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③ 에너지를 끌어올려줄 펌프, 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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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③ 에너지를 끌어올려줄 펌프, 리복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5.0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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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국가대표 브랜드 리복, 미국에서 급성장
1990년대 농구화로 인기 끌며 전성기 누려
아디다스에 인수되면서 피트니스로 방향 바뀌어
리복 클래식 라인의 ‘퓨리 라이트(FuryLite)’ 광고 캠페인
리복 클래식 라인의 ‘퓨리 라이트(FuryLite)’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영국에서 태어난, 오랜 역사의 스포츠 브랜드, 리복(Reebok).

미국 시장에 진출한 후 에어로빅과 농구 붐을 타고 한 시대를 풍미한 리복은 그러나 차츰 경쟁에 밀려 힘이 빠지면서 결국 아디다스(Adidas)에 합병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후 아디다스와의 역할분담을 위해 피트니스 전문 브랜드로 궤도를 수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레트로 트렌드가 불어와 예전의 파워 넘쳤던 리복을 불러내면서, 리복은 클래식 아이템들을 앞세워 잃었던 옛 영광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 영국 최상급 러닝화로 명성을 쌓아간 리복

1895년 영국 볼튼 지역에서 육상선수로 활동하던 14세의 조셉 윌리엄 포스터(Joseph William Foster)는 할아버지의 신발가게에서 일을 돕다 바닥에 못이 부착된 크리켓용 운동화를 보고 스파이크 러닝화를 구상했다.

1900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직접 스파이크 러닝화의 제작에 돌입한 그는 육상 선수들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으며 자리를 잡았고, 이후 아들들이 합류함에 따라 ‘J.W. 포스터 앤 선즈(J.W. Foster & Sons)’로 간판을 바꾸고 사업 규모를 키웠다.

점차 기능을 보완하고 발을 측정하는 도표도 개발하면서 각 선수들에게 최적합 운동화를 만들어준 포스터 가족은 이 선수들이 영국과 여러 영연방 국가의 육상대회에서 성과를 내준 덕에 자신들만의 뛰어난 기술을 입증할 수 있었다. 특히 ‘포스터 디럭스 스파이크(Foster Deluxe Spike)’가 최고의 러닝화로 손꼽히면서 명예를 더욱 빛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영화 ‘불의 전차’의 실제 주인공들로 잘 알려진 해롤드 에이브라함스(Harold Abrahams)와 에릭 리들(Eric Liddell) 선수가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각각 100m와 400m 금메달을 따내면서 포스터의 유명세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의 러닝화를 만든 포스터 가족의 명성은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1933년 창립자 포스터를 떠나 보내고, 제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두 아들 제임스(James)와 존 포스터(John Foster)에 의해 안정적으로 유지된 가업, ‘J.W. 포스터 앤 선즈’는 하지만 3대인 조(Joe)와 제프 포스터(Jeff Foster)가 기존의 경영 방식에 반기를 들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군대에 다녀와 업무에 복귀한 이들은 변화를 주려는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자, 1958년 따로 회사를 꾸렸고, 18개월이 지난 후 브랜드네임을 ‘리복’으로 확정했다.

리복은 빠르게 달리는 아프리카 가젤의 이름으로, 러닝화 관련 노하우를 가지고 세운 브랜드인 만큼 날쌘 이미지를 상징하기로 한 것.

조와 제프 포스터는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제품들을 전개하고, 다양한 스포츠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리복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1976년 정체되어 있던 모기업 ‘J.W. 포스터 앤 선즈’까지 인수하면서 가족의 사업을 아우르는 위치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해외 판로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선 리복은 1979년에 참가한 시카고 국제 박람회에서 미국의 기업가 폴 파이어먼(Paul Fireman)을 만난다. 이를 기점으로 리복의 역사는 미국 배경의 블록버스터급 스토리로 펼쳐나가게 된다.

왼쪽부터 1977년, 1980년 리복 광고 캠페인
왼쪽부터 1977년, 1980년 리복 광고 캠페인

◆ NBA 스타 샤킬 오닐과 함께 업계 선두로 점프

리복의 미국 내 판권을 획득한 폴 파이어먼은 조깅 문화가 보편화된 미국 시장에 리복을 러닝화 전문 브랜드로 소개하면서 어렵지 않게 인지도를 올렸다.

이후 미국인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에어로빅으로 옮겨가는 걸 지켜본 리복은 여성용 에어로빅화 ‘프리스타일(Freestyle)’을 선보였다. 이는 여성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최초의 운동화.

프리스타일의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큰 수익을 올린 파이어먼이 1984년 영국의 리복 본사를 인수하기에 이르면서, 리복은 더 이상 영국의 국가대표가 아닌, 미국을 무대로 성장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새 출발하게 됐다. 

리복의 로고에서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 마크도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레드와 블루 라인을 교차시켜 유니언 잭의 느낌을 살짝 남긴 ‘벡터(Vector)’ 로고가 그 자리를 매웠다.

에어로빅 전문가 진 밀러(Gin Miller)와 함께 트레이닝 프로그램도 개발하며 열풍을 이어간 리복은 ‘나이키(Nike)’와 ‘아디다스’를 누를 정도의 기세를 떨치면서 프로 스포츠 선수들과의 계약을 잇달아 성공시켰고, 의류와 액세서리, 아동용 아이템까지 전개하며 상품의 구색을 갖췄다.

그리고 1989년 리복의 시그니처, ‘펌프(PUMP)’ 농구화가 탄생했다.

펌프 버튼을 눌러 원하는 만큼 공기를 주입시키는 방식으로 착화감을 조절하는 이 획기적인 제품은 여러 NBA(미국프로농구) 선수들에게 선택됐다. 특히 1991년 슬램 덩크 컨테스트에서 디 브라운(Dee Brown)이 펌프를 신고 왕좌에 오르면서 농구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선두를 유지하기엔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을 앞세운 나이키의 힘이 너무 거셌는데, 이에 리복이 주목한 대항마는 바로 떠오르는 신예스타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1992년 데뷔부터 코트를 장악한 센터 샤킬 오닐의 스폰서가 되어, 조던의 나이키와 대결 구도를 만들며 성장 동력을 되찾은 리복은 ‘샤크어택(Shaq Attaq), ‘샤크노시스(Shaqnosis)’ 등 샤크 농구화 시리즈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은 리복은 1994년 신발끈을 없앤 혁신적인 디자인의 ‘인스타 펌프 퓨리(Insta Pump Fury)’로 펌프 시리즈를 업그레이드시켰고, 1996년 공기 흐름을 이용한 ‘DMX’ 테크놀로지를 완성해 이를 접목한 러닝화들로 호평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엔 또 다른 NBA 스타, 앨런 아이버슨(Allen Iverson)과 손을 잡은 리복은 그의 닉네임을 딴 ‘앤써(Answer, 경기의 해답이 되어주기 때문)’와 ‘퀘스천(Question)’ 시리즈를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하며 농구 코트 위에서 여전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왼쪽부터 ‘펌프’농구화, 샤킬 오닐 모델의 광고 캠페인
왼쪽부터 ‘펌프’농구화, 샤킬 오닐 모델의 광고 캠페인

◆ 아디다스의 지붕 아래, 피트니스 브랜드로 변화

2000년대에 들어서 위력은 약해졌지만, NBA와 NFL(미식축구리그)에 이어 MLB(메이저리그)의 공식용품 후원사로서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한 리복은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의 스폰서였던 CCM도 인수하며 북미 프로 스포츠계 전반으로 무대를 넓혔다.

이와 함께 힙합 뮤지션 제이지(Jay-Z)를 시작으로 셀럽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하며 리복은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는데, 하지만 샤크가 활약했던 시절만큼의 임팩트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이후 조금씩 점유율을 빼앗겨가던 끝에 결국 2005년 아디다스에 인수되었다.

이후 아디다스의 구상에 따라 리복의 브랜드 전개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비운'의 리복은 NBA와의 계약권을 아디다스에 넘겨줘야 했다(아디다스의 NBA 저지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다른 리그와의 계약들도 갱신하지 못하고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고향인 영국 볼튼의 축구 구단, '원더러스(Wanderers)'를 오랜 기간 후원하며 홈 경기장도 ‘리복 스타디움’으로 이름 붙였으나, 이 역시 관계가 끊어지며 이름마저 잃게 되었다.

리복에게 주어진 새로운 길은 바로 피트니스.

2010년 ‘크로스핏(CrossFit)’의 파트너가 된 리복은 관련 이벤트의 스폰서로 활동하면서 피트니스에 적합한 의류와 용품 제작에 들어갔다.

지그재그 형태의 밑창이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직텍(Zig Tech)', 유연하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나노(Nano)’ 시리즈 등으로 피트니스 제품군을 구성한 리복은 2013년 또 다른 피트니스 프로그램 ‘레즈밀(Les Mills)’, 그리고 종합격투기단체 UFC를 파트너로 추가하며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1986년부터 자리를 지킨 로고 ‘벡터’와도 헤어지고, 대신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담은 삼각 모양의 ‘델타(Delta)’ 로고로 얼굴이 바뀐 리복.

그러나 아디다스와 합병 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2014년 무렵 두 브랜드가 다시 헤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는데, 아디다스가 리복을 매각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대신 조직을 재정비했다. 리복은 2017년 러닝화 ‘플로트라이드(Floatride)’로 찬사를 받으며 건재함을 다시 알렸다.

지지 하디드(Gigi Hadid)가 모델로 등장한 피트니스 라인의 광고 캠페인
지지 하디드(Gigi Hadid)가 모델로 등장한 피트니스 라인의 광고 캠페인.

피트니스로 방향을 튼 리복은 창립 초기에 스파이크 러닝화로 이름을 떨쳤던, 미국 진출 초기에 에어로빅화로 인기를 모았던 때와 닮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많은 스포츠 팬들, 스포츠화 매니아들의 뇌리에 각인된 리복은 여전히 샤크와 함께 농구 코트를 장악하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레트로 트렌드가 형성되자, 리복은 예전의 시그니처 스타일들을 조금씩 재출시하기 시작했고, 스니커즈 트렌드까지 합세하게 되자, 이들을 ‘리복 클래식’ 라인으로 정착시켰다. 새로운 델타 로고에 의해 내쳐졌던 벡터 로고도 다시 전면으로 컴백한 상황.

아디다스의 그늘에서 움츠려 있던 리복이 조금씩 에너지를 ‘펌프 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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