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자연에 이름 붙이기’, 물고기의 죽음을 선포한 분류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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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자연에 이름 붙이기’, 물고기의 죽음을 선포한 분류학의 역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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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다른 책을 읽다가 존재를 알게 된 책이었고, 그때부터 읽고 싶었다. 과학 에세이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저자의 세계관을 뒤흔든 ‘사건’으로 등장한 것이 이 책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는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통해 생물 분류학의 일종인 분기학을 알게 되었고,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했다. 그야말로 그동안의 상식을 깨버리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는 과학의 세계 또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얼마 전에야 번역됐다. 

생물 분류의 역사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 ‘캐럴 계숙 윤’은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이면서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다. 부모님도 과학자였고, 저자의 남편 또한 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이 책의 저자가 언급됐을 때 한국계라고 생각했다면 ‘분류의 본능’이 작동한 것이다. ‘계숙’에서 한국식 여자 이름이 떠오르고, ‘윤’에서 윤씨 가문이 떠올랐다면.

인류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많은 것을 분류해왔다. 그리고 분류에 익숙해져 왔다. ‘이것과 저것은 같아’ 혹은 ‘이것과 저것은 달라’와 같은. 그리고 관심 가는 대상에 이름을 붙여오기도 했다. 그렇게 고대부터 ‘분류학’이라는 과학의 틀이 잡혔다. 

저자는 어릴 적 집 뒤편의 숲속에서 자연스레 분류하는 감각을 깨달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비슷하게 생긴 것들, 버섯은 버섯끼리, 뱀들은 뱀들끼리, 토끼들은 토끼들끼리 하나로 묶었다. 그게 자연에서 깨닫게 되는 직관의 힘이었다. 

하지만 과학을 전공하고 진화생물학자가 된 저자는 벽에 부딪혔다. ‘직관적 감각’과 ‘엄밀한 과학’의 세계가 생각지도 않게 치열하게 대결하는 현장을 발견해버린 것이다. 

분류학은 역사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초를 잡고 스웨덴의 ‘칼 린나이우스’가 기틀을 다진 학문이다. ‘린네’로도 알려진 린나이우스는 ‘종속과목강문계’의 생물 분류 단계를 제안했고, 생물학명에 라틴어로 속명과 종명을 이어 쓰는 이명법을 제창한 분류학의 아버지다.

그런 ‘분류학’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만나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경쟁을 벌였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과 만나 계속 분화한 것. 그렇게 분류학은 진화분류학, 분자분류학, 분기학으로 이어지며 패러다임이 계속 바뀌어왔다.

인간 특유의 감각 움벨트(Umwelt)

학문으로서 분류학도 오래됐지만, 생존으로서 분류는 더 오래됐다. 원시 인류에게 분류는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이 식물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 저 동물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저 동물이 오히려 나를 잡아먹을 건지와 같은.

이렇게 발전해온 분류학은 인간의 직관에 크게 의지해 왔다. 본능일 수도 있는 직관은 어쩌면 인류 대대로 전해져 온 경험치의 합일 수도 있다. 좋은 사례가 있다. 어린아이도 어느 순간 개와 고양이를 구분한다. 크기나 모양이 전혀 다른 저먼셰퍼드와 치와와도 ‘멍멍이’인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인류가 오래도록 오해해 왔듯 물에 사는 ‘물고기’들을 모두 어류로 분류해 왔다. 모두 물에 사는 데다 비슷한 외모에 비늘이 있으니까.

저자는 이런 직관을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독일어로 ‘환경’, ‘주변 세계’, 나아가 ‘세계관’을 뜻하는 이 개념은, 생명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 특유의 감각에 관한 생각을 의미한다. 

저자는 모든 생물에게 각자의 움벨트, 각자만의 지각된 세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에서 인간의 직관은 언제나 방해물이었다. 직관은 직관일 뿐 과학이 아니었으니까.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리는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분류학의 발전 과정은 인간의 직관 즉 움벨트를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즉 진화분류학, 분자분류학, 분기학으로 이어지는 분류학의 발전 과정은 “과학이 되고자 애쓰는 분류학과 움벨트가 옥신각신해온 역사”였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분류학의 역사를 파헤치며 무엇이 과학적인지, 즉 옳은 것인지 알기 위해 인류학, 생물학, 인지심리학, 생태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답을 찾아간다. 

그렇게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분류학보다 더 큰 분류학에 관한 이야기, 인간과 생명 세계, 진화와 과학 사이의 아주 오래된 관계에 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결국 “물고기의 죽음을 선언”한 ‘분기학’은 과학이 움벨트, 즉 인간의 직관에 최종 승리를 얻은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분류학은 진정한 과학이 되었다. 

반면 “생명 세계에 대한 모든 판단의 권한은 과학에 일임”되고 말았다. 저자는 판단의 권한을 과학적 기준에 맡겨버리면 “생명의 세계에 더할 수 없이 무관심”해질 거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움벨트의 시각'이라고 강조한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오래전 인류가 동물과 식물 등 생물에게 이름을 붙이며 분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을 우리 후손들이 익히며 살고 있다. 그런 이름을 알고 싶은 마음은 그 존재에 관한 관심의 시작이다. 

돌아보면 도시에도 자연이 있고 거기에는 그저 나무와 풀이 아닌 이름을 가진 식물군들이 자라고 있다. 또한 그냥 새가 아닌 예쁜 이름을 가진 조류들이 살고 있다. 관심이 있으면 그들을 이름으로 불러주게 되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저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그 세계를 바라보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됐지만 결국에는 자연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게 가장 좋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라고 권유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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