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많지도 적지도 않은 한솥밥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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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많지도 적지도 않은 한솥밥 식구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19.07.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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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협동조합 3만천개나 있어
협동조합도 '규모의 경제'위해 합병 시도
덩치키우기 단점도 많아...'작은 것이 아름답다'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필자가 다녔던 고등학교 교정에는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그늘을 만들어주던 살구나무가 있었다. 초여름에는 그늘에 앉아 쉬거나 잘 익은 살구를 따려고 학생들이 나무를 오르곤 했다. 고교 동창들끼리 모여 얘기하다 보면 흔히 옛이야기가 나오고, 살구나무 주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입에 오르내린다.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고교동창끼리 사용하는 SNS 밴드의 멤버 수는 119명이다. 한해 6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던 학교임을 고려하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가 가입한 밴드이다. 밴드에 가입된 동창들끼리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는 몰라도 대략적인 신상정보도 알고, 상호 교류 경험이 있어 밴드 소속감이 큰 편이다.

콤파니 어원은 '함께 밥먹는' 이들

‘밴드(band)’는 인류학에서 많이 쓰는 개념이다. 정치조직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로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산다는 뜻이다. 통상 50명이 넘지 않는다. 아프리카 부시맨과 같이 고정된 리더가 없고 개개인의 평등을 기본으로 삼는다.

회사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중에서 ‘company’의 어원은 라틴어 ‘companio’인데 이는 ‘함께(com)’ ‘빵(panis)’을 먹는 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공동화덕에서 빵을 구워 같이 나눠 먹는다는 의미이니 우리의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과 유사하다.

company라는 단어는 회사뿐 아니라 군대에서도 사용되는데 중대를 뜻한다. 중대는 로마의 백인대에서 유래된 조직으로 1백 명이 구성원이었다. 중세 이탈리아의 해운회사도 ‘꼼파니(compagnie)’라고 불렸다.

우리가 흔히 아는 주식회사는 1602년 네덜란드의 통합 동인도 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가 효시이다. 이 최초의 주식회사 명칭에도 콤파니(compagnie)가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co. ltd로 표기하거나 corporation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스페인과 전쟁 중이었던 네덜란드 의회는 군비 조달을 위해 확실한 수입원이 필요했기에 암스테르담, 홀란트, 젤란트 등 6개 도시의 무역회사를 하나로 통합하고 무역독점권, 외교권 등 특별한 지위를 가진 조직을 신설하였다.

대자본 조성을 목적으로 한 주식회사인 만큼 첫 번째 모집된 주주는 1143명이었고, 조성된 자본금은 650만 길더(오늘날 가치로 1억 유로 정도)이다. 오늘날 글로벌 주식회사의 주주는 수십만 명을 넘는 경우가 흔하다.

세계적인 협동조합 연합체인 미국 선키스트. 사진캡처= 선키스트 홈페이지
세계적인 협동조합 연합체인 미국 선키스트 홍보물. 사진캡처= 선키스트 홈페이지

협동조합 효시 '로체데일' 선구자는 28명

반면 협동조합의 효시인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은 28명으로 시작되었다. 이름 그대로 소수의 선구자들이 만들었다.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설립 후 30년 뒤에는 조합원 수 1천 명의 협동조합이 되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에 따르면 현재 협동조합에 가입한 총 조합원은 7억 명 수준으로 미국에만 2억 5천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3만 개의 조합에 가입해 있다. 독일의 경우 2천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7천2백 개 조합에 가입해 있다. 일본의 경우도 8천만 명의 조합원이 3만6천 개의 조합에 가입해 있다.

조합당 조합원 수는 평균 미국은 8300명, 독일은 2700명, 일본은 2200명 수준이다.

주식회사는 주주 숫자가 수십만 명을 넘어서도 다수지분을 가진 주요 주주들 간의 의사에 의해 조직의사결정이 가능하다. 경영참여 목적으로 주식을 보유한 주주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1인 1표에 따라 조합원 모두가 경영에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조직되어 있다. 조합원이 모두 모이는 총회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조합원 수가 사업의 적정 범위를 벗어나 지나치게 많을 때에는 조직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다.

'공동행동'으로 무임승차자 없어야

협동조합은 원가경영방식을 채택한다. 원가경영의 성공조건은 조합원의 공동행동(Group action)이다. 즉 이익 배분과 손실 분담 방식에 대한 조합원들의 합의와 조합원 각자의 실제적 행동이다. 그런데 사공이 너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발언자와 적정한 동조자가 있어야 한다.

공동행동은 조합원 중에 무임승차자(free rider) 없이 모두가 함께해야 성공한다. 참여 없이 이익만 취하려는 자에 대한 협동조합 내 압력이 있어야 한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을 거쳐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공동행동의 방식은 협동조합 원칙으로 정립되었다. 조직 구성원이 너무 많아서는 공동행동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공동행동의 적정 수는 여러 요인에 좌우된다. 두 가지만 살펴보겠다. 교통수단 같은 물리적 소집 가능성, 공동작업장 접근성이 첫 번째다. 과거 도보 위주의 생활권일 때는 마을단위로 조직되어 몇 백 명 내외가 적정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보급된 이후 몇 천 명 수준으로 적정수가 증가했다. 다만 이 경우도 몇 백 명 내외의 소규모 조직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즉 협동조합 안에 밴드 혹은 꼼빠니가 많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의사소통수단, 즉 미디어다. 과거에는 강당에 모두 모이거나 회보발행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공동행동 참여인원 규모가 크기 어려운 미디어환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쉽게 말해 한 공간에서 단체로 말할 수 있는 미디어가 있다면 수천 명도 무리 없이 공동행동 방향에 대한 발언을 하고, 실천을 서로 모니터링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SNS는 협동조합 공동행동의 작동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 미디어이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부 들어 국내에 협동조합 설립이 크게 늘었다. 유치원 갈등사태가 빚어지면서 유치원 분야에서도 부모들의 협동조합형 유치원이 생겨났다. 사진= 연합뉴스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부 들어 국내에 협동조합 설립이 크게 늘었다. 유치원 갈등사태가 빚어지면서 유치원 분야에서도 부모들의 협동조합형 유치원이 생겨났다. 사진= 연합뉴스

협동조합도 덩치키우기? 장단점 있어

협동조합도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규모로 경쟁해야 할 경우가 있다. 협동조합은 대체로 자본금이 적고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위한 자금이 부족하다. 이때 협동조합들은 협동조합 간의 협동, 즉 연합체를 구성하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고 한다.

우리가 아는 sunkist는 협동조합 연합체이다. 개별 협동조합의 덩치를 키우는 것은 물리적 조건인 접근성 극복과 공동행동의 출발점인 의사형성에 어려움이 크다.

주식회사는 덩치를 키우기 위해 합병을 많이 한다. 협동조합도 경우에 따라 합병을 통한 덩치 키우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우선적으로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먼저 시도하고 자연스럽게 합병이 필요하다고 조합원들이 의견 일치를 볼 때 이루어지는 합병이라야 도움이 된다.

합병에는 당연히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규모의 경제 달성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조직의 결합으로 인한 조직구성원 간 갈등 해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은 단점이다. 많은 주식회사가 합병 후 통합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협동조합은 특히 조합원간의 공동행동이 중요한 조직으로 정부 주도의 하향식 합병은 통합 작업에 많은 시간이 들 것이 예상되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의 세계에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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