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부탁 받은 자와 방향 지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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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부탁 받은 자와 방향 지시자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19.07.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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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자 대변 이사, 원래는 조직 방향 지시하는 역할
집행부인 거버너도 출자자들 총회에서 결정
센트럴생협 수탁인회, 출자자 보다 이해관계자들 대변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시애틀에 두번째 왔다. 이번에는 외곽에 숙소를 잡았지만 첫번째 왔을 때는 시내와 가까운 언덕인 캐피톨 힐에 숙소를 잡았었다. 캐피톨 힐에는 시애틀의 생활협동조합인 센트럴콥(www.centralcoop.coop)이 운영하는 식료품가게가 있어 거기서 이것저것 사곤 했다.

센트럴콥은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8년에 인근 타코마에 새로운 점포도 열었다.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협동조합이다.

센트럴콥의 지배구조가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Board of trustee라는 조직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사회(Board of directors)가 없었다. 이사회가 없는 조직? 필자의 눈에는 파격적이었다.

이사회 조직 없는 협동조합, 수탁인회 눈길

규모있는 조직 중에 이사회가 없는 경우가 드문 한국인에게 낯설었다. 이사회는 2명 이상의 이사들의 모임(회의체)으로, 우리 협동조합기본법에도 이사회가 주요 경영에 관한 사항을 의결한다. 이사회가 없다 보니 한국 협동조합에서 볼 수 있는 이사장(조합장)도 없다.

센트럴콥은 수탁인회(Board of trustee)의 회의를 주관하는 의장(chairman)을 두고, 경영을 책임지는 집행부(CEO)은 별도로 두고 있었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이사회와 센트럴콥의 수탁인회(Board of trustee)를 비교해 보면, 한국 협동조합 이사회의 특징이 잘 드러날 것 같다.

먼저 이사라는 말의 뜻과 유래를 알아보자. 영어 원어민이 아닌 우리는 이사(director)와 방향(direction)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지 못한다. 단순히 말하면, 방향을 지시하는 사람이 이사다.

이사라는 말이 조직체에서 쓰인 유래는 17세기 영국이다. 동인도회사에서 경영을 담당하는 이는 governor와 director가 있었다. 이사는 director의 번역어이다. 근대화를 추구하던 일본이 동인도회사를 모방한 것이 동양척식회사이다.

일본인들은 director라는 말을 번역하며 기업의 관리자에 대해서는 '이사(理事, 리지라고 읽는다)'라는 말과  '취체역(取締役, 토리시마리야쿠라고 읽는다)'란 말을 사용했으나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후자가 널리 통용된다. 우리 1930년대 협동조합조직도에도 취체역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사회(a board of directors)는 일본에서는 중역회(重役会), 이사회(理事会), 취체역회(取締役会)라고 번역해서 사용된다. 현재 이사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민법, 회사법, 협동조합관련법과 대만의 합작사법에서 볼 수 있다.

영국 협동조합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도 28인의 출자자(shareholder)가 선출한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조합을 경영했다. 영국의 경우 엘리자베스1세는 초창기 동인도회사에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해 출자자들이 선출한 이사들이 열 개의 위원회를 가진 이사회(court of directors)를 구성해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고 출자자들이 총회에서 관리자(governor)를 선출하는 구조를 선보였다. 동인도회사의 조직구조는 영국의 많은 비즈니스조직의 모범이 되었기에 로치데일선구자조합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다.

시애틀의 생활협동조합인 센트럴콥은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진= 센트럴콥 홈페이지
시애틀의 생활협동조합인 센트럴콥은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진= 센트럴콥 홈페이지

현재 시애틀 중앙생협에는 이사는 없고 수탁인(trustee)가 있다. 수탁인은 위임계약에 의해 부탁받아 일하는 사람이다. 위탁인과 수탁인 서로간의 신뢰에 기반해 경영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수락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무료봉사다.

센트럴생협의 수탁인은 소비자대표, 직원대표, 경영진대표, 공동체대표 등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이 선출한 사람들이다. 이사가 ‘출자자’들의 이익과 입장을 대표하는 경우라면 수탁인은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경우이다.

최초의 협동조합이라 할 로치데일부터 우리나라 협동조합들까지 우리가 흔히 아는 협동조합들이 기본적으로 출자자들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했다면 시애틀 중앙생협은 생협과 관계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낼 것을 부탁받고 선출된 수탁인회를 구성한 것이다.

수탁인회라는 조직은 생협이 출자자들의 이익과 목소리에만 집중해서는 조직의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경영과 지속적인 성장이 어려운 현대의 사정과 시대흐름을 잘 반영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의 이사회도 사외이사(outside director)라는 이름으로 주로 명망이 있는 비조합원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하고 있으나, 이는 한국적인 맥락이 따로 있다.

출자자 외에 이해관계자 대변하는 조직도 고려해야 

한국에서는 과거부터 이사 중 한명이 이사장(조합장)이나 대표이사라는 이름으로 경영을 직접 실행하고 이사회에도 참석해, 안건의 신속한 집행을 위해 이사장은 경영에 관한 주요 안건에 대한 다양한 의견청취보다는 집행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이사들에게 설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사회전반의 선진국 추격형 속도 경영에 협동조합도 동조한 것으로 지난 시대에는 나름 의미있는 회의 진행이었다. 이런 이사장의 독주를 제3자적 시각에서 조절하기 위해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것이 사외이사이다. 조합원이 아니니 이사장의 독주에 따른 위험요인을 낮춰 주리라는 기대가 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영구적 조직체로서 모습을 갖추자 앞서 보았듯이 경영을 직접 실행하는 관리자(governor)를 이사가 겸직하기 보다는 별도로 이사 아닌 관리자를 두었다. 이 관리자는 후에 정부에서 임면되었기에 총독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집행을 책임지는 사람이 반드시 이사회 구성원이 되어 빠른 의사결정을 독촉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물론 영국 동인도회사도 나중에 인도식민지 관리라는 목적을 위해 총독이 이사가 되어 이사회에 참석했다.

현재 시애틀 중앙생협에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수탁인회의 구성원이 아니다. 경영진 대표인 수탁인 한명이 참가한다. 아무래도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직접 회의에 참가하게 되면 설립목적이나 이해관계자 목소리에 귀기울기이기 보다는, 경영성과가 눈에 바로 보이는 손익중심의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려 할 것이라는 우려가 담겨있지 않나 생각한다.

협동조합이 조기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제도화한 한국식 이사회가 나름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우리 협동조합도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속에서 활동하는 비영리의 지역공동체에 친화적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이사회 구성원을 보다 다양화하고 경영진의 이사회내에서의 역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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