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Ars Vitae] 정(情)의 시대와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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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의 Ars Vitae] 정(情)의 시대와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이후
  • 박지윤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09.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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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권력의 폭력적 분출 사례...일본에만 국한되지 않아
권력에 동원되지 않는, 신성시된 관념에 도전하는 예술에 '우리는 열려있는가'
'인간다운 삶'을 탄생시키는 기술(Ars), 본연의 예술에 닿게 하는 계기될 수도
박지윤 연구원
박지윤 연구원

[박지윤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지난 8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공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그 소식은 얼마가지 않아 곧 전시중단 결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전시를 중단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테러의 위험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평화의 소녀상' 일본 전시 중단의 문제점

실제로 소녀상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얼굴에 종이봉투가 씌워지기도 하였으며, 전시가 공개된 후 사흘 동안 수백 건의 항의와 협박전화가 쏟아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표현의 부자유전'의 기획상 어느 정도 예상할 만한 일이었으나 아이치트리엔날레 기획 측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작가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전시중단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이와 같은 사태에 항의하면서 작품의 출품 및 전시를 거부하게 되었고, 곧이어 아이치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전'은 전시가 중단되었다.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있었던 검열은 예술, 특히 아시아의 예술의 교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검열은 국가권력이 자국 예술가의 예술작품에 가하는 검열과는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예술계의 자율적 협의와 절차에 의해 출품된 외국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이와 같은 처사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타국 예술가에 대한 무례는 물론 국제무대와 연결된 예술계의 자율성을 그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과 맞물려 자국의 신성을 그르치고 있다는 특정한 혐오와 분노가 예술과 국제교류의 차원에서 보낸 예술작품의 존재를 자국의 제도로 배제시킨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시중단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려 했다. '표현의 부자유전'에서 공격의 대상이 된 작품은 소녀상 만이 아니라, 국가과 역사, 집단적 기억에 대한 성스러운 관념이 허구임을 폭로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 시장은 소녀상을 특정해서, “정부의 지원금으로 이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강제수용에 대한 한국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전시 중지로 끝날 일이 아니라 전시 관계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일본인들이 지난 8월 4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밖에서 ‘표현의 부자유’ 전시 중단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일본인들이 지난 8월 4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밖에서 ‘표현의 부자유’ 전시 중단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한국서도 유사한 사태...국가의 위상이 예술을 검열해

일본의 정부 및 예술 관계자들이 이와 같은 주장에 동조하고 테러의 협박에 굴복해 작품전시를 중지한 사태는, 특정한 예술을 길들이는 권력의 폭력적 분출이 특정한 대상을 가리지 않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의 검열은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우려가 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이후 한국에서도 반일 정서를 이유로 작품의 전시를 제한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일 아이치트리엔날레의 전시중단 사태가 발생한 후, 8월 7일에 개막하려고 했던 이중희 작가의 전시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그린 <일본여인>이라는 작품이 문제가 되었다.

전시를 기획한 전북익산보석박물관 측은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객과 시민의 사회적 지탄을 받을 우려가 있어, 불가피하게 전시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결정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관람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전에 박물관 측에서 미리 그와 같은 제안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 예술계는 이 같은 처사가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의 검열과 동일한 것임을 지적하며 전시 재개를 촉구하기도 했으나, 박물관 측에서는 작가가 전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의 검열 사태에 비추어 한국은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로 작품의 전시를 거부한 사례는 최근의 국내에서도 다시 찾아볼 수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7월 23일부터 9월 7일까지 런던에 있는 주영 한국문화원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공동으로 주재하는 국제전인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전 '서큘레이션 메타포'(circulation metaphor)를 여는 과정에, 광주 성매매 여성을 소재로 한 정유승 작가의 작품을 배제했다.

정유승 작가는 올해 4월 참여 작가로 선정되어 ‘집결지의 낮과 밤’이라는 작품을 출품하기로 하였는데, 갑자기 시립미술관 큐레이터에게 전시주제가 ‘에코-자연’으로 변경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에 작가는 새로 작품을 꾸려 보내었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선정 작가에서 배제됐다.

큐레이터의 개인적 책임으로 사과를 가리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의 결정은, 국가의 위상을 염두에 두고 예술을 배제한 아이치트리엔날레의 태도와 실상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권력에 동원되지 않고 신성시되는 관념들에 도전함으로써, 때로 우리를 극도로 불편하게 하는 새로운 예술에 어느 정도로 열려 있는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혐오를 끌어올리기 위한 예술’과 ‘권력에 대항하는 예술’의 서로 다른 결을 알아보고 시대를 통찰하는 힘으로 승화시킬 수 있겠는가.

애초에 기획된 아이치트리엔날레의 대주제는 ‘정(情)의 시대(Taming Y/Our Passion)’였다. 감독인 츠다 다이스케는 “인간이 가진 ‘정’ 중에서도 가장 빨리 분출되는 ‘원시적인 연대’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권력과 미디어에 의해 동물처럼 관리되고 있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는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정’에 있다고 보면서, 이제 “‘정에 의해 정을 길들이는 기술(ars)’을 우리 인간이 익혀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본래의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본래의 예술로서 Ars, 예술이 규범을 만들어내는 그대로를 보여줄 것 

어쩌면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의 결정은 츠다 다이스케 감독이 설명하는 것처럼 바로 그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정을 정으로 길들이는 기술(ars)’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시중단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은 예술 및 국제 교류의 차원에서 출품한 예술작품을 대하는 한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가진 ‘정(情)’의 상태를 그대로 노출했다. 이렇게 본다면 '표현의 부자유' 전은 전시가 중단됨으로써, 또 다른 예술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필자는 <위협 받는 예술, 위기의 민주주의> 토론회에 참관한 츠다 다이스케 감독을 만나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의 사태가 그가 언급한 ‘정’의 기술의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구체적인 기획을 언급하기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다소 원론적인 대답만을 남겼다. 그 모호한 대답을 필자는 다음과 같은 풀이로 갈음해보려 한다.

그것은 예술을 통해 촉발된 ‘정’에 대한 규범들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 가는가에 달려 있다. 이 규범은 기존의 규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새로이 탄생되는 생성의 가능성과 연동되어 있다. 잠재적 힘으로 엮어 만드는 규범 변화의 기술(ars)은 권력의 현재적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탄생시키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간다면, 비로소 그때에 기술은 자신과 인간과 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위대한 본연의 예술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 박지윤은 이화여대에서 기초법학(법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원이자 연세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다. `나와 공동체`를 만드는 예술로서의 법을 탐구하고 실험한다. 라틴어 Ars Vitae는 영어 'Art of Life'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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