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금리차, 중·저신용자 대출 늘릴수록 폭 커져
금융소비자 정보 공개하려다 편익 축소 우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은행, 저축은행, 보험, 카드사를 비롯한 전 금융사의 금리인하요구권 운용실적이 지난 30일 공개되면서 금융권의 반발이 거세다. 실제 수용건수와 감면금액이 아닌 수용률로 줄을 세우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금리인하요구권을 비대면 서비스로 바꾸고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리를 홍보할수록 수용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용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를 개선했는데 오히려 나쁜 평판만 뒤집어쓴 꼴"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을 99% 비대면으로 전환한 신한은행의 경우 신청건수가 13만1935건, 수용건수가 4만70건을 기록, 수용률이 30.4%에 그쳐 '시중은행 중 수용률 꼴찌'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수용건수만 놓고 보면 압도적 1위다.
수용률이 59.5%로 1위인 농협은행의 신청건수는 8534건으로 신한은행 신청자 수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농협은행에서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농협은행 영업점에 직접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앱에서 바로 신청하고 당일 결과까지 확인 가능한 우리은행이나 신한은행과는 다른 셈이다.
뿐만 아니다. KB국민은행(9억8700만원), 하나은행(19억2600만원), 우리은행(1억1700만원), 농협은행(2억6000만원)의 이자 감면 액수를 모두 더해도 신한은행(47억100만원)의 감면액에 미치지 못한다.
신한은행으로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 편의성을 위해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전환하고 금리인하요구권 안내 문자를 월 1회 정기적으로 발송하는 등 적극적으로 안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률로는 꼴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 역시 수용률은 낮지만 실제 이자 감면 액수가 높은 편이다. 케이뱅크(53억5600만원), 카카오뱅크(29억1300만원), 토스뱅크(21억2200만원) 등 3사 모두가 타 은행에 비해 큰 폭으로 이자를 감면해줬다. 모든 거래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인터넷은행의 특성 상 적극적으로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하는 이용자가 많았던 탓이다.
금리인하요구권을 공시한 은행연합회와 저축은행중앙회, 생명·손해보험협회와 여신금융협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입을 모아 "비대면 채널을 통한 금리인하요구가 활성화된 은행은 중복 신청 건이 상당수 포함된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용건수와 이자감면액 등을 중심으로 비교하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실제로는 주로 수용률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져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22일 예대금리차가 공시됐을 때도 '이자장사 1위' 타이틀을 달게 된 은행들은 해명하기에 바빴다. 중·저신용자 대출과 서민대출 비중이 높을수록 예대금리차가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북은행의 지난달 신규 취급 기준 가계 예대금리차는 6.33%로 은행권 중 가장 컸다. 이어 인터넷은행 중에는 토스뱅크(5.6%), 5대 시중은행 중에는 신한은행(1.62%)의 예대금리차가 높게 나타났다.
이에 은행들은 "고신용자에게만 저금리로 대출을 해줘서 공시를 예쁘게만 만들란 말이냐"며 "중·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주고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도 은행의 사회적 책임 중 하나"라는 볼멘소리를 냈다.
금융당국은 금리인하요구권이나 예대금리차 등의 공시 제도 도입으로 은행과 금융소비자의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기를 기대했을 수 있으나, 일괄적인 '줄 세우기'가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온 셈이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이 오히려 권리 행사를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대금리차도 마찬가지로 중·저신용자의 대출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폭을 축소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이 금융당국이 원했던 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일률적인 공시로는 소비자가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렵다. 대출 금리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여부는 개인의 신용점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 공시 하나만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사람들의 눈을 가리게 된 셈이다. 이제 막 시작된 공시제도인만큼 앞으로는 일괄적인 '줄 세우기'식 통계보다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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