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
상태바
[강대호의 책이야기]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04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5년 이래 '뉴요커' 전속 필자로 활동중...퓰리처 논픽션 부문 4회 수상
'뉴요커' 실린 여덟 편의 에세이 모은 책...구상 단계 '연쇄'부터 완성후 일부를 덜어내는 '생략' 등
거침없이 쓰고 수정하라...네 번째 원고를 수정하고 교열하며 최고의 희열을 맛볼 수 있어
저자 존 맥피. 사진=princeton.org
저자 존 맥피. 사진=princeton.org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표지에 논픽션의 대가가 쓴 책이라고 쓰여 있었다. 논픽션(nonfiction)은 픽션, 즉 허구가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이다. 나도 논픽션의 주변을 떠도는 사람이라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있고 대가라는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저자는 존 맥피. 미국의 여러 언론으로부터 ‘논픽션의 대가’ 혹은 ‘미국 최고의 저널리스트’ 심지어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한마디로 ‘논픽션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지만 난 그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의 글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저자 이력 중 하나가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존 맥피는 1965년부터 ‘뉴요커’의 전속 필자로 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뉴요커’에서 연재했었다.

존 맥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논픽션의 전설이라 할만했다. 그는 아직 논픽션이란 장르의 정의와 입지가 모호하던 1960년대부터 ‘타임’과 ‘뉴요커’에 글을 싣기 시작하며 독자적인 논픽션 미학세계를 구축했다. 존 맥피는 '픽션 아닌 것nonfiction'이라는 의미 없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낱 보도문쯤으로 취급되던 사실적 글쓰기를 '창의적 논픽션'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승화시켰다.

‘네 번째 원고(Draft No. 4)’는 존 맥피가 평생을 헌신한 유일한 작업인 '글쓰기'를 자기 삶 속에서 세밀하게 되돌아보고, 낱낱이 해부한 책이다. 책에는 오랜 세월 글을 써오며 그와 하나가 되다시피 한 글쓰기 혹은 삶의 방식과 태도, 전설적 편집자들과의 열정과 우정, 자연의 구조와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네번째 원고'. 글항아리 펴냄.
'네번째 원고'. 글항아리 펴냄.

자기 얘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존 맥피가 이 책을 펴냈을 때, ‘맥피노 (McPhino, 맥피의 글을 흠모하고 추종하는 사람)’를 자처하는 수많은 작가와 독자가 이 책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선물처럼 반가워했다고.

‘네 번째 원고’에는 존 맥피가 ‘뉴요커’에 실은 글쓰기에 관한 여덟 편의 에세이가 담겼다. 구상 단계인 ‘연쇄’에서부터 시작해 글이 완성된 후 그 일부를 덜어내는 ‘생략’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머릿속에 있던 무언가가 정연하고 견실한 한 편의 글로 활자화되어 독자에게 가닿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았다.

‘연쇄’는 아이디어를 실제 글감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두 명의 테니스 선수를 입체적으로 배치해 한 경기에 그들의 삶과 성취, 야망과 존경을 녹여낸 ‘게임의 레벨(Levels of the Game)’, 유명한 환경운동가 데이비드 브라우어를 세 명의 ‘개발주의자’와 맞붙인 ‘대사제와의 조우(Encounters with the Archdruid)’ 등을 쓰며 아이디어가 한 편의 글이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구조’에서 존 맥피는 이 책의 5분의 1이 넘는 분량을 할애해 글의 구조에 관해 이야기한다. 존 맥피에게 있어서 논픽션은 단지 시간순으로 벌어진 일직선 위의 사건이 아니다. 시간순으로 맨 마지막에 벌어졌더라도 글의 도입부가 될 수 있고 맨 처음에 일어났더라도 글의 절정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과정을 도표로 그려가며 설명한다.

‘편집자들과 발행인’ 그리고 ‘체크포인트’에는 전설적인 출판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부분에서는 들어본 이름들도 나온다. ‘뉴욕은 교열 중’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교열자 메리 노리스, ‘수전 손택’을 스타 작가로 만든 로저 스트로스와의 일화가 소개된다. 이외에도 많은 이들과의 이야기가 존 맥피 특유의 유머로 그려진다.

‘인터뷰를 끌어내는 법’은 말 그대로 논픽션, 저널리즘 글쓰기의 필수 과정인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인터뷰 대상자들에게서 쓸 만한 이야기를 어떻게 뽑아내는가를 알려준다. 질문과 메모 등 방법론과 인터뷰 대상자의 직업에 따른 전략도 조언한다. 존 맥피가 수많은 인터뷰 실전에서 터득한 온갖 노하우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다.

 

원고에 둘러싸인 존 맥피.삽화=boom-books.com/
원고에 둘러싸인 존 맥피.삽화=boom-books.com/

‘참조 틀’과 생략‘은 글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그러나 쓰는 사람은 자각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짚어낸다. 바로 비유와 은유, 장황함과 불필요함, 다시 말해 독자를 의식하는 글쓰기를 지적한다.

글쓰기의 대가인 존 맥피도 쓴 글의 85퍼센트가 지워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유를 유머랍시고 썼다가 발행인에게 그것을 주절주절 설명해야 하는 곤란함도 겪는다. 군더더기 없고, 부적절하지 않으며, 동시대적이면서도, 세계를 의식하는 글은 이런 지적과 생략 없이는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몸소 체험한 일화들을 통해 보여준다.

표제작 ’네 번째 원고‘는 이 모든 과정이 담긴, 혹은 그 과정에 바친 인생이 담긴 글쓰기 생활에 관한 에세이다. 글쓰기 대가인 존 맥피도 두려움과 자기 의심, 후회와 고뇌로 점철된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 경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그 지점을 향해 단어 하나하나를 딛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첫 번째 초고를 수정한 두 번째 원고, 그 두 번째 원고를 수정한) 세 번째 퇴고를 거친 다음에는 ’네 번째 원고‘를 위해 단어와 어구에 연필로 네모를 친다. 집필 과정에서 내가 즐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네 번째 원고 작업이다. (중략) 난 이 작업이 좋다. (263쪽)

이런 글쓰기와 수정이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존 맥피는 흥미로움, 유익함, 즐거움을 찾는다. 특히 네 번째 수정 작업인 스스로 하는 교열 단계까지 오면 그 즐거움은 최고의 단계까지 오른다고.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네 번째 원고, Draft No. 4‘라고 달았을까.

’네 번째 원고‘를 읽으며 난 글쓰기 과정의 지난함을, 그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기승전결의 4단 구성, 혹은 발단-전개-갈등-절정-결말의 5단 구성 등 단순하게만 보았던 글의 구조를 좀 더 깊게, 다르게 고민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머리에 떠돌던 여러 글감들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재와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구하고, 정리와 분류를 하고, 글로 생산하는 과정을 대가로부터 배운 느낌이랄까. 존 맥피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일단 써라. 쓰고 고치라”이다.

당신이 첫 번째 초고를 작업 중이라면 불행한 것이 당연하다.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할 것 같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 (257쪽)

글쓰기의 대가 ’존 맥피‘에 의하면 나는 작가임이 틀림없다. 난 초고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수정을 견디고 네 번째 원고까지 달려가고픈 욕망이 생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