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변화를 상상이 아닌 몸으로 느낀 오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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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변화를 상상이 아닌 몸으로 느낀 오웬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20.03.22 10:0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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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체감 아닌 '수확체증의 법칙' 꿈꾼 오웬
'아마존'이 대표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 수확체증이 일어나고 있어
협동조합도 네트워크 효과에 주목해 온라인플랫폼화 이뤄가야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자신의 사상을 일컬어 최초로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로버트 오웬이다. 후일 생시몽, 푸리에 등과 함께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도매금으로 불리워져 오웬은 현실과 아주 떨어진 주장을 한 사람으로 프레이밍(framing) 되어져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오웬은 현장의 변화를 몸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사상가이기 이전에 경영자였다. 오웬의 진면목을 알아보자.

1771년 생인 로버트 오웬은 산업혁명의 태동기에 태어나 젊은 나이에 성공한 면화산업계의 경영자였다. 당대 양모산업과 면화산업은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중심이었다. 1767년 목수였던 제임스 하그리브스가 한 번에 8개의 실을 자아낼 수 있는 제니 방적기(jenny spinner)를 발명하여 생산성이 무려 8배나 높아졌다.

1768년 리처드 아크라이트는 수차를 이용하는 수력 방적기(water frame)를 발명하여 사람의 힘 없이도 작동하는 방적기가 등장하였다. 새뮤얼 크롬프턴은 이 제니 방적기와 수력 방적기를 합쳤다는 잡종이라는 뜻을 지닌 뮬(mule) 방적기를 개발하였다.

오웬, 근로자 구매력을 증가시키다

젊은 오웬이 운영을 책임진 뉴 레너크 공장은 원래 리처드 아크라이트가 합작으로 세운 공장이었다. 뉴레너크 공장장으로서 오웬은 노동자들을 위해 공동구매를 통한 생필품 저가 공급을 시작했다. 유아교육을 위한 건물 건립을 추진하자 투자자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극복하였다.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면서도 공장의 수익이 증가하여 유럽 전역에서 왕족, 사업가, 사상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1815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패배로 끝난 전쟁은 승전국 영국에도 큰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이라는 대량 수요처가 없어지자 공장과 농장에는 재고와 곡물로 가득 차고 제대군인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자가 됨으로써 사회불안이 극히 높아졌다. 1816년 영국 지도층들이 조직한 위원회에서 오웬은 실제 사업을 하는 경영자로서 의견을 요구받고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한 부분만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 영국의 한 공장에서 쓰고 있는 기계는 작동하는 데에 필요한 인원이 2천500명도 되지 않지만, 그 생산량은 50년 전만 하더라도 스코틀랜드 전 인구가 동원되어야 나왔을 어마어마한 양이다!...이렇게 우리 나라는 전쟁이 끝났을 때 마치 그 인구가 15배나 20배가 늘어난 것처럼 작동하는 생산량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주로 지난 25년간에 창출된 것이다”

오웬은 자신이 경험한 면화산업을 기준으로 삼아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 산업 전체의 생산력이 15에서 20배까지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오웬은 이런 생산력 증가가 기계의 힘이 인간의 육체노동보다 훨씬 싸기에 인간의 육체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고 육체노동자의 임금이 급격한 하락을 맞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영국 사회에 전쟁 중단(전쟁물자 수요 감소)과 육체 노동자의 임금 하락이 노동자의 구매력 축소를 가져왔고, 전쟁물자 수요 감소와 구매력의 축소는 실업자와 빈민의 증가를 불러오는 악순환고리가 형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경영자였기에 수요의 감소는 재고증가와 매출감소로 이어지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재정을 통한 빈민구제 방식을 제시하다

1817년 오웬은 당대의 실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의회에 빈민구제계획을 보고서로 제출한다. 오웬의 계획은 정부가 재정을 통해 빈민들에게 일정한 자금을 빌려주고 공동의 주거와 농지를 가진 공동체를 세운 뒤 이 공동체가 당대의 진보하는 화학기술을  활용하여 농업과 소규모 제조업을 한다면 빈민들의 생산성이 높아져 장기적으로는 빌린 자금도 갚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웬은 20대 초반이던 맨체스터 시절 가입한 지식인 모임에서 원자론으로 유명한 화학자 존 돌턴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돌턴은 화학변화가 일어날 때 물질의 무게변화에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원자론으로 설명하고 수소의 원자량을 1로 정하여 화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이 시기 오웬은 화학의 발견들을 농업 분야에 적용하면 농업생산성 향상을 통해 자금 회수도 가능하다고 깊게 믿었다고 한다. 오웬은 본인의 경험에 비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매우 중요한 생산요소로서 고려한 것이다.

빈민에게 시혜성의 구호 자금을 더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차원에서 다뤄졌던 당대의 담론 수준에서, 재정으로 농촌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자는 오웬의 계획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식인 중에서 오웬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맬서스와 리카르도의 주장을 주요한 근거로 들었다.

맬서스는 수학에 기반한 경제학자로서 기술이 고정되었다고 가정하고 인구와 농업생산에 대한 모델을 제시했다. 증권업을 하다 경제학을 공부한 리카르도는 제조업 현장의 생산양식 변화보다는 투자자본의 이익률을 집중 탐구했다.

맬서스의 《인구의 원리에 대한 에세이》는 1798년 출판되어 1817년 당시 이미 많은 지식인이 맬서스의 수학적 모델에 기반한 장기예측에 대해 수긍을 하고 있었다. 맬서스는 벤저민 프랭클린으로부터 미국 농지와 인구에 관한 통계자료를 받아서 인간과 식량의 관계를 분석한 뒤, 가까운 미래에 식량 생산 증가가 인구 증가를 못 따라갈 것이므로 인구를 제한하는 정책(빈민을 구제하면 인구가 더 늘어나니 빈민을 구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맬서스는 리카르도를 만나 비료 투입을 늘리더라도 농업 생산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리카르도는 이것을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s)의 법칙'이라 명하고, 농업뿐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 적용되는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1817년 펴냈다.

이 주장은 당대 지식인 사회에 엄청난 메아리를 불러 일으켰다. 지금도 경제학원론 교과서에서 수확체감의 법칙은 그래프를 통해 너무나 자명한 법칙으로 설명된다.

오웬은 본인의 면화산업의 비약적 발전 경험이 농업 등에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화학 등의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설립, 재정 투입을 통한 공동체의 구매 활성화 계획을 리카르도를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얻으려 했지만 다수의 지식인들은 맬서스와 리카르도의 주장에 동조하고 오웬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응답도 보내지 않았다.

맬서스와 리카르도는 공급 측면을 중시하였지만, 사업가였던 오웬은 진짜 문제는 수요, 즉 구매자의 부족이 당대 영국 현실의 문제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오웬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한 세기가 지난 대공황기에 실업과 불황의 원인으로 유효수요의 부족을 지목하고 정부의 재정 투입을 주장한 케인즈가 나왔을 때에야 귀를 기울였다. 시대를 앞선 오웬의 외침은 당대에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

맬서스의 인구에 대한 장기 예측은 100년 후 질소 비료의 등장과 20세기 화학 공업의 발전으로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농업 스타트업 ‘플렌티(Plenty)’가 최근 로스앤젤레스(LA)와 중국 등에 수직농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013년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농작물을 월마트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미국 실리콘밸리 농업 스타트업 플렌티의 ‘수직농장’.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구글의 에릭 슈미트 전 회장 등이 2억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사진 =연합뉴스
대표적으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농업 스타트업 ‘플렌티(Plenty)’가 최근 로스앤젤레스(LA)와 중국 등에 수직농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013년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농작물을 월마트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미국 실리콘밸리 농업 스타트업 플렌티의 ‘수직농장’.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구글의 에릭 슈미트 전 회장 등이 2억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사진 =연합뉴스

오웬의 공상, 인터넷 시대에 빛을 발하다

전세계 선진국가가 실업문제로 몸살을 앓는 지금 실업의 근본 원인은 수요, 즉 구매자의 부족 때문이라는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므로 기술발전을 적극 이용해 구매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오웬의 계획은 여전히 주목받아야 한다. 특히 21세기 기술 발전 가속의 시대에 다시 들여다봐야할 이유다. 오웬의 계획이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말로 인해 크게 오해받고 있다.

수확체감의 법칙은 농업을 포함한 전통산업에서 20세기 내내 유효했다. 20세기말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등장했다.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이다.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승자독식이 가능한 근본 동력은 네트워크 효과이다.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네트워크의 가치는 커지고 운영 비용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마존이 대표적인 회사이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비즈니스는 한편 승자독식이 적용된다.

4차산업혁명이나 디지털 전환이라고 부르는 오프라인의 온라인화 현상은 점점 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분야가 늘어남을 의미한다. 기술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한 오웬의 계획이 실제 작동할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도 네트워크 효과를 키워야 한다

앞으로 협동조합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협동조합 간의 협동에 대해 네트워크 효과와 관련지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기존의 협동조합 간 협동은 대부분 상향식의 수직적 결합인 연합회 결성 혹은 수평적 협의회 구성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협동조합들은 그물망 곳곳으로 사방팔방으로 협동해야 할 것이다. 연합회에 가입하고 연합회에서 벌이는 사업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는 네트워크 효과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공동구매든 공동판매든 업종을 불문하고 넓게 연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협동조합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공통의 온라인플랫폼이 꼭 필요하다.

이제 협동조합의 거대한 스크럼이 온라인에서 탄생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하겠다. 지난 칼럼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승자독식(독점)에 대항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시장 참여자야말로 협동조합의 현대적 의미이다.

●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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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오웬 2020-03-23 17:56:48
여러 개의 글을 읽으면서, 서양사에 대한 정보도 배우고 갑니다.

kikick86 2020-03-23 16:57:19
- 당대의 실물경제 경험과 그에 따라 형성된 사회경제정책에 대한 오웬의 발자취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현안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이라는 아젠다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있어 현재 정치가들이 많이들 참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 다만, 표현 중에 '구매자의 확대' 라는 표현보다는 '구매력의 증대'라고 표현하면 더 잘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정미 2020-03-23 16:54:02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