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 전문 메이커로 명성얻은 아디다스, 스포츠 전반으로 세력 확장
힙합 아티스트·패션 디자이너들과 협업 전개...트렌디한 감각 더해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단순한 세 줄만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아디다스(Adidas).
삼선 슬리퍼의 활약(?)덕분에 흔해져 버리긴 했지만, 아디다스는 오히려 이러한 오래된 이미지를 이용해 ‘올드 스쿨’ 클래식의 느낌으로 대중의 마음을 공략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기능적인 스포츠 아이템들을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한편 패셔너블한 스트릿 아이템으로도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아디다스를 만나보자.
◆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리다
1900년 독일 바이에른 주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태어난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는 신발공장에 다니던 아버지와 세탁소를 운영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봉제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스포츠를 즐겼던 만큼 좋은 품질의 운동화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그는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4년 형 루돌프(Rudolf)와 의기투합해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을 설립했고, 선수들을 만나 의견을 공유하며 제품의 퀄리티를 높여간 결과 1925년엔 스파이크를 박은 러닝화와 징을 박은 축구화를 내놓으며 특허를 취득했다.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리나 라드케(Lina Radke) 선수가 여자 800m 달리기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데에 일조하면서 품질을 인정받은 다슬러 형제의 운동화는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독일 대표팀으로부터 선택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한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Jesse Owens)도 영업하는데 성공한 다슬러 형제는 오언스가 금메달 4개를 휩쓰는 맹활약을 펼침에 따라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다슬러 형제는 오해가 쌓이면서 멀어졌고, 결국 형 루돌프가 따로 독립해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루다(Ruda)’를 런칭했다. 이는 바로 현재의 ‘푸마(Puma)’.
동생 아돌프도 1949년 자신의 이름의 약칭과 성을 이어 붙인 ‘아디다스(Adidas)’로 브랜드네임을 내세우면서 푸마와 아디다스는 같은 고향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함께 경쟁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할 필요성을 느끼고 핀란드의 스포츠 브랜드 ‘카르후(Karhu)’가 사용하던 삼선 트레이드마크를 위스키 2병과 1600유로에 사들이며 단장을 마친 아디다스는 또 한번의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고 게임에 나선 독일 축구팀이 궂은 날씨로 엉망이 된 필드에서 역전승을 이루어 내며 전세계를 놀라게 한 것.
훗날 ‘베른의 기적’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이날 게임에서 아디다스의 징 박힌 축구화가 승리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아디다스는 축구계에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아디다스는 일명 ‘삼선슬리퍼’인 ‘아딜레트(adilette)’와 기본 스니커즈인 ‘슈퍼스타(Superstar)’ 등 브랜드의 시그니처 아이템들을 탄생시켰고, 트레이닝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의류 라인 전개에도 나섰다.
그리고 1971년 잎사귀 모양의 로고를 내세워 차별화된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킨 아디다스는 축구화의 정석 ‘코파 문디알(copa Mundial)’을 발표하고, 월드컵 공인구 제작을 맡으면서 축구 전문 브랜드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디다스의 재도약
창립자 아돌프 다슬러가 1978년 세상을 떠난 후 아디다스 프랑스 지사를 운영했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Horst Dassler)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가 의욕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가운데 경쟁 브랜드들의 위협이 거세어지면서 아디다스는 재정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1987년 호르스트 다슬러의 사망으로 다슬러 가문의 경영체제는 막을 내렸다.
프랑스 출신 전문경영인 베르나르 타피(Bernard Tapie)에 인수되고 나서도 침체기를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고, 이후 1994년 타피의 친구인 로베르 루이 드레퓌스(Robert Louis-Dreyfus)가 새로운 CEO에 오르면서 아디다스는 드디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우선 드레퓌스는 뛰어난 기능의 전문 스포츠 용품들로 채워진 아디다스의 역사를 환기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We knew then, we know now)’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퍼포먼스 라인의 제품들에 장식되던 로고를 1998년부터 브랜드의 대표 로고로 대체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세 줄이 사선으로 배치되어 산 모양을 이루는 이 로고는 기존 잎사귀 모양의 로고보다 미래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을 전해주었고, 이와 함께 아디다스는 생산 과정에서 절감한 비용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성장세를 회복했다.
드레퓌스에 이어 헤르베르트 하이너(Herbert Hainer) 체제로 들어간 아디다스는 2004년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와 리오넬 메시(Lionel Messi), 케빈 가넷(Kevin Garnett) 등 스포츠 각 분야의 레전드들을 모델로 기용해 스포츠 정신을 일깨우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 광고 캠페인을 전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렇게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는 동안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 결과 2005년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인공지능 러닝화 ‘아디다스-1’을 내놓으며 앞선 기술을 세계무대에 과시했다.
되찾은 자신감으로 축구 외 분야 공략에 팔을 걷어붙인 아디다스는 2006년 1월 농구화로 인기를 끌던 ‘리복(Reebok)’의 인수 합병을 추진해 스포츠 마켓의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당시 리복이 맺고 있던 NBA와의 유니폼 공급 계약을 이어받아 농구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가져오는 한편,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맞아 전문 분야인 축구에서의 강점도 십분 살리면서 위력을 떨친 아디다스.
2013년 에너지 효율과 쿠셔닝을 높인 테크놀로지 러닝화 ‘에너지 부스트(Energy Boost)’로 새 시대를 연 아디다스는 다양한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부스트 시리즈로 기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2016년에 영입된 CEO 카스퍼 로스테드(Kasper Rørsted)와 함께 디지털 혁신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 경기장을 벗어나 패션 브랜드로 변신하다
축구화로 시작해 프로 선수들을 위한 스포츠 용품으로 명성을 쌓은 아디다스가 현재의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건 힙합의 조상 ‘런(Run) DMC’와 만나면서부터.
1980년대 중반 또렷한 삼선이 돋보이는 아디다스 트레이닝과 스니커즈를 착용하고 무대에 올랐던 런DMC는 아디다스를 향한 애정을 담아 ‘My Adidas’라는 곡까지 발표했고, 콘서트에서 이 곡이 울려 퍼지면 관객들은 신고 있던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들고 환호했다.
당시는 힙합이 주류로 인정받기 이전인 시기였고, 아디다스는 과거의 인기를 잃어가던 시기.
비주류의 음악을 하던 아티스트답게 비주류 브랜드인 아디다스를 선택한 런DMC는 특히 신발끈 없이 아디다스 슈즈를 신는 모습을 연출해 더욱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형무소에서 수감자의 자살 방지를 위해 신발끈을 금지했던 데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런 DMC 덕분에 힙합 스타일의 스트릿 패션으로 인기를 모으면서 기존의 스포츠웨어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아디다스는 이에 맞춰 전략을 수정했다.
아디다스의 기본 아이템들 위주로 ‘오리지널스(Originals)’ 라인을 별도로 구성한 것.
여기에 1998년 브랜드의 대표 로고 자리에서 밀려난 잎사귀 로고가 오리지널스 라인의 얼굴로 나서면서 레트로 느낌의 스트릿 패션 라벨로서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방향성이 확립되었다.
그리고 런 DMC가 가져다 준 힙합 베이스를 오리지널스 라인의 바탕으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 아디다스는 미시 엘리엇(Missy Elliot)과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등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과 손을 잡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쳤는데, 그 가운데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디자인한 ‘이지 부스트(Yeezy Boost)’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스니커즈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성과를 냈다.
또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까지 덧입은 아디다스.
2002년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와 ‘Y-3’ 컬렉션을 런칭한데 이어, 제레미 스캇(Jeremy Scott),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과도 협업을 진행했으며, 2004년부터 전개한 ‘아디다스 바이 스텔라 맥카트니(Adidas by Stella McCartney)'는 러닝과 요가를 즐기는 여성들을 매니아로 확보하며 자리를 잡았다.
지난 해엔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da)’와의 한정 컬렉션으로 패션계의 시선을 모으기도.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프로 선수들로부터 인정받는 동시에 힙한 스트릿 스타일로 패션리더들로부터도 사랑 받고 있는 아디다스.
기능적인 스포츠 아이템들의 퍼포먼스 라인과 패셔너블한 오리지널스 라인으로 분리된 투 트랙 위를, 아디다스는 순조롭게 운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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