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힘 빌려 재벌 후계 쟁취한 첫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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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힘 빌려 재벌 후계 쟁취한 첫 모델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8.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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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동빈, 부친 뜻 배치돼도 주주와 이사 지지로 경영권 확보

한국과 일본에서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승리했다. 이에 따라 현해탄을 걸쳐 기업망을 형성하고 있는 롯데그룹은 그간의 부자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정리하고 신동빈 회장의 단일 체제를 강화하게 됐다. 신동빈 회장이 부친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거부와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반대세력 세몰이에도 불구하고 주주 다수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17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시내 데이코쿠(帝國)호텔에서 열린 임시 주총에서 신 회장 측이 제시한 기업 지배구조와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과반 이상 찬성으로 통과됐다. 사외이사로 일본 의회 의원 출신인 사사키 도모코씨가 선임됐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일본 도쿄 데이코쿠호텔에서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를 마친 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창업자 의중에 따라 후계자 결정되던 관행 벗어나 진일보

롯데홀딩스 주총을 계기로 신동빈 회장은 창업자인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을 이어 롯데그룹을 승계할 가능성이 커졌다. 앞으로 형인 동주씨 쪽에서 소송을 벌여 법원 결정을 기다려야 하고, 이사를 구성할 주주총회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부분도 있지만, 이번 주총에서 신격호 회장의 지배력이 굳어진 만큼 그다지 큰 변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에서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주주총회를 통해 승계를 결정지었다는 점에서 다른 재벌의 승계와 차이점이 발견된다. 삼성, 현대그룹에서 창업자가 생전에 후계자 구도를 정해 가산을 물려주듯 경영권 승계가 결정된 것에 비해 롯데그룹에서 주주총회를 통해 후계자가 승계한 점은 한국 재벌 지배구조에 진일보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수 있다.

상법에서 주식회사는 지배구조의 근간으로 이사회라는 집행기구를 통해 운영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많은 재벌기업에서 창업자 또는 그의 계승자가 2대 또는 3대로 내려갈 때 후계자를 지명한 것이 관례였다. 주총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재벌 가문에서 가부장적 문화가 형성되고 자녀들은 부모의 눈치를 보며 기업 경영보다는 보다 많은 기업 상속에 눈치를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롯데에서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령의 부친이 "차남을 용서할 수 없다"고 공언했고, 이미 공표한 의지를 철회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형제, 자매들이 대거 반 신동빈 연합전선을 형성했음에도 주주권을 장악한 신동빈 회장이 결국엔 승리했다.

신동빈 회장이 주총 직후 낸 발표문에서 “경영과 가족의 문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며, “임원들의 취임과 해임에 대해서도 모두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결정했다”고 말한 것도 아버지나 형제보다는 주주들의 지지를 받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롯데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배구조 개선

신동빈 회장이 해결해야 할 첫째 문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11일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복잡하게 얽힌 롯데그룹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골자는 호텔롯데를 상장하고 복잡한 순환출자를 연내에 80% 이상 해소하겠다는 것.

신 회장이 주총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에 이날 롯데 계열사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는데, 이는 지배구조 개산에 관해 투자자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롯데가 잠실 롯데월드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며 한국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그룹의 지주회사 주총을 도쿄에서 여는 것은 결국 일본 기업임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한국 국민의 정서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신 회장의 승리가 결정된 직후 누리꾼들은 롯데의 국적 정체성을 거론하면서 주총 결과에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네이버 아이디 'jyw3****'는 "자기네 입으로는 (롯데가) 한국기업이라 하고선 주주총회는 일본에서 하네. 뭐만 하면 일본에서 하면서 입으로만…"이라며 롯데의 국적 정체성을 지적했다. 같은 포털 이용자 'ufoc****'도 "돈은 한국에서 벌고 주주총회는 일본에서 하고 이상한 회사군. 한국에서 95% 사업하고 이익 생긴다는데, 한국 주주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롯데가 이번 주총 결과 등을 계기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네이버 아이디 'youn****'는 "이제 대권을 장악했으니 경영 투명성으로 모든 정관을 개혁하세요. 기대합니다. 롯데를 확실한 대한민국 기업으로 만드세요"라고 요구했다. 다음 이용자 'sharetogether'는 "롯데! 진정한 대한민국 기업으로, 국민의 사랑 받는 사업체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호텔롯데를 상장해도 일본 지분이 7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어려운 만큼 롯데가 '일본 기업' 이미지를 벗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도 있다.

호텔롯데는 롯데쇼핑(지분율 8.83%), 롯데알미늄(12.99%) 롯데리아(18.77%) 등의 주요 주주로, 사실상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다. 

호텔롯데의 지분 구성을 보면, 일본 L투자회사 12개사가 72.65%, 일본 롯데홀딩스가 19.07%여서 사실상 일본계 회사다.

신 회장이 대국민 약속을 지켜내는지 여부가 주주 차원을 넘어 국민적 지지를 얻어낼 관건이 될 것이다.

 

가족 내부 추스림도 과제

이날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은 경영권에 대한 의지를 접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NHK에 의하면 이날 주총에 참석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주총 후 현장의 기자들에게 "친족 간의 갈등으로 여러분에게 많은 불안을 안겨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힌 뒤 "앞으로도 동료인 사원과 거래처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뭔가 여운이 남는 대목이다.

이번 주총에도 불구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이 반격할 가능성은 여전해 남아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그동안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의 영향력이 큰 고쥰샤와 종업원지주회를 우호 지분으로 간주하며 주총 승리를 장담해왔다는 점에서 차후 현 임원진 교체를 안건으로 주총 개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번 주총은 세 대결의 장이었지만, 이사 임면에 관한 안건이 빠져 있어 전면적 혈투를 벌일 장은 아니었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12곳의 대표이사로 오른 데 이어 이번 주총에서 표심도 사로잡은 상황에서 신격호, 동주 부자가 대세를 역전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가족간 화해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분쟁의 불씨가 살아있는 셈이다.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배제한 채 L투자회사 대표로 취임·등기한 것 등에 대해 신동주 전 부회장이 법적 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

 

▲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17일 오전 일본 도쿄 데이코쿠(帝國) 호텔에서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 총회장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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