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Ars Vitae]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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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의 Ars Vitae]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 박지윤 서울대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승인 2019.07.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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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이자 배우인 김원영의 1인극...차별금지법등을 빗댄 가상의 법률에 대해
"나 자신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해도 되나...나에 대한 부정은 곧 우리 스스로 차별하는 것"
박지윤 선임연구원
박지윤 선임연구원

 

[박지윤 서울대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근 서울변방연극제가 막을 내렸다. 2017년 제18회 이후로 2년 만에 제19회를 맞은 이 연극제는 지난 7월 3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성북구 미아리고개예술극장과 중구 삼일로 창고극장 등지에서 총 일곱 편의 연극을 올렸고 전회 매진되어 연극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김원영과 0set 프로젝트가 함께 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은 배우의 몸을 사랑과 혐오의 저울로 삼아 차별에 대해 묻고 있다.  
 
변호사면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김원영은 이 1인극의 배우이자, ‘차별금지법’과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을 패러디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의 입법자이기도 하다.

지난 7월3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 포스터. 사진= 연합뉴스
지난 7월3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 포스터. 사진= 연합뉴스

이 가상의 법을 통해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연극은 아름다운 몸과 추한 몸에 대한 차이와 차별을 물으면서 시작된다. 보기에 아름다운 몸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이 쉽게 좋아하고 선호되고 사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난하거나 못생기거나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는 몸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널브러진 정장과 구두를 갖춰 입고,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받침대로 삼아 휠체어에 앉아 배우는 관객에게 말한다. 기억을 따라 옮겨 본 그의 말은 다음과 같다. 

“차별이 왜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아시나요?. 도대체 그게 뭐기에 법률까지 만들어서 해결하려는 것일까요...답을 한번 해보시지요? (일동 침묵)...답이 없죠...이런 문제는 대개 답이 없어요. 쉽게 말해 차별을 받으면 불쾌하고 모욕적이거든요.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반복해서 겪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그저 내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결국 우리가...자기 자신을 차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대한 가상의 법률을 쓴다. 그 법의 제1조는 이 법이 “모든 국민이 타인의 사랑과 관심, 환대를 받음에 있어 겪는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완전한 사회참여 및 평등한 삶의 질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있다.

나아가 제33조 장애인에 대한 공정한 대우를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모든 국민이 장애를 가진 사람의 사랑 및 우정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범위에서 도움을 제공하거나 예의바른 무관심을 유지해야 하며, 공정한 사랑과 우정의 성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휠체어를 탄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상황에 놓일 경우 모든 사람은 무관심해야 하며 비웃거나 과도한 호기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다.

변호사이자 사회비평에세이 작가, 장애인 연극배우로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원영 변호사.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변호사이자 사회비평에세이 작가, 장애인 연극배우로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원영 변호사.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짐짓 장황하고 권위적인 법의 말투를 빌어서, 배우는 허구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상황에 관객을 참여시킨다. 그 방법이란 각 호에 해당하는 법조문을 즉석에서 스스로 적어 스크린에 띄운 다음, 보란 듯이 실연하는 것이다.

꼰 다리에서 무거운 정장 신발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게 하고(1호), 신발을 벗고 다리를 휠체어 안쪽으로 접은 후 앞다리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은 자세를 취하거나(2호), 척추 굴곡이 드러나는 자세로 엎드리며(3호), 체중 분산 등을 이유로 앞 팔로 몸을 완전히 들어 올리고(4호), 휠체어에 비스듬한 자세로 누워 얼굴을 하늘을 향하고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올리며(5호), 휠체어에서 내려앉고(6호) 바닥을 기고 뛰며 뒹군다. 지하철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눈에 익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그를 바라보거나 보지 않는 척하면서 의식적인 눈길을 보내기 쉽다.

그에게는 일상적인 행동이 타인에게는 특이한 행동이라고 감지되는 즉시 당사자가 바라지 않는 따가운 관심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법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은 꼼짝없이 무관심해야 하며 비웃거나 과도한 호기심을 보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실제로 상당수의 비장애인 관객이 일부러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극의 전개에 따라 자신 안의 혼란을 통과해서 결국은 배우를 바라보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배우가, 아니 정확하게는 배우의 몸과 몸놀림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새로 발견하게 된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연극의 막바지에 배우는 깊은 곳으로부터 무엇을 길어 올리는 듯이 바닥을 쓸고 물결을 그리며 눕는다. 그 행위는 몇 번에 걸쳐서 반복된다.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경험 속에서 잊혀 지고 사라졌던 몸의 기억을 법의 원천으로 다시 길어낸다.

이윽고 그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양 팔을 수평으로 벌리고 보이지 않는 권리(right)를 주고받듯이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 가게 펼쳤다. 그리고 손을 그대로 관객 쪽으로 뻗는다. 이제 그 자리에 있는 자는 누구든 그 손을 외면할 수가 없다.

한 관객이 용기를 내어 무대로 가서 손을 잡자, 배우는 엇갈리게 손을 잡은 채로 바닥에서 추는 춤에 관객을 초대한다. 그들의 팔은 마치 무한대를 그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인다. 함께 바닥을 천천히 구르며 춤을 춘 다음, 관객은 배우가 휠체어에 앉는 것을 도와준다. 막은 내리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눈 안의 보이지 않는 막이 새로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박지윤은 이화여대에서 법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나와 공동체`를 만드는 예술로서의 법을 탐구하고 실험한다. 라틴어 Ars Vitae는 영어 'Art of Life'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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