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울 때 지도자상 그린 「다키스트 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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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울 때 지도자상 그린 「다키스트 아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2.04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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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작전 앞두고 대화론자에 둘러싸인 처칠의 고민

 

앞이 조금도 보이지 않은 암울한 시기에 나라의 지도자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점령하고 프랑스를 침공하고, 체코와 노르웨이도 공격했다. 영국군 30만명은 프랑스 북부 해안 덩케르크에 포위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때 평화를 앞세운 대화론자들이 히틀러와 협상을 벌여 목숨만 구걸하자고 한다.

윈스턴 처칠은 고민에 빠진다. 그는 런던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만난다. 시민들은 싸우자고 한다. 시민들은 히틀러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고 한다. 시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처칠은 용기를 얻는다. 그는 의회에 나가 이렇게 외친다.

“We shall never surrender.”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굴복하지 않고 싸우다 진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만, 굴복해버린 나라는 다시 회생하지 못했다”고 처칠은 호소한다. 그리고 덩케르크 작전에 영국인들은 배를 끌고가 군인들을 구해낸다. 처칠의 승부사적 기질은 마침내 2차 대전에서 영국으로 하여금 상병 조무래기 출신의 히틀러를 제압하고 승리로 이끈다.

 

▲ 영화 '다키스트 아워' 포스터 /네이버 영화

조 라이트 감독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를 보았다. 흥행이나 재미와 같은 요소는 아예 없었다. 대신에 메시지는 많았다. 영화 홍보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관객이 의외로 많았다. 겨우 앞자리 하나 얻어 보아야 했다. 특히 젊은 관객들이 많이 눈에 띠었는데, 최근 우리 상황에 대해 젊은층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시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이 시대를 바꾼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에게 맞는 말이다. 그는 전쟁의 시기에 불굴의 용기와 리더십으로 영국인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처칠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1899년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이에 힘입어 일찍부터 정계에 나갔다. 25살에 보수당 후보로 출마,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자유당으로 옮겨 32살에 자유당 내각의 통상장관을 시작으로 식민장관, 해군장관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1차 대전중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군장관직에서 물러났지만, 곧이어 육군장관겸 공군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자유당 내에서도 보수 우파였다. 그는 소련 볼셰비키 혁명과 노동운동에 대한 반감으로 보수당에 다시 복귀했지만, 직선적이고 강경한 태도로 인해 1929년 이후 내각에 참여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군비증강을 역설했지만, 당대 네빌 체임벌린 등 유화론자들이 그를 왕따 시켰다.

그의 진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발휘했다. 체임벌린의 유화론이 실패하자, 보수당은 당내 강경파인 처칠을 선택해 1940년 5월 10일 그는 총리에 취임한다. 그때 나이는 66세.

이 노익장은 국민들에게 평화가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을 호소했다.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련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기나긴 투쟁과 고난의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정책이 무어냐 묻습니다. 나는 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땅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나갔다.

“여러분은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나는 한 마디로 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승리합니다. 모든 공포를 이겨내고 반드시 승리합니다. 승리에 이르는 길이 아무리 길고 험난해도 반드시 승리합니다. 승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기필코 승리를 쟁취합시다. 승리하지 않으면 대영제국이 존속할 길이 없고, 대영제국이 지탱해 온 모든 것들이 존속할 수 없습니다.”

 

▲ 고뇌하는 처칠 /네이버 영화

 

그가 취임하고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 30만명이었다. 그의 여비서 레이튼의 오빠도 덩케르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뚝둑한 처칠은 감상적으로 변한다. 전시 거국내각에서 외교를 맡은 핼리팩스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중재로 히틀러와 협상을 하자고 종용한다. 국왕 조지 6세도 대화를 은근히 권한다. 보수당 리더들은 처칠이 협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밀고 나간다면 해임시키고 협상파 핼리팩스를 총리로 시키자고 음모를 꾸민다.

이 어둡고 답답한 시기를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많은 인원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초조하게 위기의 순간을 헤쳐나가는 한 인간이자 지도자인 처칠의 모습을 담아냈다.

굳이 영화에서 극적인 표현이라고 한다면 처칠이 공용차에서 내려 지하철로 들어가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시민들과의 진솔한 대화에서 그는 답을 찾고, 용기를 얻는다. 영국 젊은이 30만명의 목숨을 잃어버릴수 있는,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그는 강인함을 찾는다. 그는 유화주의자들에게 일갈한다.

“호랑이 입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어떻게 호랑이와 협상을 한단 말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했다. 영화가 끝나도 처칠의 생생한 음성이 들려온다.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 사람들도 북한 김정은이 어떤 인물인지, 그와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보아야 한다. 독재자 히틀러와 회담하고 마냥 평화가 왔다고 흥분한 체임벌린이 전쟁을 끝내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아내 클레멘타인과 함께 /네이버 영화
▲ 여비서 레이튼에게 전황을 설명하는 처칠 /네이버 영화
▲ 국왕 조지 6세를 접견하는 처칠 /네이버 영화
▲ 시민들과 함께 한 처칠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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