민적 지지와 대중의 사랑을 받은 사람일수록 치매를 숨기지 말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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