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 1000조 시대] 10대기업만 총 450조...기업 유보금, 고인 물 인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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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1000조 시대] 10대기업만 총 450조...기업 유보금, 고인 물 인가 (상)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10.05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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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기업 사내유보금 1000조 돌파…10대 기업 448조
재계 "사내유보금 남는 현금 아냐…돌발 상황 대비 비상금"
노동계 "노동착취의 결과물…사회로 환수해야" 주장
국내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1000조원을 돌파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지난해 1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기업들은 금고에 돈을 쟁여 놓고 '제 잇속'만 챙기는걸까. 경제를 살릴 비장의 카드처럼 이야기되는 사내 유보금의 실체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이른바 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지난 10년 간 400조원 늘어나 1000조원을 넘어섰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사내에 쌓아둔 잉여금을 일자리 창출과 투자에 쓰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대비해 사내 유보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모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사내유보금과 관련해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한 일종의 '비상금'이라고 설명한다. 사진=연합뉴스

재계 "'사내유보금=남는 현금' 아냐"

사내유보란 기업 설립 후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을 더한다.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물건을 팔아 번 돈 중 배당하지 않고 남은 것이고, 자본잉여금은 주식 등 자본거래를 통해 생긴 이익이다. 

지난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받은 자료를 근거로 국내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이 2012년 630조원에서 2021년 1025조원으로 395조원 늘었다고 밝혔다. 10대 기업으로 범위를 좁혀도 사내유보금은 같은 기간 260조원에서 448조원으로 188조원 증가했다. 

이 기간 사내유보금 증가율은 매출 증가율보다 컸다. 100대 기업의 2012~2021년 사내유보금 연평균 증가율은 5.5%였다. 반면 매출 연평균 증가율은 2.3%였다. 10대 기업도 같은 기간 사내유보금 연평균 증가율은 6.3%, 매출 연평균 증가율은 1.6%였다. 매출액 대비 사내유보금 비율을 뜻하는 유보율은 100대 기업의 경우 2012년 46.7%에서 지난해 62.0%로 증가했다. 10대 기업은 같은 기간 53.4%에서 80.1%로 크게 늘었다. 

홍 의원은 “기업들이 돈을 쓰지 않고 담아둘수록 국가 경제가 고인 물처럼 썩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긴 제도가 박근혜 정부 때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사내유보금이 '남는 현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내 모 대기업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언제, 어떤 형태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 남아도는 현금을 쌓아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내유보금이 늘어난 건 경영적 판단으로 봐야한다"고 항변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내유보금 대부분은 재투자돼 토지와 건물, 공장, 설비 등 형태로 존재한다"면서 "매출이 수십조원인 회사에서 수천억원 수준의 현금성자산 보유는 당연한 것으로 현금성 자산이 부족하면 되레 흑자부도를 맞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

가령 연봉 4000만원인 직장인 A씨가 소득의 50%인 2000만원을 생활비로 지출했다고 하자. 이를 기업의 제무재표로 표현하면 수익 4000만원, 비용 2000만원이다. 여기에 수익과 비용의 차인 2000만원은 순이익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만약 A씨가 30년 동안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은퇴했다고 가정하자. A씨의 순이익 누적액은 2000만원x30년인 6억원이 될 것이다. 이자까지 계산하면 통장 잔액은 6억원 이상이 돼야 하겠지만 막상 30년 뒤 통장 잔액은 그에 한참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결혼해서 집과 차를 장만했을 수도 있고, 중간에 주식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냈을 수도 있다.

자동차나 집, 재테크는 통상 생활비보다는 자산으로 인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A씨의 30년간의 가계부를 기업의 재무제표로 바꿔보자. 지난 30년의 이익누적액인 6억원은 자본으로 기록된다. 때문에 현금성 자산이 없더라도 A씨의 사내유보금은 6억원으로 여길 수 있다. 박동흠 회계사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를 이렇게 설명했다. 결국 사내유보금은 '돈'으로 생각하는 건 회계상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셈이다. 

올해 일몰을 맞이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상생협력촉진세 효과 '갑론을박'

사내유보금이 도마 위에 오른 건 올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가 투자확대와 임금상승, 상생협력 촉진 등 입법 취지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다는 야당의 지적때문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올해 이 세제를 일몰시킨다는 방침이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는 자기자본이 500억원을 초과하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을 대상으로 미환류소득, 즉 사내유보소득에 20%를 과세해 기업소득을 투자확대, 임금상승, 상생협력 등으로 유도하기 위해 설계된 세제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기업소득환류세제란 이름으로 처음 도입해 2017년 일몰됐다가 2018년 다시 지금의 명칭으로 개편됐다. 

윤석열 정부는 유의미한 정책효과가 없다는 KDI 등 다수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투자, 임금증가 등에 대한 효과가 낮고 기업에 부담만 되고 있다"면서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를 추가로 연장하지 않고 일몰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영계도 같은 입장이다. 대한상의는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높은 법인세에 더해 투자·상생협력촉진세를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며 "투자·상생협력촉진세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며 미국과 일본의 경우 사내유보금 과세제도를 두고 있지만 이는 소수주주에 의해 지배되는 법인이 유보를 통해 개인주주가 배당소득세를 탈세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중과세 문제를 해소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불완전한 제도를 택해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해외배당소득의 경우 OECD 대부분 국가들이 운영 중인 ‘원천지주의’로 전환해 비과세하고, 국내 배당소득의 경우 자회사 지분율에 관계없이 전액 비과세하거나 면세율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홍영표 의원실 제공

홍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투자 등을 확대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기업이 투자 등에 소극적일 때 활용할 수 있는 세제 수단은 없애려고 한다”면서 “정부가 이미 효과가 없다고 판명된 부자감세를 중단하고, 투자확대·임금상승·상생협력 촉진에 효과가 있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의 일몰을 연장해 거시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이번 국정감사 기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 폐지는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사내유보금 노동 착취의 결과" 

사내유보금을 바라보는 노동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민주노총 산하 재벌체제개혁특별위원회와 노동당은 한 목소리로 "재벌은 기업 활동에 필요하지도 않은 부동산을 소유해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누리고 있다"며 "이런 재벌의 부는 불법 파견과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을 초과 착취하고, 하청 노동자와 중소기업을 수탈하는 데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자의 피, 땀, 눈물을 착취한 결과인 재벌의 사내유보금을 사회적으로 환수해야 한다"면서 "환수 자금으로 최저임금 인상, 국가책임 일자리 창출, 주거·의료·돌봄 등 국가 책임의 공공복지 재원으로 활용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세제·금융지원 등 기업 지원책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는 정부의 정책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면서 "기업의 탄소배출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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