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금융권]④'원금보장식' 투자자보호 관행돼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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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앓는 금융권]④'원금보장식' 투자자보호 관행돼선 안돼
  • 김솔이 기자
  • 승인 2020.01.29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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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터진 DLF·라임펀드사태...소비자 불신 커져
시중은행, 투자상품 평가‧판매 제도 개선 나서
CEO까지 책임 물어…사업 차질
금융소비자원이 지난해 9월 우리ㆍ하나은행에 '계약 취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소비자원이 지난해 9월 우리ㆍ하나은행에 '계약 취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올해 금융사들의 경영 기조는 ‘소비자보호’에 방점이 찍혔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등 불완전판매로 소비자 피해 사례가 발생한 탓이다. 금융감독원 역시 소비자보호 대책을 발표하는 한편 조직 개편을 통해 관련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DLF사태와 동시에 터진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사태는 은행을 통해 펀드에 가입한 소비자들의 불안을 가중 시키고 있다. 

라임 사태는 파생상품 투자를 하지 않는 금융소비자들에게까지 은행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라임 펀드를 판매한 은행들은 운용사의 환매 거부 등 계약위반에 따른 것으로 DLF사태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이미 DLF사태로 제재를 받고 있는 은행들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대놓고 항변하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금융감독당국이 내놓는 사후약방문식 소비자보호 방안 등은 금융사 수익원 다각화의 일환인 비(非)이자이익 부문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금융투자업계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파생금융상품 판매 후 손실 발생시, 보상 위주의 금융지주사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최고경영자(CEO)의 내부통제 책임의 범위를 놓고선 금융지주와 감독기관 간 치열한 법리 공방도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는 물론 금융투자업계의 성장을 위해 투자피해 발생시, 피해자의 감정적인 호소에 치우친 임시방편적 피해자 구제책보다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 시중은행‧당국, 상품 판매 절차 개선 및 조직 개편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 등 시중은행은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소비자보호를 위해 평가 제도와 상품 판매 절차를 개선했다. 이들 은행 모두 올해부터 직원‧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에 수익률 등 소비자보호 노력을 반영하기로 했다. 그간 판매량 등 수익성 위주로 설계된 KPI가 소비자피해를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이 나온 영향이다.

금융상품 판매 절차도 까다로워진다. 국민은행은 금융투자상품 심의 절차를 3단계에서 4단계로 확대하기로 했다. 상품 위험을 검증하기 위해 투자 상품 실무 전문가로 구성된 사전협의체를 신설했다.

해외금리 연계 DLF 주 판매처였던 하나‧우리은행은 금융상품 출시 과정에서 외부전문가의 사전 검토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더불어 금융상품에 가입한 소비자에게 숙려 기간을 주고 철회권(리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시중은행들은 또 조직 개편에서 소비자보호 관련 조직을 신설하거나 신설 계획을 세웠다. 신한은행은 올초 소비자보호 업무를 총괄하는 ‘소비자보호그룹’과 민원 등을 대응하는 ‘소비자지원부’를 새로 만들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7‧8월에 걸쳐 ‘금융사기 대응팀’을 신설하고 ‘전행적 소비자보호 강화 및 대포통장 감축 태스크포스팀(TFT)’를 구성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2월 겸직 체제였던 ‘소비자행복그룹’ 그룹장과 ‘손님행복본부’ 본부장을 분리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같은해 11월 향후 조직 개편에서 상품‧마케팅 조직을 분리해 위험 관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 차원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이 잇달아 시행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DLF 사태 종합대책’을 통해 금융상품 판매 시 소비자 보호 규제를 강화했다. DLF 사태의 원인이 은행의 내부통제 절차와 과도한 영업 관행에 있다는 판단이다. 금감원의 경우 이달 23일 보험 부문과 금융소비자보호 부문으로 구성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소비자 피해 예방 부문과 소비자 권익 보호 부문으로 재편하는 등 소비자보호 기능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 배상 중심 소비자보호 방안…향후 파장 우려

다만 불완전판매 관련 주요 대책이 상품 출시‧판매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형식적 절차에 한정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질적으로 소비자 책임‧보호 강화 측면의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금융사의 소비자보호 노력과 별개로 금융당국이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자체를 제한하는 데 집중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품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 소비자들이 투자를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상품 판매를 자제시키는 관행을 이번에도 되풀이 하면서 자본시장으로의 자금 공급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순히 상품 출시‧판매 절차를 추가하는 불완전판매 예방 대책은 꾸준히 보완돼 왔지만 ‘DLF 사태가 벌어졌다”며 “새로운 형태의 고위험 금융상품을 판매할 이번 DLF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금감원은 12월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에 4개 기업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내용이 담긴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을 통보했다. 사진=연합뉴스

금감원이 DLF 사태 외에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에서 은행의 배상 책임을 강조한 점도 소비자보호 대책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사의 소비자보호가 자칫 ‘손실액 배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금감원은 12월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에 4개 기업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내용이 담긴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을 통보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조정안 수용 시 배임 혐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13년 대법원이 키코 상품에 사기성과 계약의 불공정성이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키코의 경우 대법원에서 판결까지 난 사안을 금감원이 배상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DLF 사태와 다르다”며 “금융투자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할 때마다 금융사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금융사에겐 상품을 팔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 금감원, CEO 위험 관리 능력 지적

금감원에선 DLF 사태 등 금융상품 대규모 손실 및 불완전판매 논란에서 CEO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이 역시 금융사에게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영업 현장 사고의 책임을 CEO의 경영 책임으로 묻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공존한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EO 리스크’로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예기치 못한 사고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기관이 당연히 불완전판매를 제재해야 하지만 영업 현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중간관리자를 넘어 CEO에게까지 책임을 묻더라도 경영일선에 일정기간동안 복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만이 공정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면서 “금융사고가 날 때마다 그 파장이 CEO로 번진다면 경영 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도 없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하나은행이 DLF 판매했을 당시 행장이었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통보했다. 임원이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은 물론 향후 3년~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에선 금융사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금융사가 상품 판매 실적을 위해 조직적으로 불완전판매를 벌였다고 판단, CEO에게 내부통제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금융사는 지침 중 하나인 내부통제 기준을 금융사고 발생 시 은행장 제재 근거로 활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이런 논란에 대해 "금융기관의 관리 소홀로 금융소비자에게 피해가 생겼다면 이에 대해 최고책임자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 "감독당국 입장에선 실무자들 선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어 재발 방지를 위한 일벌백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하나은행에 대한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최종 결과는 오는 30일 나올 전망이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 16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두 은행 경영진과 대심(對審)을 진행했다.

한편 DLF사태는 피했던 신한금융지주도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신한금융투자, 신한은행이 연루되면서 향후 금감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투자는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통해 환매 중단 펀드 중 하나인 무역금융펀드(6000억원 규모)에 3600억원을 대출해준 바 있다. 또 신한은행이 판매한 2700억원 규모 라임자산운용의 크레디트인슈어런스(CI) 펀드 중 일부는 환매 중단 펀드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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