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⑩ 악어의 품격을 즐겨라, 라코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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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⑩ 악어의 품격을 즐겨라, 라코스테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6.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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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로 불리던 테니스 선수, 라코스테 탄생시켜
패션 디자이너들의 손길 거쳐 스타일리쉬하게 변신
테니스 코트에서도 여전히 활약하며 전통 지켜가
라코스테 2014년 봄 시즌 광고 캠페인
라코스테 2014년 봄 시즌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본 아이템, ‘라코스테(Lacoste)’의 폴로 셔츠.

‘꾸민 듯 안 꾸민 듯’ 패션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폴로 셔츠를 앞세워 고급스러운 캐주얼 브랜드로 자리잡은 라코스테는 하지만 그 출발은 테니스 유니폼이었다.

현재도 세계 랭킹 1위의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의 스폰서를 맡고 있는 라코스테는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활동도 병행 중이다.

 

◆ 코트를 호령하던 악어, 폴로 셔츠 위로

라코스테의 역사는 프랑스의 테니스 레전드, 르네 라코스트(René Lacoste)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7회 우승과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 2회 우승으로 빛나는 커리어를 쌓으면서 1920년대 후반 세계 랭킹 1위에도 올랐던 전설적인 선수.

19세였던 1923년 프랑스 대표팀으로 데이비스컵 대회에 출전하게 된 라코스트는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악어가죽 수트케이스를 선물해주겠다는 팀 주장의 약속을 받고 경기에 나섰는데, 비록 승리하진 못했지만 그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에 악어가죽 수트케이스 일화와 그가 보여준 끈질긴 승부욕이 맞물려 ‘악어’라는 별명이 그에게 붙여졌고, 별명이 마음에 든 라코스트는 1927년 디자이너 로베르 조르주(Robert George)에 의뢰해 재킷에 악어 자수를 넣어 입으며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악어 자수로 위안을 삼기에는 당시의 테니스 유니폼이 너무 불편했다. 긴 소매 셔츠와 벨트를 두른 단정한 주름바지 그리고 그 위에 브이넥 니트를 덧입는 착장은 선수들이 마음껏 움직이도록 도와주질 않았다.

보다 간결한 유니폼의 필요를 느끼고 있던 르네 라코스트의 눈에 마침 폴로 셔츠를 입고 테니스를 즐기는 친구의 모습이 들어왔다. 19세기 영국의 폴로 선수들이 무더운 날씨의 인도에서 간편하게 플레이하기 위해 입기 시작했다고 하는 폴로 셔츠.

폴로 셔츠처럼 테니스 유니폼을 고쳐 입기로 한 라코스트는 상의를 반소매로 줄여 입고 코트에 등장했고, 곧 주위 지인들에게 전파된 이 스타일은 그가 테니스 선수로서 은퇴한 후 수요가 점점 더 커졌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라코스트는 1933년 니트 기업을 경영하던 앙드레 질리에(André Gillier)와 손을 잡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라코스테’를 출범시켰다. (발음은 라코스트에 가깝지만 국내엔 라코스테로 소개되었다)

상품으로 완성된 라코스테의 폴로 셔츠는 우선 통기성과 신축성을 높일 수 있도록 올록볼록 벌집 모양으로 짜여진 ‘피케’ 조직의 면 소재 니트로 제작되었고, 빳빳하지 않은 칼라와 2~3개의 단추만이 달린 플라켓, 짧은 소매로 모양이 갖춰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왼쪽 가슴에 악어 자수가 놓여졌다.

테니스 외에 폴로와 골프, 세일링 등 다양한 스포츠와도 어울리며 확산된 라코스테 셔츠는 1952년 ‘아이자드(Izod)’사와의 라이선스 계약으로 미국에도 진출했고, 유명인사들을 대상으로 펼친 마케팅으로 고급 스포츠웨어임을 어필하며 미국 시장에 터를 잡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초창기 브랜드로고, 르네 라코스트 선수 시절 모습, 폴로 셔츠 이미지 컷, 초창기 광고 캠페인 (사진=라코스테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초창기 브랜드로고, 르네 라코스트의 선수 시절 모습, 폴로 셔츠 이미지 컷, 초창기 광고 캠페인 (사진=라코스테 홈페이지)

◆ 패션 감각 가미하며 시대 변화 적응

르네 라코스트의 아들, 베르나르 라코스트가 경영을 맡은 1963년부터 성장 속도를 올린 라코스테는 의류 품목을 점차 확대한 데 이어 백, 지갑 등 가죽 제품들과 향수, 아이웨어 그리고 테니스 슈즈도 선보이며 사업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1980년대가 저물면서 라코스테의 인기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1993년 아이자드와의 계약을 정리하고 미국 시장을 직접 컨트롤해보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1996년 창립자 르네 라코스트를 떠나 보낸 후 라코스테의 위상은 점점 더 위축되어갔다.

저마다의 캐릭터 자수를 가슴에 새긴 타 브랜드들의 폴로 셔츠들이 라코스테 악어의 영역을 잠식해오는 가운데 아예 같은 악어를 내세운 홍콩 브랜드 ‘크로커다일(Crocodile)’까지 맞닥뜨리게 된 라코스테는 결국 1998년 크로커다일과의 법적 분쟁을 결단하며 브랜드 가치의 재정립에 나섰다.

그리고 2000년 분위기 쇄신을 위해 '크리스찬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등 력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경험을 쌓은 신예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를 영입했다.

르메르의 지휘에 따라 모던하고 스타일리쉬하게 재탄생된 라코스테 브랜드는 전세계를 향해 새로운 패션 브랜드의 이미지로 다시 다가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예전의 인기를 회복해가는 동안 2003년 홍콩 악어와의 싸움도 결론이 났다.

라코스테 악어가 먼저 알려졌던 만큼, 크로커다일 악어가 눈을 키우고 꼬리를 올리는 등 모습을 더 차별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정된 것.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더욱 공격적 마케팅에 돌입한 라코스테는 비록 베르나르 라코스트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동생 미셸 라코스트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을 겪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성장세를 유지했다.

10년간 라코스테에서 활약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은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프랑스의 대표적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ès)’로 발탁되자, 라코스테는 그의 자리를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Felipe Oliveira Baptista)로 채웠다.

포르투갈 출신으로 런던에서 패션수업을 받은 밥티스타는 보다 젊은 감각의 ‘라코스테 라이브(L!VE)’ 컬렉션을 런칭하며 혁신의 페달을 밟았고, 패션 매거진 ‘비져네어(Visionaire)’와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Supreme)’ 그리고 ‘디즈니(Disney)’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추진하며 라코스테를 트렌디하게 업데이트시키는 작업을 이어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20년 봄 시즌 컬렉션 3컷, 라코스테x디즈니 컬렉션, 라코스테x슈프림 컬렉션 (사진=라코스테 홈페이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20년 봄 시즌 컬렉션 3컷, 라코스테x디즈니 컬렉션, 라코스테x슈프림 컬렉션 (사진=라코스테 홈페이지)

◆ 그래도 라코스테의 근본은 역시 스포츠

지난 해부터 라코스테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영국 출신의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는 라코스테의 전통 스타일에서 다시 출발하기 위해 올 봄 시즌의 패션쇼 무대를 파리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 테니스 경기장으로 정하고, 그 곳에서 미니 테니스 게임을 진행한 후 유니크하게 재해석된 라코스테 클래식 룩을 펼쳐 보였다.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는 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이 펼쳐지는 경기장으로, 프랑스에선 대회 자체를 롤랑 가로스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 롤랑 가로스를 1971년부터 후원하고 있는 공식 파트너가 바로 라코스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스포츠 브랜드보다는 대중적인 캐주얼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라코스테지만, 사실 테니스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지켜가기 위해 롤랑 가로스와 테니스 선수들의 스폰서로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현재 라코스테는 프랑스의 베노이트 파이레(Benoît Paire), 러시아의 다닐 메드베데프(Daniil Medvedev), 한국의 정현 등 세계적 테니스 선수들의 유니폼을 맡고 있으며, 세계 랭킹 1위인 세르비아 출신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와도 2017년부터 함께 하고 있다.

조코비치에게는 르네 라코스트의 명예를 빛내줄 ‘새로운 악어’의 칭호를 붙여주고 브랜드 앰배서더의 역할도 부여한 라코스테는 조코비치 컬렉션도 별도로 전개하고 있다.

테니스와 함께 라코스테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스포츠 종목은 골프인데, 그 이유는 바로 르네 라코스트의 부인과 딸이 모두 골프 선수였기 때문.

라코스트의 아내 시몬 티옹 드 라 숌(Simone Thion de la Chaume)은 1920년대 각종 골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으며, 딸 캐서린 라코스트(Catherine Lacoste)는 1967년 22세의 나이에 US 여자오픈을 우승한 바 있다.

라코스테는 현재 프랑스의 셀린 부티에(Céline Boutier)를 비롯한 프로선수들과 여러 골프대회의 스폰서로 나서고 있는데, 특히 2012년부터 후원하는 ‘프랑스 여자오픈’은 르네 라코스트의 장인이 1928년에 건립하고 라코스트 가문이 관리하는 샨타코 골프 클럽에서 진행되면서, 전세계 골프 팬들에게 프랑스 남서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전하고 있다.

라코스테의 브랜드 앰배서더 노박 조코비치 (사진=라코스테 홈페이지)
라코스테의 브랜드 앰배서더 노박 조코비치 (사진=라코스테 홈페이지)

선수 시절 자신의 경기를 복기하고 상대를 분석하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왔던 르네 라코스트는 스쳐가는 아이디어들을 메모하고 이들을 구체화해 20여개의 발명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테니스 라켓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금속 재질의 라켓을 만들고, 훈련을 도와줄 테니스 공 기계도 만들어낸 라코스트.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또 하나의 발명품이 바로 브랜드 ‘라코스테’였다.

2012년 비록 라코스테는 스위스 ‘마우스 프레레(Maus Frères)’에 인수되며 가족의 손을 떠나게 되었지만, 르네 라코스트의 손녀 베릴 라코스트 해밀턴(Beryl Lacoste Hamilton)이 라코스테 재단을 통해 어린 스포츠 선수들을 이끌어주며 가문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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