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김태호·나영석...예능의 브랜드화 이끄는 스타 PD
상태바
[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김태호·나영석...예능의 브랜드화 이끄는 스타 PD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22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지상파의 영향력에 힘입어 발전한 예능이 이제 스타 PD의 우산 아래에서 브랜드가 되고 있다. 더는 지상파에 매여 있지 않고 케이블이나 웹 채널로 이적하거나 아예 제작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김태호 PD의 TEO

스타 PD의 콘텐츠 제작사 설립은 김태호 PD가 신호탄을 날렸다. 2021년 말 김태호 PD는 MBC를 퇴사한 후 콘텐츠 제작사 테오(TEO)를 설립했다. 

그의 애칭인 TEO를 회사 이름으로 한 김태호 PD는 2022년 이효리를 내세운 ‘서울체크인’을 티빙(Tving)을 통해, 그 스핀오프 격인 ‘캐나다체크인’을 tvN을 통해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김태호식 콘텐츠’를 각인시켰다.

방송국에 속해 있다는 장점은 편성이 어느 정도 보장돼 있다는 점이다. 반면 방송사의 입김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그런 면에서 독립 제작사는 콘텐츠의 차별성으로 편성을 쟁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 패기의 제작사와 화제성 높은 콘텐츠가 필요한 신생 케이블이 만난 게 지난 3월 TEO에서 제작하고 ENA에서 방영한 ‘지구마불 세계여행’이다.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연예인이 아닌 유명 여행 유튜버들이 출연하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의 여행 콘텐츠였다. 비록 폭발적인 화제성은 없었지만, 여행 예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는 얻었다. 덕분에 출연진은 여러 방송에서 앞다퉈 모시고 있고 광고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셀럽이 되었다.

김태호 PD의 예능 세계가 극대화된 게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댄스가수 유랑단’이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등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여자 댄스가수의 계보를 한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연습 과정의 고난과 극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편집은 매회 기시감이 들게 하지만 공연 장면만큼은 시청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제작사 TEO에 김태호 PD만 있는 건 아니다. tvN 출신 정종연 PD와 이태경 PD도 합류했다. tvN에서 ‘놀라운 토요일’ 연출을 맡았던 이태경 PD는 지난 3월 ENA에서 ‘혜미리예채파’를 선보였다. 

방송 초기에는 나영석 PD의 ‘뿅뿅 지구오락실’ 아류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차츰 출연진들의 개성이 살아나고 따뜻한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좋은 평가를 얻으며 시즌 1을 마쳤다. 덕분에 팬들은 시즌 2를 기다리고 있다.

김태호 PD 연출의 '댄스가수유랑단'

제작사에서 뭉친 나영석 사단

나영석 PD와 그 동료들은 나영석 사단으로 불리고 있다. 가히 그럴 만한 게 KBS 시절부터 한 팀에서 뭉쳐 있다가 퇴사 후 같은 방송사로 이적하더니 이제는 같은 제작사에서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나영석 PD가 있고, 선배 PD 이명한과 왕작가 이우정이 있다. 그리고 드리마 슬기로운 시리즈의 신원호 PD 등 후배 PD들과 막내 작가 김대주 등 작가들도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KBS 퇴직 후 tvN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2023년 초 퇴사 후 콘텐츠 제작사인 ‘에그이즈커밍’으로 함께 옮겼다. 에그이즈커밍은 이우정 작가가 설립했지만 사실 CJ ENM이 대주주로 있는 CJ 산하 레이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CJ의 우산 아래에서 제작을 전담하는 콘텐츠 전문 회사라 할 수 있다.

회사 이름 자체가 이 회사의 개성을 보여준다. 나영석 PD가 (웹툰 작가 이말년) 침착맨의 채널에 출연해 회사 이름의 뜻을 알려주었는데 이우정 작가와 나영석 PD 등이 모두 달걀을 좋아해 (계란 장수의 장사 멘트인) ‘계란이 왔어요’라는 의미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에그이즈커밍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채널십오야’에 이 회사의 구조를 엿 볼 수 있는 영상이 있다. 약 1개월 전에 올린 에그이즈커밍 체육대회 영상을 보면 지구오락실팀, 신규 프로젝트팀, 서진이네팀, 드라마&제작지원팀으로 나뉘어 있다. 

체육대회 영상을 보다 보면 방영 중이거나 방영 예정인 프로그램 아니더라도 신규 예능과 드라마가 다수 준비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영상은 조회 수가 270만 회를 넘겼고 댓글은 3600개를 넘겼다. 나와 상관없는 회사의 체육대회 영상일 뿐인데 재미있게 봤다는 댓글이 많다.

그전에도 채널십오야를 통해 올라온 영상들이 많았지만 주로 기존 방송을 요약한 광고성 콘텐츠가 대부분이었고 대중의 호응도 평범했다. 그런데 체육대회를 전후해서 올라온 영상들은 그 반응부터 달랐다. 나영석류 콘텐츠에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일까?

나영석 유튜브 채널 '채널십오야'

사실 채널십오야는 구독자 562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채널 자체에서는 큰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침착맨 채널에 출연해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침착맨이 내놓은 해결책은 뭐였을까? TV 방송물 찍듯이 물량 공세를 펼치지 말고 친구와 이야기하듯 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는 콘텐츠를 되도록 많이 만들라는 취지로 조언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나영석 PD와 김대주 작가의 라이브 방송이었다. 그냥 둘이 카메라 앞에 앉아 1박2일 시절부터 삼시세끼 시리즈 등을 만들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토크에 대중들이 열광했다. 추억을 소환하기도 했지만, 예능 제작 현장의 뒷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은 게 대중들에게 통했다.

좋은 반응에 힘입어 라이브 방송분에 자막을 달아 요약 편집한 영상도 인기를 끌었다. 또한 나영석 PD의 후배들은 물론, 이서진, 김종민 등 그의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들까지 나와서 대중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이 유튜브 영상들의 미덕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기획자와 제작자로서 나영석 PD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나영석 PD는 유튜브 영상의 인기에서 얻은 영감을 새로운 예능에 접목할 게 분명하다.

한편, 에그이즈커밍 체육대회 영상을 보면 TEO의 김태호 PD가 축하 화환을 보내왔고, 이에 대해 나영석 PD가 감사함을 표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PD 자체가 브랜드인 두 회사는 콘텐츠 제작사로서 경쟁 관계이지만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 보완 관계임을 잘 아는 듯하다.

예능의 브랜드화는 스타일의 안정을 의미하지만, 고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대중들은 항상 새로운 맛을 찾는 변덕스러운 입맛을 가졌음을 팬덤이 굳건한 스타 PD라도 알아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