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민 칼럼] 안전불감증 새만금 잼버리… 예고된 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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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민 칼럼] 안전불감증 새만금 잼버리… 예고된 망신
  • 윤경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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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민 칼럼니스트]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잼버리 대회가 혼돈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개영식 첫날부터 폭염에 쓰러지는 환자가 발생하더니 사흘새 수백 명의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 간척지에 4만여 명이 야영을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폭우 후에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기면서 벌레가 창궐, 벌레 물림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화장실은 더럽고 부족하다. 화장실 가기를 꺼려 물을 자주 안 마시다 보니 탈수 증상도 걱정된다. 남녀 샤워실은 천 한 장으로만 구분해 놓아 사용하기가 거북하다는 여론이 높다. 실신한 사람들이 실려오는데, 병상은 부족하다. 그야말로 카오스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최 측의 상황인식은 안이하다. 최창행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K팝 탓을 했다. "K팝 행사가 있었는데 (청소년들이) 에너지를 분출하고 활동하다 보니 체력을 소진해서 환자가 많이 발생한 걸로 파악했다"는 주장이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 총장은 "어느 나라에서 치르는 잼버리에서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온열질환자 수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수준은 아니다"고까지 말했다.

조직위는 특히 탈진 환자 구조를 위해 행사를 중단해 달라는 소방 당국의 요청을 한동안 묵살했다. 이 때문에 탈진 환자 구조가 늦어졌다.

전 세계 158개국 4만 3,225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잼버리 대회가 이렇게 부실하게 운영되자 외신들의 비판 기사도 잇따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며 아들의 꿈이 악몽처럼 보여 실망스럽다는 부모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과 전북의 미래상을 세계 청소년에게 보여주겠다"는 송하진 전 전북지사의 야심 찬 포부는 물거품이 되었다. 되레 한국과 전북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줄까 걱정할 상황이다. 2014년부터 유치를 추진, 2017년 유치가 확정돼 준비 기간이 충분했는데도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월 한 여름 뙤약볕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매년 있는 장마철 폭우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바다를 메꿔 만든 간척지가 침수에 약하다는 걸 몰랐단 말인가.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 충분한 그늘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4만여 명이 야영을 하는 곳에 화장실과 샤워실, 식수 공급을 충분히 해야 한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단 말인가. 여름철 습지에 벌레가 창궐한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온열질환자가 속출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철두철미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는 후진국형 안전불감증이다. 이 때문에 잼버리대회가 국위선양은 커녕 망신만 당하는 행사로 전락해 버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참가자들이 멀리서 온 데다 날씨에 적응이 안 돼 환자가 발생한 것 같다는 안이한 인식은 아마추어나 할 소리다. 6년을 준비해 온 잼버리 조직위의 고위관계자가 할 말이 아니다.

여기에  염영선 전북도의원(정읍 2)이 기름을 끼얹었다. "잼버리는 피서가 아니다"며 "대한민국 청소년이 집에서 귀하게 자란 데다 참가비마저 무료니 잼버리의 목적과 가치를 몰라 불평불만이 많다"라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린 것이다. 

이번 사고는 예고된 것이었음에도 막지 못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지난해 10월 여가부 국정감사에서 "폭염이나 폭우,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전혀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혼돈의 잼버리 대회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12일까지 남은 기간 더 이상의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최 측과 관계 당국의 철저한 협업과 대응이 요구된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피해가 재앙 수준으로 커지기 전에 차라리 행사를 중단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앞으로 우리가 유치를 희망하는 국제 행사에 레퍼런스가 될 것에 틀림없다. 이번에 지구촌 전체에 발가벗은 채 드러낸 미흡하고 부실한, 아마추어식 행사 준비가 정부와 부산시민, 많은 국민이 열렬히 희망하고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 윤경민 칼럼니스트는 YTN에서 도쿄특파원을 역임한 일본통이다. 채널A에서 국제부장, 문화과학부장을 지냈다. 늦깎이 학도로,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덕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일본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은퇴 후 전 세계 20개 도시 한 달씩 살아보기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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