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보험사기..."처벌 수준은 턱없이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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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보험사기..."처벌 수준은 턱없이 낮아"
  • 박준호 기자
  • 승인 2024.01.19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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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계약자·의사까지 엮인 단체 범죄로 진화
최근 15년 모든 금감원장, "보험사기 근절할 것"
연간 보험사기 규모 1조원·10만명 돌파
보험사기 방지 특별법은 국회에서 7년째 그대로
보험사기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보험사기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금융당국이 십년 넘게 보험사기를 뿌리뽑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사기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조 단위로 올라섰고 사기혐의자는 10만명을 넘었다. 범죄 방식이 날로 고도화·지능화·조직화하고 있어서다.

과거 단독범행에 그쳤던 사기 행태는 이제는 보험설계사와 보험계약자, 병원 관계자까지 엮인 단체 범죄로 확대했다. 이들을 중개하는 브로커까지 생겨난 판국이다.

보험사기 적발시 처벌 강화를 담은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은 개정안은 지난 8일 또 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7년 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보험사기에 연루된 보험설계사의 징계를 강화해줄 것을 보험사에 요청했다.

지난 17일 금융감독원은 36개 보험사 보험사기특별조사관(SIU) 담당 임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보험사기 대응 계획과 중점 추진과제 발표, 보험업계와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금감원은 '공·민영 공동조사 협의회'를 정례화하고 수사협의회 개최로 수사당국의 보험범죄 수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김준환 금감원 민생금융담당 부원장보는 "보험업계가 협력해 조직화·대형화하고 있는 보험사기에 대응, 내부통제 강화와 소비자 보호에 힘써달라"며 "보험사기에 연루된 설계사 징계를 강화하고 징계 정보를 업계가 공유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도록 내부통제 기준과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민생 침해 보험사기 및 불법 개설 요양기관 범죄 척결을 위한 금융감독원-경찰청-국민건강보험공단 간 업무협약식'에서 이복현 금감원장, 윤희근 경찰청장,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1.11
지난 11일 금융감독원·경찰청·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험사기, 요양기관 범죄 방지 업무협약식'에서 (왼쪽부터)이복현 금감원장, 윤희근 경찰청장,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감원은 지난 2001년부터 보험사기 조사 전담기구를 설립하고 2004년부터 보험사기 감시시스템을 가동했다. 이듬해부터는 각 보험사에 특별조사팀을 설치해 보험사기 단속에 대응했다.

지난 15년 모든 정부의 금감원장들은 보험사기를 근절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김종창·권혁세 원장은 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이 공동으로 나서서 보험사기에 적극 대처할 것을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진웅섭·최흥식 원장은 보험사기 근절을 위한 기획조사와 가입·유지·적발 등 3중 레이더망을 가동했다.

문재인 정부의 윤석헌·정은보 원장은 보험사기 조사에 적극 개입해 단속, 사기에 취약한 상품을 재점검하고 과잉진료도 근절하겠다고 했다.

검사출신인 이복현 현 원장은 취임 이후부터 보험사기 뿌리 뽑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취임 첫달인 지난 2022년 6월에는 대형 보험사의 전·현직 보험설계사들이 직접 보험 사기에 가담한 사실을 적발해 과태료와 영업 정지 등 대규모 제재를 내렸다.

같은 해 9월에는 홀인원 보험금을 부당하게 수령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험사기 혐의자 168명을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보험업계와 협력해 보험사기에 가담한 의사를 구속 수사하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경찰청, 건강보험공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보험사기와 요양기관 범죄에 맞서기로 했다.

이들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보험사기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08년 2549억원, 4만1019명이었던 보험사기 적발액수와 적발인원은 2016~2018년 7000억원, 8만명대로 올라섰고 2019년부터 8000억원, 9만명대를 유지했다. 2021년에는 9434억원, 9만7629명이었던 것이 이듬해 1조818억원, 10만2679명을 기록하며 앞자리를 갈아치웠다.

보험사기 적발현황. 그래픽=연합뉴스

사기 유형과 범행수법은 갈수록 지능화, 조직화하고 있다. 과거 단독범행 혹은 한두명이 연루됐던 보험사기는 이제 보험설계사, 계약자, 병원, 브로커까지 엮인 단체범죄로 진화했다.

지난해 11월 부산경찰청이 적발한 100억원대 보험사기에서는 병원 사무장 1명과 의사 2명을 포함한 469명이 검거됐다. 피의자들은 보험사기 전문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면서 통원·입원치료 횟수 조작, 보험사별 상품 중복 가입 등으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고 총 466명이 50억원을 수령했다. 병원은 국민건강관리공단에게서 요양급여비 50억원을 편취했다.

보험사기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지난 2016년 제정·시행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보험사기 처벌 수위를 높이고 편취보험금을 환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들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좀처럼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20년 6월부터 발의된 관련 개정안 17건은 번번이 좌절됐다.

지난 8일에도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보험사 임직원과 의료진 등을 가중처벌하는 것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서다. 보험사기 업권 관계자가 일반 사기죄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게 타당한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보험사기 처벌 수준이 일반사기 대비 턱없이 낮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1월 보험연구원의 백영화·손민숙 연구원이 법원행정처 자료를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기 사건 중 유기징역의 실형이 선고되는 비중은 일반 사기죄 58.4%, 보험사기죄 20.2%였다. 이 중 일반사기의 28%가 1년 미만의 형량을 받았지만 보험사기는 그 비율이 47%였다. 3년 이상의 형량은 일반사기 17%, 보험사기 6%에 불과했다.

반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비중은 일반 사기죄 8.7%, 보험사기죄 44.3%였다.

백영화·손민숙 연구원은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보험사기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며 "수사기관의 수사기준과 법원의 양형기준을 별도로 정립, 엄중처벌 원칙을 세워놓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 뿐 아니라 공영보험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는 보험료 인상을 유발해 다수의 선량한 보험계약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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