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세상읽기] 포르쉐, 주행거리 1300km 도전… 핵심은 '실리콘 음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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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세상읽기] 포르쉐, 주행거리 1300km 도전… 핵심은 '실리콘 음극재'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6.06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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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업계 실리콘 음극재 선점 경쟁 치열
실리콘 함량 높을 수록 주행거리↑·충전 시간↓
충방정 시 팽창 현상(스웰링) 제어에 역량 집중
LG에너지솔루션의 실리콘 음극재를 탑재한 포르쉐의 타이칸. 사진제공=포르쉐

불과 40년전 노트북은 공상과학 영화의 소품 정도였다. 20년전 스마트폰은 먼 미래의 상징일 뿐이었다. 이제 인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버금가는 이동 수단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10년 후 늦어도 20년후 세상을 또 한번 바꿔 놓을 ‘모빌리티’. 아직도 모빌리티에 대한 개념은 모호하다. 모빌리티는 인류가 육·해·공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의미한다. 자동차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모빌리티를 준비하는 글로벌 자동차·IT업계 동향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포르쉐가 리튬이온배터리를 활용해 중기적으로 주행거리 1300km에 달하는 전기차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포르쉐 도전의 핵심은 실리콘 음극재다. 포르쉐는 리튬이온배터리에 실리콘 음극재를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5월 미국 실리콘 음극재 전문 기업 '그룹 14 테크놀로지'에 1억 달러(한화 약 1340억원)를 투자했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 대신 실리콘을 소재로 사용한다. 흑연 음극재보다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현재 전기차에 주로 쓰는 흑연 음극재는 가격이 저렴하고 결정 구조가 안정적이지만 에너지 저장 용량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이론상 최대 10배 이상의 배터리 고용량을 제공해 주행거리를 혁신적으로 늘린다. 전고체 배터리와 함께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충전속도 역시 급속의 경우 15분이면 충분하다. 다만 소재 특성상 충방전을 거듭할 수록 실리콘 입자가 부푸는 현상이 발생한다. 흑연 대비 300~400% 부피가 커져 폭발 위험 역시 증가한다.

실리콘 음극재는 실리콘 함량에 따라 15% 이내 저함량과 15% 이상 고함량으로 나뉜다. 실리콘 함량이 늘어날 수록 주행거리가 증가하고 충전 시간은 짧아진다. 현재 5% 이하 저함량 실리콘 음극재만이 상용화된 상태다. 실리콘 함량이 5% 이하라도 에너지밀도가 흑연 음극재보다 50% 가까이 늘어나 효율적이지만 실리콘 부피 팽장 제어라는 기술적 장벽 속에 다수의 기업이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 

포르쉐가 투자한 그룹 14 테크놀로지는 최대 80%까지 실리콘을 사용한 음극재를 개발하고 있다. 양극재에 니켈 비율을 높여 높은 충전 용량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포르쉐 이외에도 벤츠는 테슬라 초기 엔지니어 중 한 명이 공동 설립한 전기차 배터리 소재 스타트업 '실라'에 투자했다. 실라는 실리콘 기반 음극재 '타이탄 실리콘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으며 올해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곧 출시될 메르세데스-벤츠 EQG G바겐에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처음 장착한다. 

국내 완성차 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개발 중인 실리콘 10% 음극재 배터리 탑재를 서두르고 있다. 실리콘 10% 음극재 배터리는 이르면 내년 개발이 완료돼 전기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모두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어 현대차의 차기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 시리즈'에 실리콘 10% 음극재 배터리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현대차는 향후 실리콘 비중을 15%까지 순차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실리콘 음극재 함량 비중을 10%로 늘릴 경우 기존 흑연 음극재 대비 주행거리는 평균 500km에서 700km로 1.5배 늘어나고 완전충전 속도는 20분 이하로 단축된다. 

 그룹14 테크놀로지의 SCC55. 사진=그룹14 테크놀로지 홈페이지

관건은 안정성 확보

실리콘 음극재 기술이 첫 관문은 단연 구조의 안정성 확보다. 이 문턱을 넘어야 목표하는 실리콘 함량 5%, 10%, 15%, 50%, 80%의 벽을 넘을 수 있다. 

현재 음극재는 규칙적으로 층상구조로 쌓여있는 흑연을 주로 사용한다. 크게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나뉜다. 천연흑연은 리툼이온을 보관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저렴한 재료다. 하지만 사용 중 팽창 문제로 구조적 안정성이 떨어지자 이를 개선한 인조흑연이 등장했다. 인조흑연은 3000℃ 이상의 고온열처리를 통해 만들어지며 천연흑연에 비해 결정성이 높고 구조가 더 균일해 안정성이 높다. 다만 석유계피치나 콜타르 원료를 가공해 가열하는 등 추가적인 제조공정이 더해져 가격이 비싸다. 

실리콘은 탄소 원자 6개당 리튬이온 1개가 저장되는 흑연과 달리 원자 4개당 리튬이온 15개가 저장되는 구조를 갖는다. 이 때문에 실리콘 음극재의 단위 에너지 용량이 흑연보다 10배가량 높다. 결국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계 음극재보다 고용량과 고출력의 성능을 가지고 있어 전기차 배터리의 주행거리를 혁신적으로 늘리는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상용화를 막는 걸림돌도 명확하다. 충방전 때 부피 팽창이 3배 수준으로 크다는 점과 전기 전도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또 실리콘 입자가 부서지거나 전극 박리 및 연속적인 전해액 분해 반응으로 전지 성능을 급격히 감소시킬 수도 있다. 

배터리 업계는 배터리 부피 팽창 부작용을 어떻게 빨리 개선하느냐가 시장 주도권을 쥘 '키 포인트'로 보고 실리콘 구조 안정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탄소나노튜브(CNT)를 음극재에 첨가해 충방전 반복 때 소재가 변형되는 '스웰링(swelling)' 안정화에 나서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열 전도율이 구리와 같으면서도 강도는 철의 100배에 달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2019년부터 실리콘 5%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으며 7% 이상으로 함량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삼성SDI도 실리콘을 나노화하는 등 독자기술 SCN으로 팽창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있다. SCN이란 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 1000분의 1 크기로 나노화한 뒤 이를 흑연과 혼합해 하나의 물질처럼 만든 일종의 복합소재다. 실리콘과 흑연을 혼합해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방안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지난해 실리콘 음극재 전문 기업 테라테크노스를 인수해 포스코실리콘솔루션을 설립한 포스코그룹은 SiOx에 주목했다. SiOx는 나노실리콘 입자 위에 실리콘을 합성해 실리콘 팽창을 최소화한 음극재다.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실리콘솔루션과 포스코케미칼의 협력을 통해 제품 고도화 및 양산에 나설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지난해 펴낸 '리튬이차전지 음극재 기술동향 및 시장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음극활물질 수요량은 약 19만 톤이다. 보고서는 2025년까지 전체 음극활물질 수요량이 약 136만톤으로 연평균 39% 성장할 것으로 봤다. 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조흑연은 2019년 53%에서 2050년 60%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천연흑연은 43%에서 28%로 오히려 비중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실리콘 음극재는 2025년 11%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했다. 높은 에너지밀도를 기반으로 전기차 주행거리 확보가 전기차 시장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실리콘 음극재 전지 내 사용 비중은 점차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코케미칼 음극재 세종 공장 제조공정에서 담당자들이 공정 현황을 체크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케미칼

치열해지는 실리콘 음극재 선점 경쟁

국내 실리콘 음극재 선두업체는 대주전자재료다. 2019년 세계 최초로 실리콘 음극재를 양산해 LG에너지솔루션, 포르쉐 등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생산능력은 3000톤 수준이며 양산 규모를 2024년 연산 1만톤, 2025년 2만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포스코실리콘투는 최근 경상북도, 포항시와 투자협약을 맺고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 내 연산 5000톤 규모의 실리콘 음극재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모두 3000억원을 투자하며 내년 본격 생산·판매를 시작한다.

SK머티리얼즈과 SKC는 합작사를 설립하고 실리콘 음극재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SK머티리얼즈는 미국의 그룹 14 테크놀로지와 합작사 'SK머티리얼즈 그룹 14'를 설립하고 8500억원을 투자해 경북 상주시에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구축했다. 해당 공장은 연산 2000톤 규모로 오는 3분기 중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SKC는 지난해 말 실리콘 음극재 관련 특허를 보유한 넥시온에 3300만 달러를 투자하고 합작사 ' 'NEX UK HOLDINGS LIMITED'를 설립했다. SKC-넥시온 합작사는 오는 2025년 실리콘 탄화규소(SiC) 계열 코팅형 실리콘 음극재에 이어 2026년 다공형 실리콘 음극재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SDI와 실리콘 음극재 특허를 공동 보유한 엠케이전자는 실리콘탄소복합체(Si-C)와 실리콘 합금(Si-Alloy) 소재의 음극재를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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