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장기기증, 내 몸인데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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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장기기증, 내 몸인데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0.05.01 11:1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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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증의 허용 요건 등에 관하여
1. 이타적 기증 가장한 장기 매매는 금지
2. 미성년자 장기기증은 제한적 허용
3. 뇌사자 장기기증, 'opt-out' 방식 제한적
김장한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인간의 장기(organ)를 이식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의 장기는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매우 부족한 자원이 되었고, 이를 둘러싼 수많은 가치 논쟁이 일어났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가치 논쟁의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 건강상 허용되고, 내 주변에 장기를 받으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있다면, 나는 내 의지에 따라 또는 신앙에 따라 언제라도 기증할 수 있는 것인가? 가능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기기증, '사적 결정' 안되는 이유 많아

예를 들어 보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장기기증을 하려는 사람이 자신의 장기를 받을 사람으로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지정하여 기증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독일에서  장기 이식 수술을 전공한 외과 의사가 종교적 신념에 의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정부에 허가를 신청했다. 문제는 1997년 제정된 독일 장기기증법이  살아있는 자가 자신의 장기를 타인에게 기증하는 것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장기 기증이 가능한 경우를 배우자, 가족, 약혼자 또는 긴밀한 인간관계가 명백하게 인정되는 경우에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장기기증법 제8조 제1항).

장기 이식 수술을 직접하는 독일 의사가 자신은 기독교 사랑에 입각하여 모르는 타인에게 이타적 장기 기증을 하겠다고 신청하면서, 헌법재판소에 위 조항을 위헌 심판청구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장기 기증법 제한 조항은 이타적 장기 기증을 가장한 장기 매매를 막기 위한 조항으로서 합헌이라고 했다.

법적인 부부의 경우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대만에서는 법적인 부부사이라고 할지라도, 결혼 후 최소한 1년이 지나야 장기 기증이 가능하다(장기기증법 제8조). 역시 장기 매매를 위한 위장 결혼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사진= 연합뉴스
장기기증을 가장한 은밀한 장기매매 범죄에 대해 국가마다 엄격히 금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어린 자녀가 부모에 기증?...다른 가치 있어

부모와 자식간에는 언제나 장기 기증이 가능한가? 오랜 시간 자식들과 연락이 두절되었던 아버지가 사실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고, 딸의 성장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현재도 금전적으로도 무능력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딸이 신장 이식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면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 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건강한 신장이 하나 뿐이어서 수술 후 자신은 투석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자신은 나이가 많기 때문에 투석을 하는 것이 꺼릴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증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기증은 인정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우리나라 장기 이식법도 신장은 2개가 모두 있어야 1개 기증이 가능하다.

다른 예도 있다. 아버지가 신장이식이 필요한 데, 아들은 이제 16세가 되었다. 신장 투석을 하면서 가정은 금전적으로 매우 힘들고 아버지는 실직 위험에 직면했다.

16세 이상이면 기증이 가능하다는 법 조항에 근거하여 아들이 신장을 아버지에게 주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법은 이를 허용하지만, 세계 각국의 입법에는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이다. 프랑스, 독일은 사례가 없었고(2006년 조사), 영국은 두 건만 보고되어 있다(1986-2005년 . 미성년자 간의 이식 건).

비교적 18세 정도를 기증에 동의할 적절한 나이로 보기 때문에, 16세 미성년자의 장기 기증을 허용하는 경우는 우리나라, 미국, 캐나다의 일부 주 등 소수이다. 미성년자는 자유로운 의사 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미성년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가족들로부터 강요당하거나 도덕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자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살아 있는 자와 뇌사자 장기 기증율의 차이를 보여주는 통계 수치. 서양은 뇌사자 장기 기증이 높고 동양은 살아있는 자 장기 기증이 높다는 측면에서 2002년 자료지만 현재와 별 차이가 없다. 살아있는 자의 장기 기증에 윤리적 고려 점이 많다는 점을 발표한 2004년 김장한 울산의대교수 논문에서 발췌했다.
살아 있는 자와 뇌사자 장기 기증율의 차이를 보여주는 통계 수치. 서양은 뇌사자 장기 기증이 높고 동양은 살아있는 자 장기 기증이 높다는 측면에서 2002년 자료지만 현재와 별 차이가 없다. 살아있는 자의 장기 기증에 윤리적 고려 점이 많다는 점을 발표한 2004년 김장한 울산의대교수 논문에서 발췌했다.

장기기증, 사회의 신념·선호·제도에 영향받아 

살아 있는 사람로부터 장기 기증을 받는 것 외에 뇌사 상태의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공여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돼 동서양 간에 설명하기 어려운 통계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명당 뇌사자 장기 기증이 1명 정도이지만, 살아 있는 자가 기증한 경우는 15명 정도다. 반대로 유럽 연합의 경우는 전자가 15~40명, 후자가 5명 정도가 된다.

거칠게 비교하면, 서양은 뇌사자 장기 기증이 10배, 우리나라, 일본, 대만은 살아 있는  자의 장기 기증이 10배 정도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장기 부족은 타개하여야 할  공통의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뇌사 상태에서의 장기 공여율을 높이기 위해 'opt-out'  방식 입법을 택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 제도는 특별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뇌사 상태에서 의사가 장기를 적출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가 알기로는 운전면허증에 "내가 뇌사 상태에 빠지면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에만 장기 적출이 가능한데, 이것은 "opt-in" 제도라고 하고, "opt-out" 제도는 이와 반대 구조인 것이다.

유럽에서 뇌사자 장기 기증이 가장 많은 스페인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2019년 'opt-out'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의회는 명시적 동의가 있거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만 뇌사자 장기 기증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존 입법을 유지했다. 크로아티아, 벨기에는 가족의  반대권을 인정하는 변형 'opt-out'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본인의 명시적 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거부하면 장기 기증을 할 수 없는  '제한된 opt-in' 방식을 가지고 있다(장기이식법 제 12조 제2항). 

우리 법을 개정하여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국민들이 뇌사 또는 그 판정 과정에 신뢰를 가지지 않는 상태에서 이를 강행한다면, 많은 수의 국민들이 'opt-out'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혼란과  비용을 치룰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opt-in' 방식을 택하고 있는 일본은 인구 100만명당 0.9명, 미국은 100만명당  26명이 뇌사자 장기기증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도 사회 문화적 차이가 결정적인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최근까지 'opt-out'  방식 도입을 논의하던 영국도 논의 과정에서도 이 점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 기존 'opt-in' 방식을 유지하기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혼란만 일으키고 뇌사자 장기 기증율은 별로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

이번 글은 장기 이식에 관련된 윤리적 논쟁 중에서 살아있는 자로부터의 기증의 고려점, 동서양의 통계적 특징 그리고 장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논의되고 있는 'opt-out' 방식의 뇌사 상태 장기 기증을 얘기했다.  항상 느끼지만 이쪽 분야 일들에 논쟁이 많은 것은 사람의 신념, 선호, 제도 등과 관련되어 너무도 고려할 점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 의대와 법대 및 동 의대, 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법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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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20-05-15 11:29:26
2004년 논문도 찾아보게 되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BK 2020-05-15 11:27:33
장기이식이 필요했던 어린 가족이있었는데 이 글을보며 그 때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장기이식에 대하 더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abc 2020-05-08 08:45:47
‘내몸인데 내맘대로 할 수 없다’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2020-05-08 08:45:19
장기기증에 나이제한이 있는게, 미성년자는 자유로운 의사 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미성년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가족들로부터 강요당하거나 도덕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자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게 타당한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