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감산 등 공급차질 불가피
연말까지 유가 상승 추세 이어질 듯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국제유가의 상승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6월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가 상승세는 3개월째 지속중이며, 석달간 상승폭은 30%에 달한다.
유가 상승을 이끄는 대표적인 원인으로 공급 차질이 지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 측면에서의 변화를 이끌만한 요인은 당분간 보이지 않는다며, 연말까지 유가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우디·러시아 감산 연장...3개월래 30% 오른 국제유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6월 말 이후다. 지난 5~6월 두 달간 배럴당 66~75달러의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WTI 가격은 6월27일 배럴당 67.7달러를 기록하며 연저점을 새로 쓴 후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9월13일(현지시간) 장중 한 때 배럴당 89.64달러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불과 석달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30% 가량 상승한 것이다.
국제유가의 상승세를 이끄는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공급 차질을 들 수 있다.
6월 말 연저점을 경신했던 유가가 상승세로 방향을 튼 계기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발적 감산에 나선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존 6월 하루 100만배럴의 감산 결정을 8월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고, 이것이 유가의 추세를 바꿨던 것. 러시아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에 동조하며 3월부터 50만배럴 원유 수출량 감축을 지속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던 국제유가는 9월 들어 본격적인 랠리를 펼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이 연장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을 10월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현재의 산유량을 12월까지 유지하기로 했으며, 러시아 역시 하루 30만배럴 수출 축소 정책을 연말까지 이어가기로 결정, 감산 정책을 뒷받침했다.
특히 사우디 에너지부 소식통은 감산 연장 결정을 발표하면서 "이 결정은 여전히 매달 검토될 것"이라면서도 "생산량은 상향조정되거나 하향조정될 수 있다"고 강조해 자발적 감산 규모 확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으로 인해 4분기까지 상당한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량에 큰 변화가 없다면 IEA 수요 전망치 기준 글로벌 석유 수급은 하루 약 200만배럴 수요 초과 상황으로 단기 유가 강세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산유국 감산 의지 강해...비회원국 증산 기대는 어려워
유가가 연고점 수준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주요 산유국이 감산을 이어나가는 이유로는 중국의 경제 부진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중국의 경제지표가 잇따라 부진하게 발표되자 원유 수요 감소를 전망한 산유국들이 감산을 통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는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가들은 중국의 수요 개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시장을 타이트하게 하고 유가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고 언급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격적인 감산 배경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비전 2030' 프로젝트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의 경제 구조를 다각화하는 경제 개혁 계획인 '비전2030'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유가가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사우디는 재정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까지 국제유가를 높이려 한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재정균형유가(재정수지를 균형으로 만드는 유가)는 배럴당 80.9달러로 추산했으나, 추가 재정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우디가 요구하는 유가 수준은 더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에는 사우디의 국영 석유업체인 아람코가 최대 5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주식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최종 결정이 이뤄지면 연내 매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연구원은 "성공적인 아람코 주식 매각을 위해서는 고유가가 유리하며 감산 역시 지속될 수 없다"면서 "아람코의 2023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이자·세금·감가상각비 차감 전 조정 수익)의 2배에 달하는 주식 매각 예정 규모를 고려하면 사우디 입장에서는 무리한 감산이 연내까지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OPEC 비회원국의 석유 증산 또한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기존에는 OPEC 산유국이 감산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비회원국이 증산을 이어가면서 어느 정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능했다.
박 연구원은 "2022년 10월까지만 해도 OPEC+ 회의에서 하루 200만배럴 감산을 결정해도 유가는 오히려 하락했다"며 "미국에서 유가 안정을 위해 전략적 비축유를 방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비축유가 1983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점에서 추가 방출 가능성이 낮은 상황. 여기에 친환경 에너지가 부각되고, 고금리 환경으로 원유 생산 시설 투자가 급감한 상황에서 여타 산유국들의 증산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가 상승압력 이어질 듯...수요 변화 가능성은 주목
공급 측면에서의 이같은 요인들이 당분간 바뀌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유가의 상승 압력 또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수연 연구원은 "유가는 장기적으로 상승 압력이 우위이며 하방 경직성이 크다고 판단된다"며 "단기적으로는 유가 상승 추세가 꺾였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다음 유가의 전고점이 배럴당 93달러로, 기술적으로도 추가적인 상승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것.
공급 측면에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수요 측면에서 변화가 나타난다면 유가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연말까지 산유국 원유 감산은 상수로, 변수는 4분기 주요국의 수요 향방"이라며 "수요 움직임이 유가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유국의 감산 정책은 고유가를 유지하는 재료이지만, 상승 흐름이 추세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요국의 수요 회복이 재고 소진을 얼마나 촉진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요 둔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유가는 한 템포 쉬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경기부진, 미국 경기 정점 통과, 모멘텀 약화가 더해질 경우 수요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며 "당분간은 추가적인 상승 탄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술적 분석 측면에서 WTI는 중단기 상승추세대 상단해 도달해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배럴당 85~88달러에서 박스권 등락을 보이다, 향후 미중 경제지표 결과와 이란, 베네수엘라 증산 결정 여부에 따라 추가적인 하락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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