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㊿ 오래전에는 아파트였던 서울 강북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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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㊿ 오래전에는 아파트였던 서울 강북의 건물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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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서울 강북에는 지은 지 50년이 넘은 아파트가 여럿 남아 있습니다. 지난주에 소개한 서소문아파트가 그렇고 충정로의 미동아파트, 회현동의 회현시민아파트 등이 그렇습니다. 관심 두고 살펴보면 강북에서 고령의 아파트를 꽤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이야기한 충정아파트처럼 지은 지 90년에 육박하는 아파트 건물들도 있습니다. 다만 이 건물들은 아파트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이며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남산 일대에 남아있는 일본식 아파트

남산동1가 16번지에는 일제강점기에 미쿠니아파트로 불렸던 건물이 있습니다. 남산3호터널에서 명동 방향의 소공로와 가까운 주택가입니다. 만약 아무 정보 없이 그 골목에 들어선다면 그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동주택으로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남산동1가의 옛 미쿠니아파트 건물. 현재 공동주택이다. 사진=강대호

옛 미쿠니아파트는 3층짜리 건물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는 물론 토지주택공사의 부동산종합정보지도에 ‘미쿠니아파트’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아무런 이름이 쓰여있지 않지만, 현재 공동주택으로 보입니다. 외벽과 복도를 새롭게 단장한 이 건물은 얼핏 보면 건축한 지 오래지 않은 건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련 자료에 실린 사진에서 보이는 외부 장식과 출입구 기단의 모습은 1930년대 모습 그대로입니다. 서류상 이 건물의 사용승인 일자는 1931년 1월입니다.

회현동 아일빌딩 전경. 일제강점기에 ‘취산아파트’였다. 사진=강대호

회현동2가 49번지에는 아일빌딩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취산아파트’라 불렸던 건물이었고, 현재는 임대용 건물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36년에 준공됐습니다. 사무실 크기는 주로 10평이고, 6.5평과 18평짜리 사무실도 있습니다. 이 사이즈는 옛 경성 아파트의 평균적인 방 크기라 할 수 있습니다. 

수년 전 저는 회현동에서 사무실을 찾는 지인 덕분에 아일빌딩 내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건물에 들어서니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양방향으로 복도가 펼쳐졌고 사무실들이 한쪽으로 늘어섰습니다. 복도형이었던 일제강점기 아파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0평 규모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다다미가 깔렸던 옛 아파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일빌딩의 10평형 사무실. 일제강점기의 아파트 구조를 보여준다. 당시엔 다다미가 깔렸었다. 사진=강대호

아일빌딩은 낡아 보이긴 하지만 지은 지 90년에 육박하는 건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건물은 나름 규모가 큰 건물이라 한때 수산청 청사나 대한통운 본사가 입주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필동, 남산동, 그리고 회현동 등 남산 북사면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주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잘 살펴보면 일본식 건축 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을 꽤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단독 주택도 있지만 당시 주거 방식의 한 유형이었던 아파트 건물들도 용도를 바꿔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우리나라 아파트 대부분은 단지 안에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강남 일대, 그리고 이촌동과 잠실 등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이 그 시초였습니다. 재개발이나 신도시 개발은 단지형 아파트 건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파트 단지는 주변과 구분하고 외부인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 주변은 다른 아파트 단지나 업무·상업 시설일 수 있고, 연립주택과 같은 다른 형태의 주거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아파트는 그곳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렵게 설계되었습니다. 

강북삼성병원 쪽 정동사거리에서 바라본 피어선빌딩. 가운데 베이지색 빌딩이다. 사진=강대호

그런데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 서울에는 도심 중심가에다 아파트를 건축했습니다. 여러 채가 들어선 단지가 아니고 주로 한 채인 나 홀로 아파트입니다. 건축가 황두진은 이러한 아파트를 ‘거리형’ 아파트라 정의했습니다.

“단지형이 널찍한 땅에 건물들이 섬처럼 놓여 있는 유형이라면, 거리형은 건물과 거리가 밀착되어 있는 유형이다.”

황두진이 쓴 책 <가장 도시적인 삶>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는 거리형 아파트가 길과 가까워 1층에는 자연스럽게 가게가 들어서 그 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야기한 서소문아파트도 거리형 아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서울 강북 도심을 탐사하며 인상 깊게 남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곳도 거리형 아파트의 한 사례로 보입니다. 바로 ‘피어선 아파트’입니다. 새문안로의 정동사거리 인근에 있는 이 아파트를 보신 적 있다면 아마도 눈썰미가 좋은 분이실 겁니다.

피어선빌딩 전경. 예전에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사무실로 쓰인다. 사진=강대호

정동 부근에 있는 피어선 아파트

강북삼성병원 건너편 정동에서 광화문 네거리로 가다가 보면 피어선 빌딩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 벽에 오래된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거기엔 ‘피어선 아파트’라 쓰여 있습니다. 마지막 두 글자가 가려져 있지만 경비원이 아파트라 쓰여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피어선은 사람 이름입니다. 미국인 ‘아서 태펀 피어슨(Arthur Tappan Pierson)’은 1910년에 한국에 온 기독교 선교사였습니다. 비록 6주 정도 머물고 미국으로 돌아가 이른 나이에 사망했지만,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유언으로 세운 성경학교가 나중에 평택대학교로 성장했으니까요.

평택대학교의 전신 ‘피어선기념성서신학교’ 재단에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 바로 ‘피어선 아파트’였습니다. 건축물대장에 의하면 1971년 11월에 사용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아파트로 보이는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겉에서 보면 근처의 다른 건물들처럼 사무용 건물처럼 생겼으니까요. 건물 관계자 또한 현재 사무용으로만 임대한다고 한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피어선 빌딩이 아파트였던 흔적은 건물 뒤편에 남아 있습니다. 4층부터 11층까지 발코니가 있습니다. 예전에 빨래가 널렸을 그곳에 지금은 에어컨 실외기가 있습니다. 피어선빌딩이 아파트로 준공된 시점에는 아마도 세련된 주거 시설로 주목을 받았을 테지만 인근이 업무 중심 지역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무실 용도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피어선빌딩 입구의 피어선아파트 간판. 사진=강대호

현재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철근콘크리트조의 고급 집합주택에는 ‘만숀(mansioin)’이라는 명칭을 주로 쓰고, 목조로 지은 저층의 임대형 집합주택에는 아파트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아파트를 ‘콘도’나 ‘콘도미니엄’이라 부릅니다. 임대형 공동주택은 ‘아파트먼트’라 부르고요. 관련 학계에서는 5층 이상의 집합 주거 공간을 ‘아파트’라고 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재력을 가늠하는 공간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은 출입조차 어려운 공간이 되었고요. 그래서 때로는 사람을 구분 짓는 공간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 주에는 영화 <서울의 봄>에 등장하는 역사 속 공간들을 다루려 합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첨예하게 맞섰던 현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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