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Ars Vitae] 별 것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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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의 Ars Vitae] 별 것의 예술
  • 박지윤 서울대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승인 2019.06.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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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 없었다면 봉준호 감독 '기생충' 탄생했을까
제헌헌법 제정때도 '공공복리와 미풍양속' 프레임 예술에 씌우려 해
'예술이 예술이듯 예술의 자유도 예술의 자유일 뿐'
박지윤 선임연구원
박지윤 선임연구원

[박지윤 서울대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기생충은 기이한 영화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만한 지독한 부조리를 담고 있다. 우리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더라는 핏기 어린 점액질의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큰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니. 참으로 멋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봉준호 감독은 한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때문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제 수상은 여러 모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봉준호 감독이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봉감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 중에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 국민의식 좌경화’(괴물),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설국열차)라는 평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념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예술은 예술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헸다. 맞는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예술에 다른 평가기준을 덧씌워서는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다른 프레임으로 예술에 혐의를 씌우면, 자유로운 창작의 자유와 풍부한 상상력에 기반한 예술표현의 동력이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든 봉준호

특정한 소재나 의도에 의해서 예술을 만들게 되면 오히려 예술을 퇴색시키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예술이 편향적이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미적 가치만을 촉진해야 할 예술이, 이미 정해진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가 되거나 아니면, 은밀하게 작동되는 정치적‧문화적 판단의 감성적 규칙에 변화를 가해 사회를 요동치게 하려는 모종의 목적이 탐지되는 경우에는 그 시도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감성적 규칙에 가소성을 부여하는 것은 예술 자체가 가진 제작적 가능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예술은 현실 너머 본질을 헤짚으며 비틀고 조소한다. 봉준호 감독은 강요된 질서의 세계를 '설국열차'로, 빈부 차이로 벌어지는 지독한 부조리를 '기생충' 영화로 비틀었다. 사진= 연합뉴스
예술은 현실 너머 본질을 헤짚으며 비틀고 조소한다. 봉준호 감독은 강요된 질서의 세계를 '설국열차'로, 빈부 차이로 벌어지는 지독한 부조리를 '기생충' 영화로 비틀었다. 사진= 연합뉴스

이것을 둘러싼 걱정이 우리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1948년 7월 2일 금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헌법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날은 무더웠다.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논의가 오후를 지나면서, 드디어 예술의 자유의 부분, 즉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저작자 발명가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서 보호한다’는 대목에 온다.

그러자 더위를 잊은 듯이 “약소민족으로 참혹한 현하에 있었던 우리의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을 위하여 학문과 예술의 자유 이전에 과학을 우선하자”는 이야기와 함께, 양풍미속에 어울리는 문화와 예술을 지키기 위해 법문에 “공공복리와 선량풍속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술의 자유를 두자”는 등 여러 주장이 봇물 터지듯 연이어 나온다.

제헌헌법 '예술의 자유' 조항 넣기까지 

기록에는 “날도 대단히 더운데 너무 그렇게 긴 말을 해서 싫증이 나니, 간명하게 말을 해달라”는 주문까지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에게는 “반만년의 문화가 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양풍미속이 세계에 시범이 될 것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근의 상태를 보면 그 좋은 양풍미속이 전적으로 상실되고, 단지 외래 사상에 맹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염려는 끊이지 않는다.
 
이 가운데, 한 의원이 홀연히 다음의 발언을 전개한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그랬는데, 예술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 미풍양속에 해가 되는 예술도 있고 이가 되는 예술도 있습니다. 일례를 들면......, 예를 들지 않어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술에 자유를 준다고 해 가지고 별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서 거기에 다가서 타협하는 의미로서 공공복리와 선량풍속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다는 것을 거기에다가 넣고 하면은 대단히 좋을 줄로 압니다,”

이 발언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짧은 침묵이다. 그는 왜 예를 들지 못했을까. 제일 마지막이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미풍양속에 해가 되는 예술과 이가 되는 예술이 있다는 소신 있는 발언 뒤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지 못한 그는 주장만을 번복한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토론은 종결된다.

공공복리와 선량풍속이라는 가치추구 내지는 모종의 프레임은 예술의 자유에 직접 씌워졌을까. 결과는 재석의원 152명에 찬성123명 반대 8명으로 원안대로 가결되었다. 원안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다.

예술이 예술이듯이, 예술의 자유는 예술의 자유이다. 비록 그에 대한 제한은 있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받지 않는다. 이처럼 어떤 수식어가 따로 붙지 않은 예술의 자유는 이후에 별 것의 예술을 가능하게 했다. 영화 기생충은 그 중 한 사례로 당당히 꼽을 만하다.

●박지윤은 이화여대에서 법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나와 공동체`를 만드는 예술로서의 법을 탐구하고 실험한다. 라틴어 Ars Vitae는 영어 'Art of Life'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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