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면서 식탁을 하나 새로 장만하려고 한다. 소재는 원목이 좋겠고 모양은 원탁이면 좋겠다. 지금 식탁은 직사각형 모양의 4인용 식탁인데 외국에 나가 있는 딸 아이를 빼면 단촐한 세 식구라 한 쪽 면은 벽에 붙여서 공간을 덜 차지하고 있으니 크지 않은 집에는 딱이다. 반면 원탁은 어느 정도 죽은 공간이 생기게 된다. 동그라미는 면이 없으니 점을 붙인다고나 할까. 그러니 벽에 붙인다 한들 공간을 잘 활용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크지 않은 집에 원탁을 마련하는 게 좋은 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렸을 적 원탁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진다.
원탁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학년 때 이층집으로 이사가면서 어머니가 장만했던 것으로 아마 그 땐 의자에 앉아도 다리가 닿지 않아 바둥 바둥 대면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곤 했을 것이다. 부모님과 우리 딸 셋만 해도 다섯인데 할머니와 일을 도와주는 언니, 거기에 80년대 초 중반 경제 활황기에 지방에서 올라온 먼 친척 고모, 이모들로 집은 늘 북적거렸으니 우리집 원탁도 쉴 새가 없었다. 물론 한 번에 다 식탁에 앉을 수도 없었다. 다행히 귀가시간이 달라 무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원탁은 톡톡히 자기 몫을 해냈다.
원탁은 모서리가 없다. 크기(말하자면 지름)에 따라 다르겠으나 모서리가 없기에 의자를 끼워 넣으면 4인 식탁에 여섯 명도 앉을 수 있고 6인 식탁에는 여덟 명도 앉을 수 있다. 개인 접시에 자기 먹을 만큼만 담아 먹는 양식과 달리 식탁 한가운데 큼지막하게 주 요리가 자리를 차지하는 한식을 위해 원탁은 더할 나위 없이 공평한 면모를 드러낸다.
누구나 팔을 뻗으면 닿을 곳에 오늘의 주 요리가 자리하고 있으니 어른과 아이 사이의 다소간의 차별(?)은 있을 지언정 그렇게 크지 않은 차별.
손님을 초대했다고 해서 상석이 어디인지 굳이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된다.
주인이든 손님이든 아빠든 막내 딸이든 팔꿈치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평등한 거리를 보장해주는 원탁. 고개를 이리 저리 빼지 않아도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의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원탁.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원탁을 파는 곳이 그리 많지가 않다. 커피를 마시기 위한 작은 원탁은 많은 반면 식탁으로 쓰기 위한 크기의 원탁은 드물다. 아파트에 사는 인구가 많은데 아파트 구조상 주방과 식당을 한 곳에 배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4인 가족이 많다 보니 한 면을 벽이나 아일랜드 식탁에 붙여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인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말이나 되야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생활이다보니 예의 그 장점들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굳이 공간을 차지하는 원탁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인 듯 하다.
카페를 둘러보니 원탁과 정사각형 탁자 직사각형 탁자가 혼재되어 있다. 보통 3인용으로 준비되어 있는 작은 원탁에 5명의 중년 여성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옆에 빈 탁자가 있는데도 한 탁자에 둘러 앉아 있다. 왜 원탁이 좋은지 그들은 아는 것 같다.
동그라미가 주는 공평함, 동그라미가 주는 아늑함, 동그라미가 주는 경쾌함.
강강수월래도 생각나고 자전거 바퀴도 생각나는 나른한 오후다. 얼른 원탁을 사러 나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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