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 1000조 시대] "쌓이는 유보금, 원인부터 해결해야"...'기업규제개선' 절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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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1000조 시대] "쌓이는 유보금, 원인부터 해결해야"...'기업규제개선' 절실 (하)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10.06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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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착취의 결과…사회화 목소리 커져
재계 "편향적 주장…투자·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
정부의 유보금 재투자 유인책 절실해
사내유보금 1000조 시대를 맞아 사내유보금 환수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지난해 1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기업들은 금고에 돈을 쟁여 놓고 '제 잇속'만 챙기는걸까. 경제를 살릴 비장의 카드처럼 이야기되는 사내 유보금의 실체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사내유보금 환수로 불평등을 해소하자."

지난 6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 울려퍼진 구호다. 당시 기자회견을 열었던 노동당의 주장은 이랬다.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규모는 줄었지만 10대·5대 재벌은 전년 대비 30조원 넘게 늘었다. 상·하위 재벌 간 격차가 커진 탓이다. 반면 지난해 가계부채는 3000조원을 넘어섰고 '순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처음으로 200%를 넘겼다. 사내유보금과 부당수익을 환구하고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 환수금은 최저임금 인상, 국가 책임 일자리 등 공공복지 재원에 활용해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재계는 사내유보금 환수 주장에 부정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가계든 기업이든 경제가 성장하는 한 유보금이 늘어난 건 당연한 것"이라면서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사내유보금 환수 주장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당 당원들이 사내유보금의 사회적 환수를 주장하며 지난 6월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내유보금 사회화 주장의 배경

사내유보금 환수 등 사내유보금의 사회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제기의 핵심은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으나 ▲이를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하면서 ▲정작 투자와 고용에 소홀하다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사내유보금 중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한성규 민주노총 재벌체제개혁특별위원장은 “재벌의 독점은 더욱 확대·강화되고 있다”면서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5% 증가했고 SK하이닉스는 148%, 현대차는 자그마치 2.8배가 증가한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남겼다”라고 지적했다.

"재벌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로 얻은 영업이익을 재벌 일가의 기업승계를 위한 사익에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영승계를 위해 천문학적인 ‘배당금 잔치’를 벌이는 재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기업규모가 클수록 비정규직을 고용한 비율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10대 재벌이 고용한 비정규직은 2020년 기준 52만 명에 달한다. 300인 이상~500인 미만 기업은 26.4%, 1만인 이상 기업은 43.5%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10대 재벌에 포함되는 GS(58.8%), 포스코(53.3%), 롯데(52.4%), 현대중공업(52.2%)은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정록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장은 사내유보금에 대해 "기후부채, 생태부채, 노동자 민중에 대한 부채"라며 "재벌 자본은 가장 싼값에 원료를 조달하고 대량 생산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경쟁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모았다. 이를 위해 상품의 원료가 되는 각종 광물을 남반구 국가의 자연을 파괴하고 땅을 파헤치며, 노동자의 삶과 생명을 앗아가며 착취 수탈해왔다"라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사진=연합뉴스

재계 "사내유보금 많은 기업 투자·고용 적극적"

재계 관계자는 사내유보금 환수 주장에 대해 편향적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사내유보금이 근로자 몫인 급여를 적게 배분했을 때 늘어나는 건 아니다"라면서 "사내유보금을 좌우하는 변수는 다양하다"고 말한다. 이어 "사내유보금이 늘어난 정확한 이유를 알려면 각 기업마다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를 뜯어봐야 한다"며 "무턱대고 사내유보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이 땅을 사서 공장을 짓고 기계 장치를 도입한 유형자산과 연구개발 투자로 얻은 지적재산권 등 무형자산의 가치도 사내유보금에 포함돼 있고, 계열사가 많은 대기업의 경우 계열사 지분에 투자한 주식도 사내유보금이다"면서 "사내유보금을 환수하면 기업의 기계나 부동산 등 생산기반도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2016년 '사내유보자산 상·하위 기업 비교' 보고서에서 사내유보금이 많은 기업이 투자와 고용에 더 적극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전경련은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는 기업이라면 사내유보자산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사내유보자산이 많은 기업이 국민 경제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기업에 대한 투자 유인책 확대가 절실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유보금 1000조, 재투자 유인책 절실

사내유보금과 관련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건 대기업 내부에 쌓인 현금이 시중에 돌지 않아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시각 때문이다. 또 기업이 벌어들인 모든 이윤이 노동 '착취'에서 비롯됐다는 시선도 한몫한다. 어찌됐건 1000조원이나 되는 돈이 묶여 있단 건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닫혔다는 의미로 읽힌다. 100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다시 투자로 이끌어 낼 유인책이 절실해 보인다. 

지난달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 이후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6만7000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020년 4월까지 미국 제조업체에서 136만명의 노동자가 해고됐으나 지난달까지 143만명이 다시 취업했다. 뉴욕타임스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 이후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국내 생산 복귀로 눈을 돌린 탓"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글로벌공급망의 혼란과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정책, 미 정부의 세금 감면·이전비 지원 등 적극적인 유인책이 제조업기업의 미국내 유턴과 제조업 일자리 증가를 견인했다는 평가다.

미국 기업의 복귀를 지원하는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9년 리쇼어링 기업수는 1100개, 2020년엔 1484개에 이른다. 반면 2014년부터 유턴기업지원법을 시행 중인 한국의경우 지난해까지 모두 108개사가 국내로 돌아왔다. 연평균 13.5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인세 인상 등 세금 이슈, 경영진이 형사법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 각종 기업규제 등이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은 투자 및 리쇼어링 확대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지난 6월16일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기업에 각종 세제 특례를 제공하는 등 대기업에 대한 대규모 감세 조치가 우선 제시됐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공정거래법 완화 등 기업 규제를 대폭 감축하겠다는 방안도 담겼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 투자나 중소기업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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