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한국에서 컨틴전시 플랜은 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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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한국에서 컨틴전시 플랜은 K-Pop?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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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지난 며칠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을 대하는 실제 태도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대중문화계를 국면전환의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주최 측 주장처럼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새만금 잼버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모두 예상된 문제가 터졌다는 게 더 문제였다. 결국, 조직위원회 구성 주체이기도 한 한국 정부가 내민 해결책은 K-Pop 콘서트였다. 

망한 잼버리 응급처방으로 소환된 K-Pop

무더위와 불결한 위생, 무엇보다 기반 시설의 부족으로 새만금 잼버리 조기 철수에 대한 의견이 무르익고 있을 때 K-Pop 콘서트가 잼버리 참가자들의 관심을 되돌리는 카드로 등장했다. 

우선, 6일에 예정되었던 K-Pop 콘서트가 취소되었다. 그런 다음 11일(금) 잼버리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폐막식과 함께 새로운 콘서트가 계획되었다. 잼버리 참가자들을 폐막까지 새만금에 잡아두려고 K-Pop 콘서트를 미끼로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6일 콘서트의 취소는 공연이 예정되었던 당일에 결정됐다. 그러니 출연진에게 통보도 당일에 이뤄졌다. 무더위 등 안전상 이유라고 했지만 콘서트를 기대하던 잼버리 참가자들, 무엇보다 출연진과 스태프, 그리고 소속사 등 콘서트 관계자들에게는 씁쓸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이돌 그룹은 행사가 잡히면 그 일정에 맞춰 계획을 세운다. 무대 콘셉트에 맞춰 퍼포먼스를 다듬고 의상도 준비한다. 지방이라면 행사 전후 일정을 고려해 이동 계획까지 세워야 한다. 무대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신인 그룹들은 어쩌면 이번 공연에 사활을 걸고 준비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당일에 취소된 것. 

콘서트를 취소한 조직위는 새로운 일정과 장소를 결정하고 통보했다. 결과적으로 기존 콘서트를 취소하고 폐막 일정에 맞춘 새로운 콘서트를 계획한 건 잼버리 참가자들의 조기 퇴소를 막기 위한 수단, 즉 볼모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아이돌이 ‘5분대기조’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업계 관행을 모르는 관료들의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함께 흘러나왔다. 하지만 모두 익명의 외침이었다.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해서였다. 

장소 결정에 대한 비판도 불거졌다. 사실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두 축구팀은 이날 경기를 위해 전의를 다져왔을 것이고 양 팀 서포터들 또한 자기 팀을 응원하기 위해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추후 계획도 없이 그냥 연기시켜버렸다.

그런데, 돌발변수가 생겼다. 태풍이 한반도로 오고 있었다. 게다가 새만금 잼버리 현장이 태풍 영향권에 들 것으로 예상됐다. 

악재가 분명했지만,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열악한 현장에서 철수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았다. 잼버리를 한국의 관광지와 문화를 소개하는 장으로 만들라는 최고 권력자의 엄중한 지시를 수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결국, K-Pop 콘서트는 전주에서의 계획을 접고 11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축구계와 축구 팬들로부터 잔디 훼손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나왔지만,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K-Pop 콘서트를 통해 잼버리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군인신분 BTS멤버의 차출설 해프닝

K-Pop 콘서트 장소가 잼버리 현장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다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바뀌면서 제작진과 연출진 또한 바뀌었다.

원래 6일 공연을 위해 KBS 예능센터 산하 대형 이벤트 기획단이 제작진으로 참여하고 있었지만, 일정이 바뀌며 기존 제작진이 빠지고 대신 KBS2 ‘뮤직뱅크’ 연출진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출연진 섭외에 관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KBS2 '뮤직뱅크'를 제작하고 있기에 해당 주차 출연 예정 뮤지션들이 대거 합류했지만, 누군가의 성에는 차지 않았나 보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하지만 11일 공연 라인업에 없는 아이돌 팀들을 섭외하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섭외 주체는 KBS였지만 그 누구도 상대가 방송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 뒤에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최초 라인업에 없던 아이돌 팀들이 콘서트에 합류하게 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자발적으로’ 결정했다는 부연 설명이 그 기사들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섭외 과정에서 BTS에 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미 망한 새만금 잼버리를 구원할 이는 오직 ‘B.T.S’뿐이라는 취지에서 나온 소문이었다.

심지어 어느 국회의원은 국방부가 나서 군인 신분인 BTS 멤버들을 콘서트 현장에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는 BTS가, 아니 K-Pop 뮤지션들이 위에서 부르면 그 어떤 사정이 있어도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걸까.

논란이 분분했지만, BTS는 콘서트에 출연하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다. 대신 소속사인 하이브 측에서 ‘BTS 포토카드’ 4만 5천 매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자발적’ 결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만 누군가가 나서 BTS를 섭외하려 했다는, 하지만 여의찮아 8억원 상당의 BTS 굿즈로 대체하게 되었다는 행간의 의미가 읽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새만금 잼버리 개막식. 사진제공=세계스카우트연맹

컨틴전시 플랜은 일방적인 동원령(?)

지난 며칠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 그러니까 한국 정부는 K-Pop 콘서트에 사활을 건 모습처럼 보였다. 잼버리와 상관없던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공공기관에서 1000 명을 차출해 잼버리 참가자들을 인솔하게 하거나 공연장에 배치할 계획을 세운 것을 보면 그렇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으로 내려보낸 공문을 기획재정부에서 작성하기까지 했다. 정부 예산의 막대한 권한을 가진 기재부로부터 공문을 받은 공공기관은 어떤 분위기였을까.

게다가 정부는 콘서트가 예정된 11일 오후 2시부터 상암동 일대의 교통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지나는 대중교통 또한 우회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모든 계획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시민의 협조를 구한다고 했지만 상암동의 주민들과 직장인들에 대한 배려는 문장은 커녕 그 어느 행간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한국 정부가 총동원령을 내린 듯한, 그러니까 ‘새만금 참사’라는 세계적 망신살을 만회하기 위해서 국민이 양보하고 동참하는 게 당연하다는 정부 입장이 보이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K-Pop 뮤지션들은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고. 

이 모든 게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대한민국에서 지난 며칠간 벌어진 일들이었다. ‘자발적’이란 표현을 관련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왠지 역설적으로 읽히는 건 왜일까.

새만금 잼버리는 한국스카우트연맹이 주관했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정부 주관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국제적 망신살을 만회하기 위해 K-Pop이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으로, 즉 만일의 사태에 대처하는 비상계획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마치 주사 맞고 우는 아이를 사탕으로 유혹하듯 K-Pop 뮤지션들을 '사탕'으로 활용해 잼버리 대원을 달래겠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가. 그렇게라도 해서 ‘새만금 참사’를 K-Pop의 추억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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