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⑫ 대한민국 오리지널, 프로스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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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⑫ 대한민국 오리지널, 프로스펙스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7.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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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수입브랜드들과 인기 다퉈
외환위기 맞아 쓰러졌으나 워킹화로 재기 성공
레트로 트렌드 맞춰 오리지널 디자인 되살려
프로스펙스 오리지널 라인 광고 이미지 컷
프로스펙스 오리지널 라인 광고 이미지 컷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한국 토종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명맥을 꿋꿋하게 이어오고 있는 프로스펙스(PRO-SPECS).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발판으로 급성장한 프로스펙스는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졌으나 이후 ‘워킹화’ 카테고리를 개척하며 국내 스포츠업계의 선두주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제 글로벌 브랜드들이 주도하는 레트로 열풍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프로스펙스, 과연 이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을까.

 

고무신 만들던 회사, 운동화 브랜드 런칭

부산 범일동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양태진 사장은 장사에 소질을 보이던 아들 양정모에게 가게 한 켠에서 고무신 사업을 해보도록 허락해주었다.

‘국제고무공업사’로 간판을 걸고 ‘왕자표’ 고무신을 내놓은 아들이 손님들을 늘려가는 와중에 정미소에 불이 나는 일을 겪은 양태진은 아들의 일을 뒷받침해주기로 결정하고 1949년 ㈜국제 화학을 설립했다.

6∙25 전쟁 중에도 군수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생산 기술을 발전시킨 국제화학은 1962년부터 국내 신발 기업 최초로 미국에 운동화를 수출하면서 1970년대에 총 수출액 10억달러를 넘기는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1976년 아버지 양태진을 떠나 보내고 전권을 물려받은 양정모 회장은 ㈜ 국제상사로 새 출발하며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는데, 국제상사의 운동화를 납품 받아온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1981년 자체브랜드 ‘프로스펙스(PRO-SPECS)를 런칭했다.

국제상사가 3년 전 인수한 미국 브랜드 ‘스펙스(Specs)’에 ‘프로(Pro)’가 덧붙여져, '전문적인(Proffessional) 규격(Specification)’, 즉 프로 선수들에게 적합한 스포츠 브랜드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탄생된 프로스펙스.

학의 날개를 형상화한 ‘F’ 모양의 심볼 마크를 달고 세상에 첫 걸음을 내디딘 프로스펙스는 수출을 통해 이미 다져진 기술력 덕분에 미국 내 6대 스포츠화로 선정되고 세계적 스포츠 잡지 ‘러너스월드(Runners World)’로부터 5성급 등급을 받으면서 빠르게 운동화 시장 중심부로 침투했고, 국내 소비자들을 향해서는 ‘우수한 국산 제품’, ‘우리 체형에 맞는 스포츠화’임을 강조하며 고급화 전략을 고수한 결과 수입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버틸 수 있었다.

해볼만하다는 판단 아래 1983년 국내 브랜드 최초로 ‘스포츠제품 과학연구센터’를 세우고 신제품 개발에 투자한 프로스펙스는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며 품질에서 앞서나가는 동시에 테니스화 ‘그랜드슬램(Grand Slam)’을 비롯한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화를 추가하며 영역을 확대해나갔다.

프로스펙스의 성장과 함께 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계열사를 늘려가면서 국내 재계 7위의 그룹사로 우뚝 선 ‘국제그룹’.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부채가 늘어난 국제그룹은 1985년 정부의 부실기업정리대상으로 지목되어 전격적으로 해체되는 비극을 맞았고, 프로스펙스는 한일합섬에 인수되었다.

창립자와는 헤어졌지만 ‘국산 스포츠 브랜드’라는 프리미엄은 잃지 않은 프로스펙스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되면서 더 넓은 보폭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내 브랜드 최초의 해외 진출을 이뤄내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프로스펙스 1980년대 광고 캠페인
프로스펙스 1980년대 광고 캠페인

마케팅에서 밀리다 외환위기에 쓰러져

고향 부산을 연고지로 둔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제작하는 등 1990년대 국내 프로스포츠리그에서 활약을 이어간 프로스펙스는 특히 농구 붐을 제대로 타면서 국내 농구화 시장에서 ‘나이키(Nike)’에 밀리지 않는 인기를 누렸다.

1990년대는 ‘KBL(한국프로농구)’의 전신인 ‘농구대잔치’가 국민적인 사랑을 받던 시절.

실업팀과 대학팀이 모두 같이 승부를 겨루던 농구대잔치는 대학팀 선수들이 실업팀 선배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이며 관중을 불러모았는데, 프로스펙스는 그 중에서도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연세대 농구팀을 후원하면서 그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프로스펙스 클래식을 대표하는 농구화 ‘헬리우스(Helios)’도 당시 연세대 농구선수들에게 제공되면서 엄청난 홍보효과를 보았던 제품.

이렇듯 연세대 농구팀과 함께 인기몰이에 성공한 프로스펙스는 또 하나의 초특급 파트너를 보유할 기회를 만났다. 그는 바로 1994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 박찬호 선수.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한국제품을 신고 마운드에 오르고 싶었던 박찬호 선수는 에이전트를 통해 다저스 팀 컬러에 맞는 파란색 스파이크 4켤레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프로스펙스 측에 물었다.

그런데 맞는 색상의 제품이 없다며 검정색 스파이크 1켤레만을 보낸 프로스펙스. 이와 달리 적극적으로 스폰서 의사를 밝히며 다가온 해외 유명 브랜드들 가운데 박찬호 선수는 나이키를 선택했다.

이미 농구화로 스타 마케팅의 파급효과를 체험하고도 프로스펙스는 제 발로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고, 여기에 한 술 더 떠 무리수 광고로 논란을 일으키며 이미지 하락의 길로 향했다.

한국 토종 브랜드임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시선을 모으고, 국내에서 열린 스포츠 축제를 기반으로 성장했던 기억을 떠올린 프로스펙스는 또다시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를 내놓았는데, 하지만 정신대 편, 학도병 편 등으로 이어진 광고 시리즈는 기대처럼 호평이 쏟아지기보다는 적잖은 불편함을 야기시켰고, NBA 스타를 내세운 해외 브랜드들의 세련된 마케팅과 비교했을 때 ‘우물 안 개구리’의 느낌을 줄 뿐이었다.

점차 ‘나이키’, ‘리복(Reebok)’ 등에게 국내 인기도 밀리기 시작한 프로스펙스는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결국 부도를 피할 수 없었고, 1999년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시련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운 프로스펙스 W의 워킹화 광고 캠페인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운 프로스펙스 W의 워킹화 광고 캠페인

김연아 효과 누리며 워킹화 시장 리드

다행히 2007년 1월 법정관리 8년만에 LS그룹에 인수된 국제 상사.

오래된 브랜드라 하더라도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이름으로서 가치가 남아있다 판단한 LS그룹은 프로스펙스의 손을 잡았고, 프로스펙스의 전개를 맡은 LS그룹 산하 LS네트웍스는 곧바로 브랜드 리뉴얼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프로’와 ‘스펙스’ 사이의 하이픈(-)을 없앤 ‘PROSPECS’로 브랜드네임을 정리하고, ‘F’ 심볼마크 대신 곡선형 모티브로 모습을 바꾼 프로스펙스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다시 돌릴 만한 신제품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워킹화’라는 답을 찾았다.

제주 올레길에서 출발해서 당시 전국적으로 번져나가던 걷기 열풍.

그러나 정작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 운동화나 러닝화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걷기에 특화된 제품 개발에 들어간 프로스펙스는 특히 몸매를 가꾸기 위해 걷기를 택한 여성들을 메인 타겟으로 설정해 2009년 워킹화 라인, ‘프로스펙스 W’를 런칭했다.

브랜드를 탄생시킨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눈을 감은 같은 해, 워킹화와 함께 다시 태어난 프로스펙스.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로서 앞서나가며 옛 명성을 되찾은 프로스펙스는 당분간 힘든 스포츠보다는 일상에서 걷기를 선호하는 인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프로 스포츠 분야를 축소하면서 워킹화 중심의 생활 스포츠 브랜드로 변신했다.

패션모델 이선진에 이어 배우 김혜수를 등장시킨 광고 캠페인으로 일단 대중에게 워킹화를 알린 프로스펙스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후 나이키와의 스폰서쉽 계약이 만료된 ‘피겨여왕’ 김연아를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2011년 모던한 로고체와 유선형 심볼마크로 재단장한 프로스펙스는 김연아를 브랜드의 얼굴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스타 마케팅을 펼치면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프로스펙스는 후발주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워킹화 부문 압도적인 1위로 군림했다.

2012년 제12회 브랜드 경영대상을 수상하고 국내 최초 KAS제품인증마크까지 획득하며 2015년까지 워킹화 시장을 주도한 프로스펙스는 하지만 김연아와 헤어진 이후로 인기가 식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여기에 타 브랜드들의 도전도 거세어지면서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컴퓨터 칩을 내장한 ‘스마트 슈즈’, 접지력과 쿠셔닝을 업그레이드한 ‘메타소닉(Meta Sonic)’ 시리즈를 출시하며 프로스펙스는 워킹화 분야의 리더로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프로스펙스와 잡화브랜드 로우로우(RAWROW)의 콜라보레이션 컬렉션 이미지 컷 (사진=로우로우 홈페이지)
프로스펙스와 잡화브랜드 로우로우(RAWROW)의 콜라보레이션 컬렉션 이미지 컷 (사진=로우로우 홈페이지)

워킹화 외에 다른 성장 동력이 필요했던 프로스펙스는 레트로 트렌드에 맞춰 과거의 인기 디자인을 부활시켜 오리지널 라인을 구성했다.

사라졌던 하이픈(-)을 살려내고 ‘F’로고도 다시 꺼내든 프로스펙스(PRO-SPECS).

하지만 광고 캠페인마저 레트로인걸까. 프로스펙스는 초창기에 그랬듯,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 그랬듯 또다시 애국심에 기댔다.

‘잘 됐으면 좋겠어, 대한민국이. 프로스펙스도’가 올해 발표한 광고 캠페인의 슬로건.

국민들이 애국심으로 자국제품을 선택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좋은 자국제품을 만나 애국심이 커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워킹화로 돌파구를 찾았던 것처럼 새로운 제품으로 승부하는 프로스펙스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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